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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마르트르

흑인 악사의 광장
짧은 시가 유행인 겨울이 오면
돌계단은 기지개 켜며 일어선다
접힌 그림엽서의 귀에 대고 노래 부르는 새들

하얀 집들의 굴뚝을 오르락내리락
봉고차가 물감처럼 아이들을 풀어놓는다
고양이 등을 쓰다듬는 구름이
한 아이를 붙잡고
귀 자른 자와 독주 마신 자의 이야기를 속삭여주기 위해

배고픔, 얘야, 그건 무엇도 아니지
혁명 뒤에 이 언덕은
널 버린 햇살을 찾아 마다가스카르로 떠날 거야
그때까지는

잠든 해바라기의 태엽을 감는 종소리
성탑 계단을 베고 눕는 악사 곁에서
봉주르? 가끔씩 찾아오는 아침

공간과 장소. 같은 말처럼 보이지만 다른 말이다. 이푸 투안에 의하면 물리적 좌표 틀에서 전후좌우로 경험되는 ‘공간’과 달리 ‘장소’는 내면에서 ‘의미 있는 경험이 발생’한 곳으로, 소중하게 인화하여 간직한 필름 같은 어떤 곳이다. 유년의 고향, 잊지 못할 추억의 만남과 이별이 일어난 곳. 또는 꿈으로 길어 올린 낙원의 유토피아 같은 곳.
처음 시를 읽던 문청 시절의 나에게 파리의 몽마르트 언덕은 장소 그 자체였다. 수많은 시인과 화가, 음악가들이 모여들고 교감하며 자유와 청춘과 예술의 열정을 불태우던 곳. 왜 고흐는 네덜란드에서 파리로, 몽마르트로 가야 했던가? 최근 내셔널 지오그래픽 채널에서 방영된 「지니어스 Ⅱ」의 피카소를 보라. 그 또한 스페인에서 벗어나 몽마르트로 한걸음에 달려가고 있지 않은가? 르누아르, 마티스, 로트렉, 위트릴로 같은 화가들. 막스 자콥, 아폴리네르, 엘뤼아르 같은 시인들. 에릭 사티처럼 무명으로 장렬하게 산화한 음악가들. 우리나라에도 그런 벨 에포크(Belle Epoque) 시대가 있었다. 1930년대 후반과 전후(戰後)의 명동. 김광균, 오장환, 박인환, 김수영, 김종삼. 그 가난하고 찬란한 시인들의 성소(聖所).
시와 예술의 유토피아가 보고 싶어 파리에 간 적이 있다. 에펠탑도 노트르담도 좋지만, 몽마르트 언덕에 오를 때의 설렘과 흥분을 잊지 못한다. 유무명의 예술가들이 광장과 뒷골목 카페에 모여 앉아 시를 쓰고 물감을 짜고 뜨겁게 예술을 논하는 진풍경이 펼쳐지겠지. 그 같은 기대가 순진한 착각이란 걸 깨닫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신주(神酒) ‘압생트’는 없었고, 사방은 온통 상품화된 로트렉 엽서들로 도배되어 있었다. 노을 지는 광장에 우두커니 앉아 흑인 악사의 버스킹을 들었다. 인사동이 옛날의 인사동이 아니듯, 몽마르트에도 과거의 신화들은 유령처럼 떠도는 몸이 되었다. 볼 수 있는 눈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라면 할 말은 없다. 말하고 싶은 건 소중히 길어 올렸던 한 개인의, 마음의 ‘장소’에 틈이 생겼다는 것. 누구에게나 이런 식으로 자신만의 장소가 희미해진 슬픈 경험이 있겠지.
그래서일까. 이 시에는 과거 몽마르트 언덕을 걷던 예술가들이 등장하지 않는다. 벨 에포크의 신화와 전설, 그 이야기도 장광설도 들어 있지 않다. 재현의 서사보다는 몽마르트 그 소중했던 내 내면의 꿈과 장소부터 감각적으로 환기해 보자. 그곳 사크레쾨르 성당의 돌계단은 예술적 혁명의 꿈으로 ‘기지개 켜며’ 다시 일어설 것이다. 로트렉의 그림엽서가 키치로 소비되지 않도록 새들은 곁에서 쉼 없이 노래 부를 것이다. 이제 몽마르트에 과거의 예술가들은 사라졌지만, 그들은 자신들을 버린 찬란한 ‘햇살’의 영감을 찾아 또 한 번 멋진 신세계로 떠날 것이다. 그때까지 필요한 것은 사물들의 속삭임에 귀 기울이며 예술적 영감의 태엽을 감아두는 일. 과거 몽마르트의 공간을 재현할 수 없지만, 몽마르트의 장소는 아직 살아 있다, 감각적으로.

 

 

 

 

 

박강 시인
●2008년 『문학사상』 신인상 등단
시집 『박카스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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