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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가 겹치다

사물에도 공간에도 감정이 깃드는 날이 있다. 감정이 깃드는 날, 누군가에 대한 기억의 흔적은 문득 떠올라온다. 사물과 공간에 묻어 있는 흔적들. 가령 어느 때 우리는 시간의 문이라는 경계를 넘나든다. 문의 손잡이를 돌리는 것이다. 부딪힘. 지금 여기 예전의 시간과 예전의 사람이 문을 열고 들어온다. 순간 그 사람의 흔적은 바로 여기에서 겹쳐진다. 흔적 속에서 다른 시간대의 누군가가 들어오고, 지금의 당신이 나가고, 지금의 당신이 들어오고, 다른 시간대의 누군가가 나간다. 다른 시간대의 그 사람과 당신이 그렇게 시간의 차원을 넘어 서로 겹쳐 지나가는 것이다.
클림트의 그림, 「연인」의 포옹처럼 과거에 일어났던 겹침의 순간을 그 사람도 당신도 기억할 것이다. 그 사람과 당신은 시간차에 의해 만날 수 없겠지만, 혹시 차원이 비틀어지고 시간대가 일그러져 지나간 시간이 당신의 현재와 겹친다면……. 서로가 서로를 뚫고 지나가는 그 순간. 알 수 없는 미묘한 감각이 당신을 깨울 것이다. 그 존재가 궁금해지고 그리워질 것이다.
잠시 백석(白石) 시인의 시를 떠올린다. 백석의 시에서 사물과 공간은 지나간 사람들의 감각과 기억, 감정과 삶의 편린을 담는 그릇이 된다. 「산숙山宿-산중음山中吟1」이라는 시에서, 시의 화자는 국수집이자 여인숙인 공간에서 하루를 묵는다. 그곳에서 화자는 목침(木枕)을 베고 누워 목침을 베고 지나갔던 사람들을 떠올린다. 그들의 얼굴과 생업(生業)과 마음들을 떠올려본다. 사물과 공간에 흔적을 남기고 간 사람들을 떠올리는 화자의 마음은 시간의 한계를 넘어 그들과 교유하고 공감한다.
이렇듯 사물과 공간은 떠난 영혼을 불러들인다. 아니 영혼은 되돌아온다. 어느 때 그 영혼과 마주치는 때가 올 것이다. 무언가 당신의 안을 뚫고 지나가는 이상한 느낌을 받을 때, 그 순간을 기억하시길. 그때 그 사람은 당신을 통과할 것이다. 당신은 오늘 어떤 문들을 지나왔고 어떤 공간들을 지나왔는가. 그곳이 익숙하든 낯설든 상관없다. 다만 어느 순간 당신에게 육박해오는 존재들이 있다.
홀로 찾은 커피숍, 카페, 식당, 그 어떤 공간들이어도 좋다. 흔적이 남은 그 어떤 사물들이어도 좋다.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가는 여정. 범죄자가 범죄 현장을 다시 찾듯, 그 사람 또한 그곳을 언젠가 다시 찾아왔을지 모를 일이다. 당신은 지금 홀로 그곳을 찾아가 문을 열고 들어가 자리에 앉는다. 문을 열 때, 자리에 앉을 때, 다른 시간대의 그가 문을 열거나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렇게 서로를 뚫고 지나간다. 순간 그리움과 사랑과 미련과 궁금증에 당신은 들린다. 겹쳐 있는 시간의 차원. 오늘 아니면 내일, 당신은 서로의 마음과 투명한 몸이 서로 겹치고 또한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을 경험할지 모른다. 그 겹침의 순간 환하게 터져 나오는 잠시 잠깐의 투명한 빛. 당신은 혹 떠나간 사람이나 죽은 사람과 그렇게 겹쳐지는 순간을 경험할지 모를 일이다. 언제든 깨어있을 일이다.

 







주영중 시인
●2007년 『현대시』로 시인 등단.
시집 『결코 안녕인 세계』, 『생환하라, 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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