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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게」, 러시아가 사랑하고 있는 시인 뿌쉬낀

시를 읽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다. 누군가는 시가 “국어책에서나 배운 것”이라고 하고 누군가는 “시시하다”라고 한다. 사실 계속 시를 읽거나 음미하는 일은 일상에서 그 찰나의 여유를 찾기 어렵다.


십수 년 전 서강대 장영희 교수가 죽기 전까지 신문에 기고한 것은 영미의 시(詩)들을 찾아 소개해 보는 것이었다(조선일보『장영희의 영미시 산책 시리즈』).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부터 바이런, 예이츠, 워즈워드, 롱펠로우, 휘트먼, 테니슨, 하우스먼, 프로스트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그녀는 군인(軍人) 아서 맥아더의 기도문을 시로서 소개했고, 밥 딜런(2016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노래「( 바람이 전하는 말」 또는「 바람 속에 답이 있다」)까지 한 편의 영미시로 소개한 선견지명(?)이 있었다.

 

지난 봄에 상뜨빼쩨르부르크에 가서 그 유명한 청동기마상을 보았다. 뾰뜨르 대제를 형상화한 기마상은 유럽을 향해 손을 뻗어 가리키고 있었다. 대제와 말은 사나운 기세로 몸을 치켜들고 있었다.

시인 뿌쉬낀은 우연히 네바 강변에 있는 기마상을 보고 긴 서사시「( 청동기마상」)를 남겼다.

“너를 사랑한다. 너의 엄숙하고 정연한 모습을, 네바 강의 힘찬 흐름을, 강변의 화강암 둑을, 고운 문양 새겨진 철책을, 생각 잠긴 밤의 투명한 어둠을, 백야의 섬광을...”이라고 표현하면서.


서정주의 시인인 뿌쉬낀은 이런 류의 찬양조를 늘어놓는 사람이 아니었지만, 뾰뜨르 대제의 미래지향적이고 이상적인 메시지에 깊이 반해버린 것 같다. 특히 그가 시 속에서 이 도시(상뜨빼쩨르부르크)를 일컬어 “유럽으로 열린 창”이라고 했던 말은 러시아의 희망과 뾰뜨르 대제의 꿈을 극적으로 메타포한 것이라고 보인다.

시인 뿌쉬낀은 사랑받는 존재다. 단지 러시아 문학사에서 존경을 받고 기억되는 정도가 아니었다. 그는 사랑받았고 계속 사랑받고 있다. 귀족 출신 뿌쉬낀은 상류사회의 밝음을 듬뿍 받아 자랐고 주변에 사랑을 나누었다. 그는 많은 시를 쓰면서 애정과 추억, 환희와 희열, 위로와 찬탄을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는 시인이었다. 그는 짧은 인생 동안 많은 사람들과 교류하며 나눴던 아름다운 말과 소중한 추억을 시상(詩想)으로 극화한 사람이었다. 지금도 넵스키 대로의 카페 종업원도 가볍게 뿌쉬낀의 시를 암송할 정도라면 뿌쉬낀의 시가 얼마나 많은 러시아인에게 감명을 주었는지 잘 알 수 있게 한다.

시인의 시(詩) 한편이 있다. 그가 진심으로 사랑하고 결혼까지 하였으며 나중에 목숨까지 내놓게 되는 여성이 아니었다. 소년시절 만났고 그 후 우연한 기회로 다시 만난 또 다른 여성이었다. 시인은 쉽게 그녀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 그리고 “~에게”라는 무제(無題)의 시를 남기게 된다. 시는 애정을 드러내거나 추억을 곱씹는 것을 넘어서서 그녀를 다시금 만난 그 순간의 경이(驚異)를 고혹적으로 찬미하고 있다. 누구나가 인생에서 접하게 되는 ‘가슴 설레는 순간’을 영원하도록 글로 남긴 시인의 감성에 머리가 숙여진다.


....에게
나는 경이의 순간을 기억하오. 내 앞에 그대가나타났었소. 스쳐가는 환영처럼 순수한 미의 영처럼. 희망 없는 슬픔의 괴로움 속에서도, 소란한 세상의 불안 속에서도, 오랫동안 그대의 부드러운 목소리 내게 울렸고 사랑스러운 모습이 꿈속에 보였었소.
세월이 흘렀소. 폭풍 같은 반란의 열정이 예전의 꿈들을 흩어 놓았고 난 그대의 부드러운 목소리, 천사 같은 모습마저 잊었었소, 벽지에서 유배의 그 암흑 속에서 내 나날들은 막막하고 지루하게 흘러갔소, 신성도, 영감도, 눈물도, 삶도, 사랑도 없이 말이오.
이제 내 영혼이 일깨워지고. 바로 그대가 다시 나타났소. 스쳐가는 황혼처럼 순수한 미의 영처럼. 가슴은 환희로 고동치오.
그 속에 다시 모든 것들이 살아났소.
신성이, 영감이, 삶이, 눈물이, 사랑이.

 

 

오래 전 현대인의 일상에 “시”라는 것을 다시금 떠올리게 하고 하늘로 떠난 장영희 교수는 이런 말을 남겼다. “‘사랑한다’의 반대말이 뭔지 아세요? 그건 ‘사랑했다’예요”라고.
러시아가 사랑한 시인으로 추앙되는 시인 뿌쉬낀. 
러시아에서 만난 많은 러시아인들은 뿌쉬낀을 사랑했던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뿌쉬낀을 늘 지금도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

 

 

유재원 변호사

국회 입법조사처 서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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