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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톤』과 소크라테스의 법사상

소크라테스는 인류의 위대한 스승 중 한 명이다. 그는 소위 ‘4대 성인’ 중 한 명으로 거론될 뿐 아니라, 철학자 화이트헤드가 “서양철학은 플라톤의 각주에 불과하다”라고 평가한 플라톤의 스승이라는 점에서도 그가 인류의 가장 중요한 스승 중 한 명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는 아테네의 시민재판을 통해 사형을 선고받아 사망하였는데, 플라톤은 그 재판과 죽음에 관련된 스승의 행적을 『변론』, 『크리톤』,『파이돈』이라는 3권의 기록으로 남겼다. 그 중 특히 『크리톤』에는 소크라테스가 사형 전날 그를 탈옥시키려던 친구 크리톤의 요청을 거부하며 크리톤과 나눈 대화를 통해 그의 법사상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어, 후대의 연구자들에게 매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위 『크리톤』은 하나의 유명한 왜곡에 시달려온 바 있는데, 그것은 소크라테스가 위 책에서 “악법도 법”(이하 ‘악법론’)이라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이 말은 일본의 법학자 오다카 도모오(尾高朝雄)가 저서『법철학』(1935)에서 “악법도 법이므로 지켜야 한다”라고 주장하며 그 사례로 소크라테스의 준법사례를 든 것에서 와전된 것인데, 이후 이 말은 특히 한국에서 널리 알려져 중고교 교과서에 준법정신을 강조하는 사례로 즐겨 인용되어 왔다. 그러나 문제는 실제로 소크라테스가 그러한 말을 한 적이 없을 뿐 아니라, 이 말이 그의 법사상 전반에 대한 왜곡에 해당한다는 것이었다. 급기야 2004년 헌법재판소는 교육부에 공문을 보내 “오늘날의 헌법체계에서는 준법이란 정당한 법, 정당한 법집행을 전제로 하며 이 사례를 준법정신과 연결시키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지적하여, 위 내용을 교과서에서 삭제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위 ‘악법론’이 그의 진실이 아니라면, 그가 죽음을 선택한 이유를 그의 진짜 법사상의 탐구를 통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우선 그의 법사상의 기초가 되는 것은 그의 윤리사상의 핵심인 ‘지행합일설’(知行合一說)이며, 그의 죽음의 이유는 여기에서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지’(知)는 무엇이 옳은지 아는 것이며, ‘행’(行)은 그 ‘옳다고 아는 것’을 실천하는 것이다. 그는 이와 같은 자신의 사상에 평생 충실했고, 그랬기에 아테네의 시민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기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그는 신성모독죄와 청년들을 타락시킨 죄로 기소되었으나, 재판에서 배심원들에게 겸손하게 자비를 구했다면 무죄 선고를 받거나 추방형 선고를 받는 데 그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정당성을 확신하였으며 자신의 그러한 앎에 충실하였기에, 자신의 죄를 심판하고자 하는 아테네의 시민들을 훈계하고 조롱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분개한 아테네의 시민들은 급기야 소크라테스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것이다.
그러나 그가 사형선고를 받은 후 친구 크리톤으로부터 탈옥할 기회를 제공받았음에도 이를 거부하고 독배를 마신 것은 아테네의 시민들에게도 놀라운 일이었다고 한다. 당시의 아테네에서는 비록 시민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더라도 사형 전에 탈출하는 것이 관행이었다고 하기 때문이다. 이를 볼 때 그의 죽음은 소극적·수동적 대응이 아닌 어떤 적극적·능동적인 선택의 결과인 것으로 생각되며, 그렇기에 사람들은 그의 죽음에서 어떤 사상적 치열함에 따른 일관성을 발견하는 것으로 보인다.
재판에서는 아테네의 시민들을 조롱하고, 사형 선고에 대하여는 충실히 따른 그의 행동이 일견 모순되어 보일 수 있으나, 이러한 그의 행동이야말로 오히려 바로 그의 일관된 법사상에 따른 것이었다. 우선 그가『변론』에서 밝힌 법사상은 ‘악법론’이 아닌 ‘시민불복종론’에 가까우며, 이를 통해 그가 자연법론자라는 것을 알 수 있다.『변론』에서 그가 자신이 국가의 불의한 권위에 대하여 목숨을 걸고 불복종하였던 사례를 이야기한 사실을 통해 그의 시민불복종론의 입장을 알 수 있는데, 시민불복종은 불의한 법을 위반할 것을 주장하는 사상이고, 이는 그 ‘불의’의 판정을 위하여 자연스럽게 ‘자연법론’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가 비록 시민재판의 기소가 부당하다고 생각하였을지라도, 그가 사형선고를 받아들인 것은 정당한 절차를 거쳐 사형을 선고한 아테네의 법질서 자체는 ‘악법’이 아니라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가 지행합일의 원칙에 따라 살아온 만큼, 자신이 옳다고 판단한 법을 따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크리톤』에서 자신이 법을 위반할 경우 ‘법적 안정성’을 해치게 되는 일의 위험성을 말하며 그 위반을 거부한 사실을 들어 그를 여전히 ‘악법론자’(혹은 법실증주의자)라고 보려 하는 입장도 있다. 그러나 ‘법적 안정성’은 올바른 법(正法)에 의해서도 얼마든지 추구될
수 있는 가치이므로, 이 점을 들어 그를 악법론자 혹은 법실증주의자로 부르는 것은 타당하지 않을 것이다.
그의 법사상의 또 다른 특징은 ‘사회계약론’이다. 그가 아테네의 법을 따라야 하는 또다른 이유로 자신이 그 법에 ‘동의’(약속)하였기 때문임을 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pacta sunt servanda)라는 법의 소박한 정의(正義 혹은 定意)라고 볼 수도 있으며, 법(혹은 국가)의 근거를 시민들 간의 약속으로 파악하는 ‘사회계약론’의 입장인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물론 그 전제는 동의(약속)의 대상인 법이 악법이 아니라는 점일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사상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선택한 행위의 숭고함을 평가받아 진리의 순교자 또는 철학의 순교자라고 불려왔다. 법철학자 라드브루흐는 저서『법철학개요』에서 소크라테스가 법적 안정성을 위해 순교한 것으로 보았는데, 앞서 살펴본 것처럼 그가 법적 안정성뿐 아니라 정의와 올바른 법에 대해서까지 치열하게 고뇌하고 결단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그를 정의(正義)의 순교자 혹은 법(正法)의 순교자라고 부르는 것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임준형 변호사
● 법률사무소 메이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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