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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알고 느끼게 되는 것들

변호사 업무의 매력이 여러 가지 있겠지만, 그 중 하나가 평소 잘 모르고 지내왔던 영역의 사람들을 만나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에게는 다소 낯선 영역에서 살아가고 있는 의뢰인들과 그들의 삶에 대해 깊이 이야기하다 보면, 자연스레 새롭게 알게 되는 것, 느끼게 되는 것들이 많습니다. 그동안 제가 알고 있던 것들이 교과서, 뉴스 등을 통해 피상적으로 알게된 정보라는 사실도 새삼 느끼게 됩니다. 최근 선임하여 진행했던 사건들에서도 몇 가지 새롭게 알고 느끼게 된 것들이 있어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현재 진행 중인 청각장애인 사건입니다. 의뢰인이 청각장애 여성으로 결혼 당시부터 약 10년간 지속되어 온 부당한 대우 등을 이유로 이혼을 청구하는 사건입니다.
평소 청각장애인이 일상에서 어떤 어려움을 겪으며 살아가고 있을까에 대해 그다지 생각해 보지도 않았고, 그저 대략 ‘수화를 못하는 사람과는 의사소통이 불편하겠다.’, ‘글로는 의사소통이 수월할까?’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건을 진행하면서 청각장애인들의 의사소통이 생각보다 훨씬 많은 어려움이 있음을 실제로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의뢰인에게 수년간의 결혼생활에 대해 듣는 과정에서는 하루 1회 2시간까지만 통역이 가능한 수화통역사와 만나 상담을 진행하였는데, 수화통역사 예약을 잡는 것 자체도 쉽지 않았습니다. 현재까지 4회에 걸쳐 8시간의 상담을 하였는데 4회 상담만으로 2주 정도의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만약 일반인이었다면 1~2시간 정도에 충분히 마무리될 상담내용이었지만 청각장애인 의뢰인과는 8시간 동안 상담을 하였음에도 무언가 부족한 느낌이었습니다. 상담하는 동안에는 조금 답답하게 느껴졌고, 반복되는 질문에도 질문의 의도를 벗어난 답변이 반복되어 저도 모르게 짜증스러운 표정을 살짝 내비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길게 상담을 진행하였음에도 뭔가 아쉬움이 남는 경험을 직접 해보니 청각장애인들이 실제로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많겠구나 싶었습니다. 물론 일상생활에서의 단순한 의사소통은 별다른 어려움이 없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법적 분쟁이 발생한 경우, 몸이 많이 아파 병원에 진료를 받으러 간 경우, 첨예한 이해관계가 얽힌 사업을 논의해야 하는 경우 등과 같이 사실관계와 자신의 의사를 명확한 문장으로 표현해 내야 하는 상황에서는 수화만으로는 의사소통에 지장이 있을 가능성이 크고, 경우에 따라서는 자신의 의도와 다르게 왜곡된 내용이 전달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청각장애인이 이렇게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다는 사실을 경험한 이후에는, 청각장애인 의뢰인이 그동안 시댁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았음에도 참고 견뎌온 삶이 조금은 이해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또, 척수장애인인 의뢰인의 행정소송을 진행하면서도 새롭게 알게 되고 느낀 바가 큽니다. 먼저 ‘척수장애인’이라는 단어부터 낯설었습니다. 척수가 손상되어 하지마비 등으로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장애인들, 우리가 일반적으로 자주 보아왔던 그분들이 척수장애인이었습니다.
척수장애인에 대해서도 ‘이동하는 데 불편함이 많겠다.’, ‘계단을 올라갈 수가 없으니 불편하겠다.’, ‘취업에도 문제가 있겠다.’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직접 척수장애인 의뢰인을 만나 그의 삶에 대해 들어보니 전혀 생각지도 못한 남모를 고충이 많았습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배변입니다.
척수장애인들은 하반신이 마비되었기 때문에 소·대변의 저장과 배설에 장애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소변은 하루에도 수차례 튜브 등을 삽입하여 빼내야 하고, 대변은 일반인에 비해 잘 나오지 않아 며칠에 한 번씩 배설하는데 원활하지 않으면 좌약 등을 통해 강제적으로 배설시켜야 한다고 합니다. 또한 갑작스럽게 자신도 모르게 배변하는 경우도 많아 외출을 꺼리게 되고 외출 시에는 장애인 화장실 위치를 잘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척수장애인들에 대한 재활교육에서도 배변에 대한 교육이 중요한 부분이라고 합니다. 척수장애인들은 걷지 못하는 어려움만큼 배변문제가 크나큰 고충이고 어찌 보면 걷지 못하는 것보다 배변의 어려움에서 느끼게 되는 자괴감이 더 크다는 말까지 듣게 되었습니다.
척수장애인들이 단순히 걷는 문제만이 아니라 배변에서도 크나큰 고충이 있다는 말을 들은 이후에는 척수장애인 의뢰인의 삶을 더욱 이해할 수 있었고, 상담과정에서 말 한마디라도 더 배려하는 말을 건넬 수 있었습니다.
청각장애인 사건이나 척수장애인 사건에서 제가 새롭게 알고 느낀 것들. 어찌 보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제가 그 사건들을 진행하지 않았다면 전혀 느껴보지 않고 모른 채 살아갔을 것입니다. 그분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더 알게 된 만큼 앞으로 서로 더욱 공감하며, 깊이 이야기 나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 하루도 외롭고 고되기만 한 저의 변호사 일상이지만, 앞으로는 또 어떤 의뢰인을 만나 이제껏 전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될지 기대해 봅니다.









이학주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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