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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시아 꽃향기를 맡으며


올해도 어김없이 봄이 왔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다. 이유는 모르지만 중학교 때부터 봄이 좋았다. 긴 겨울의 추위를 밀어내고 세상을 온통 연두, 초록 빛깔로 물들이는, 참으로 믿기 어려운 것이 봄의 경이로움이었다. 청년이 되었을 때도 봄이 오면 그냥 나무를 한번 만져보고, 가던 길을 멈춰 서서 길가에 있는 꽃에 코를 들이대곤 했다.
변호사를 개업한 지 2개월이 되었다. 30년 가까이 공직에만 있다가 나온 세상은 역시 만만치 않다. 매달 꼬박꼬박 월급을 받다가 이제 법무법인을 꾸려갈 입장이 되니 자영업이나 기업 경영인이 겪는 어려움에 절로 공감이 간다. 일이 잘 안 풀릴 때 속상함이 불쑥불쑥 가슴속에서 치솟아 오르곤 한다. 이렇듯 힘이 들 때, 커다란 위안을 주는 것이 있다. 바로 5월의 아카시아 꽃향기이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걸어서 출근을 한다. 40분 정도 걸리니 운동하기에 안성맞춤이다. 반포천 옆 가로수 길을 걷다 보면 어느 순간 상큼하고 신선한 꽃향기가 내 코를 스치고 달아난다. 가던 길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면 길가에 아카시아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최근 아카시아꽃이 절정이라 바람이 조금이라도 불라치면 그 향기가 바람에 실려 날아든다. 향기를 더 맡기 위해 한껏 숨을 들이마셔도 처음 접한 향기만큼 진하지는 않다. 아무리 달콤한 아이스크림도, 아무리 시원한 팥빙수도 이 꽃의 향기만큼 달콤하고 신선하지는 않다. 아이스크림과 팥빙수는 식욕을 채우는 데 그치지만, 꽃향기는 정화와 치유를 주기 때문이다.
어릴 적 청주에서 자란 나는 유난히 산과 개천을 좋아했다. 그래서 초등학교 때 시골에 있던 큰집에 자주 놀러 갔다. 산에 가서 사촌누나와 진달래꽃을 따먹기도 하고, 사촌형들과 함께 칡뿌리를 캐먹기도 했다. 그렇게 자주 산을 찾아 놀던 중 어느 때인지 기억나진 않지만 바람이 몰고 온 꽃향기에 푹 빠지게 되었다. 그게 바로 아카시아 꽃향기였다. 이후 5월이 되면 꽃향기를 맡으러 아카시아 나무가 있는 곳을 일부러 찾아가곤 한다. 요즘은 거의 매일 출근길에 아카시아 꽃향기를 맡는다. 어제의 피로를 씻어주고 오늘의 활력을 키워주니 이보다 더 좋은 선물이 없다. 게다가 이 선물은 무료이기까지 하니 금상첨화이다. 술을 한잔하고 귀가할 때 가끔 편의점에 들러 아카시아껌을 4통 사서 가족들에게 나눠주곤 한다. 아이들이 아빠가 왜 이렇게 아카시아껌을 좋아하는지 물어볼 만도 한데 묻지 않았다. 어느 날 그 이유를 말해 주었지만, 아이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아빠처럼 산에서 실컷 놀아본 경험이 없으니 어떻게 이해할 수 있으랴. 자연이 주는 꽃 선물이 어디 아카시아꽃뿐인가? 3월부터 산유화, 개나리, 진달래가 피기 시작하여 4월에는 복숭아꽃, 살구꽃, 5월에는 장미가 피어나고, 여름에는 나팔꽃, 해바라기가 세상을 수놓다가, 가을에는 국화, 코스모스가 우아한 자태를 드러낸다. 이렇듯 우리 주변에는 꽃들의 향연이 쉼 없이 벌어진다.

바쁜 일상에 살면 여유를 놓치기 십상이다. 여유를 놓치면 인심이 사나워진다. 특히 변호사는 분쟁으로 어려움을 겪는 분들을 위해 일하는 직업이다. 일의 성격으로 보면 딱딱하기 그지없다. 그리고 자칫 돈이 주는 매혹에 사로잡혀 돈에 집착하면 판단이 흐려질 수도 있다. 변호사들이야말로 가끔 자연을 돌아보고, 자연으로 여행을 떠날 필요가 있다. 시간이 날 때마다 꽃에 눈길을 주고, 고개를 들어 파란 하늘을 보기도 하고, 양팔을 벌려 나무를 안아보면 좋지 않을까? 자연이 주는 정화와 치유는 ‘내가 왜 변호사를 하고 있는지’, ‘의뢰인에게 어떤 변호사가 되어야 하는지’를 되묻게 해준다. 그리고 가끔 잊고 지내는 상식, 순리와 윤리를 되살려주는 힘이 있다. 이제 봄이 어느덧 끝자락에 와 있다. 그 어떤 벗보다 따뜻한 자연의 벗, 봄! 봄이 주는 정화와 위안으로, 작은 것 같지만, 결코 작지 않은 행복을 만끽하고 싶다.
 

 

 

 

 

 

 

박은석 변호사
●법무법인 중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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