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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

수개월 전 존경하는 C모 변호사님으로부터 서울지방변호사회에 실릴 ‘나의 소송이야기’ 기고를 의뢰받은 적이 있습니다. 저는 영광스럽기는 하나 부담스럽다며 수차례 사양하였습니다. 사실 매체에 글을 쓴다는 것이 두렵기 보다는 다른 내용도 아닌 변호사들의 주업인 ‘소송이야기’를, 그것도 변호사님들이 구독하는 서울지방변호사회보에 기고한다는 것이 저에게는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치기 어린 글을 올려서 저보다 더 훌륭하고 훨씬 경험이 많으신 변호사님들로부터 비웃음을 사지 않을까 우려되기도 했고 자칫 의뢰인들이 공개하기 꺼려하는 부분을 무심코 공개하게 되는 우를 범하지 않을까 걱정도 되었습니다. 그리고 특수 분야의 전문가도 아니고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무료 변론을 한 적도 없는, 생계를 위해 송무를 주업으로 하는 평범한 서초동 변호사에 불과한 제가 이런 글을 쓰는 것이 맞나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어쩌다보니 요청에 응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된 이상 수행하였던 사건의 예를 들어 소위 ‘있어 보이게’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좋은 결과를 얻었다고 자랑할까 아니면 사건 과정의 여러 불합리를 지적하며 법조의 문제점을 비판할까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현재 수행하고 있거나 기존에 수행했던 사건들을 돌이켜 볼 때마다 괴로운 감정만 들었습니다. 잠깐 잊고 있었거나 의도적으로 잊으려 했던 여러 기억이 생각났고 부족했던 저의 모습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남들에게 자랑할 만하거나 스스로 즐거웠던 경험이라고 생각되는 사건은 단 한 건도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1~2년경 전쯤 모 언론 매체로부터 ‘수행했던 사건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을 받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짧은 시간 동안 여러 생각을 하다가 ‘말하면 의뢰인들이 싫어할 것이다.’라고 대답을 회피한 적이 있었습니다. 물론 기억에 남는 사건이 없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답변을 하지 않았던 이유는 좋지 않았던 기억들만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즐거웠다고 생각하는 경험에 대해서는 흔쾌히 이야기 하지만 그렇지 않은 기억에 대해서는 굳이 말을 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 듯합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굳이 좋지 않은 기억을 다시 한 번 곱씹으며 말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한마디로 정의내리기는 어렵지만 저에게 소송 이야기는 ‘굳이 떠올리고 싶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우선, 수행하였던 소송의 결과가 좋지 않았던 경우에는 그 자체만으로 불만족스러운 기억이었습니다. 좋지 않은 결과가 예상되고 그런 사실을 미리 말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저를 믿었던 의뢰인에게 미안한 심정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소송 대리인으로서 자존심이 많이 상하기도 하였습니다. 상당 기간 동안 ‘내가 왜 그런 주장을 서면에 썼을까’, ‘다른 내용을 썼으면 결과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차라리 감정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라고 되뇌고는 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객관적으로 보면 다른 방식으로 수행하였다고 하더라도 결과가 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자위하기도 합니다.
소송의 결과가 예상했던 대로 또는 예상보다 좋았던 경우에도 소송 대리인의 입장에서는 행복한 기억이 아닐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법연수원 시절 변호사 실무 교수님들로부터 익히 들었던 말은 “소송에 실패한 변호사는 용서받아도 약정에 실패한 변호사는 용서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저 역시 용서받지 못했던 경험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약정은 실패하지 않았으나 추심 과정에서 약정된 금액을 지급받지 못하거나 그 과정에서 의뢰인과 실랑이를 펼쳐야만 했던 경우에도 의뢰인에 대한 섭섭한 감정 또는 배신감으로, 좋았던 결과는 기억 속에서 사라지곤 하였습니다.

저에게는 단 한 사건이라도 쉽거나 만만했던 사건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다른 변호사님들께서도 익히 공감하시겠지만 예측한 그대로 진행되는 사건은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은 쉬운 쪽보다 어렵거나 골치 아픈 쪽으로 진행되고는 하였습니다. 생각하지도 못했던 변수가 터질 뿐 아니라 수년 동안 소송이 지연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하나의 서면을 쓰기 위해서 몇 번씩 고민하고 수정하는 작업을 반복해야만 했고 기일 출석을 위해서 나름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이제는 찾기 어렵지만 고압적인 태도의 재판부를 만났던 경우, 상대 대리인과 가시 돋힌 말을 주고받았던 경우도 없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변호사의 사정을 너그럽게 이해해 주는 의뢰인 역시 찾기 어려웠습니다. 상당수는 수시로 전화하여 기존에 했던 얘기를 반복하면서 신세 한탄을 하고, 때로는 지나치거나 과도한 요구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물론, 보람으로 느꼈던 일이나 개인적으로 즐거웠던 일도 꽤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격적으로 성숙되지 못하고 경험조차 미천한 본 변호사는 많은 과정을 거치고 난 후에는 사건 하나하나, 그 과정 하나하나가 불만족스러울 뿐 아니라 짜증나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남들에게 말하기 싫은 부끄러운 경험이고 아쉬웠던 기억으로 남아 있는 듯합니다. 게다가 진행하면서 받았던 대가 역시 저의 노력의 보상으로 충분치 못하다고 주제넘게 생각했습니다.
많은 변호사님들께서는 젊은 놈이 지나치게 부정적이고 앓는 소리만 한다고 꾸짖으실 수도 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그러나 저 스스로는 단순히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제 일같이 생각하면서 나름 열심히 하려고 노력하였기 때문에 불만도 많고 괴로워하는 것이라고 변명하고는 합니다. 그 누구도 장래의 일은 쉽게 예측하지 못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괴로워하면서 저 나름의 소송이야기를 계속 써 내려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최건 변호사
●법무법인 건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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