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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의 죄

“법에 의하지 않는 방법을 충분히 알고 있는 사람이 좋은 변호사다(Who knows enough to keep out of law is a good lawyer)”라는 서양의 법언이 있다. 적어도 좋은 변호사 정도는 되고 싶어서 나는 이 법언을 늘 마음에 담아두고 있다.
수년 전 30대 초중반의 여성이 성공한 벤처 기업가인 남편의 외도를 이유로 이혼을 원한다며 우리 사무실을 찾아왔다. 대체로 이혼사건 의뢰인들은 신뢰할 수 있는 변호사에게 상담을 받고 사건의뢰를 하기 위해 지인 등으로부터 소개를 받고 오기 마련인데, 그 부인은 인터넷 검색으로 나를 찾아왔다고 해서 조금 의아했다.
그녀의 남편은 대학 재학 시부터 벤처사업을 시작해서 큰 성공을 거둔 30대 후반의 기업가인데, 사업이 나날이 번창하고 큰돈을 벌게 되자 건실하던 사람이 그만 늦바람이 나서 주색에 빠져버렸단다. 그런 사정과 부인이 가져온 근거자료들을 보니 재판상 이혼사유는 충분해 보였고 무난하게 승소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러나 건실했다는 남편이 잠시의 실수를 한 것일 수도 있는데, 아직 젊은 부부가 이혼을 한다는 것이 안타까워서 조심스레 재고를 권유하려고 마음먹고 있는데, “남편의 재산이 백억 원 대가 훨씬 넘는데, 얼마나 재산분할을 받을 수 있겠냐”는 부인의 질문에 그만 ‘이혼을 재고해 보시라’는 말을 삼켜버리고 말았다. 얼추 헤아려도 수십억 원대의 재산분할이라니...
그 후로 부인은 우리 사무실을 여러 차례 방문하여 이혼소송을 준비했는데, 자주 만나 대화하는 중에 나는 그녀와 남편이 5살짜리 외동딸을 극진하게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울한 표정으로 변호사와 이혼소송에 관한 의논을 한 후, 그녀는 항상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핸드폰을 들여다보곤 했는데, 뭘 그렇게 보나 싶어서 물어봤더니 아이의 사진을 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엄마의 휴대폰에는 아이의 사진만 수백 장이 저장되어 있었는데, 아이는 무척 귀엽고 총명해 보였다. 엄마와 아빠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참 밝게 자라고 있는 아이구나 싶었는데, 행복한 표정으로 아이의 사진들을 보여주는 부인을 보다가 나는 불현듯 정신을 차리게 되었다.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지?’

그때부터 나는 부인에게 이혼을 분명하게 결심한 것인지, 남편과 진지하게 대화를 나눠볼 생각은 없는지, 그리고 부모의 이혼으로 아이가 받을 상처는 어찌할 것인지를 조심스럽게 묻기 시작하였다. 역시 그녀는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변호사인 내가 하자는 대로 그냥 따라가고 있었던 것이다. 나를 찾아오기 전에 많은 변호사들에게 상담을 받았는데, 모든 변호사들이 승소를 장담하며 이혼소송을 적극 권유했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도망치듯 또 다른 변호사를 찾아갔는데, 나를 만났을 때는 거의 체념한 상태에서 떠밀리듯 이혼소송을 받아들였던 모양이다.
“아이를 위해서라도 남편에게 다시 기회를 줘보고, 그래도 안 되면 그 때가서 이혼해도 늦지 않다”는 내 권유에 부인은 연신 “고맙다”며 흐느껴 울었다. “처음부터 이랬어야 했는데.. 그놈의 돈 때문에..” 그녀의 눈물은 마치 내 양심의 상처에 붓는 쓰라린 소독약 같았다.
끝내 그녀는 남편과 협의이혼을 했지만, 나는 뒤에서 그녀가 얻게 될 권리들과 요구할 수 있는 내용들 그리고 협의 방법 등을 조언해 주었고, 협의가 잘 이루어져 재판상 이혼으로는 어림도 없을 파격적인 재산분할과 양육비 조건이 합의되었다. 그리고 이처럼 원만하게 이혼 합의를 한 결과, 부부는 매주 주말을 아이와 함께 지내기로 했다고 한다. 만약 이혼소송을 통한 결별이었다면 이런 결과는 도저히 가능하지 못했을 것이고 부부는 물론 어린 자녀에게 평생 아물지 않을 상처가 남게 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될 수 있는데도 무조건 이혼소송을 권유하여 의뢰인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다면 변호사는 자신도 모르게 무거운 죄를 짓게 되는 것일 게다.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나는 가슴이 서늘해지는 두려움을 느낀다. 법대로 했다는 사실만으로 변호사가 자신도 모르게 저지른 죄가 정당화되거나 변명될 수는 없다. 법만 아는 변호사는 운전대나 브레이크가 없이 가속페달만 있는 자동차 같은 흉기임을 늘 잊지 말아야겠다. 법 이전에 상식과 도리가 있고, 인간의 마음이라는 것이 있음을 변호사는 명심해야만 할 것이다.
그래도 너무 겁먹지는 말자. 변호사는 평생을 배우고 성찰하고 깨달아가며 깊어지는 멋진 직업이 아닌가?
● 사생활보호를 위해서 의뢰인 등의 인적사항에 관한 내용들은 모두 허구임을 밝힙니다.

 







정철승 변호사
●법무법인 더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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