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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 분석심리학과 중년의 위기

2010년 서울행정법원을 끝으로 판사직을 그만두고 변호사 개업을 한 지 벌써 8년이 흘렀다. 퇴직 당시의 관행대로 대형로펌에 취직하려다 문득 또다시 빡빡한 직장생활을 해야 한다는 답답함에 그냥 지르듯이 개업을 해버렸다.
다만 비용 문제로 단독 개업을 하지는 못하고 이미 개업을 하고 있던 검사 출신 선배변호사가 설립한 법무법인에 방 한 칸을 빌려 개업을 했다.
그로부터 3년이 흘러 우연한 기회에 다른 전관들과 함께 법무법인을 설립하여 3년 정도 공동 운영을 하는 경험을 하기도 하였다. 이후에는 법관 출신들이 주축이 된 중소형 법무법인으로 소속 팀원들과 함께 이전했다. 당시 내 팀원은 나를 포함하여 변호사 3인, 직원 4인이었는데 이들은 현재까지 나와 함께하고 있다.
그러다가 또 2년이 지날 무렵 완전한 독립을 하고 싶어 최근 어느 신축건물 한 층에 아예 새 사무실을 마련해 버렸다. 요사이 다들 불황이라 규모를 줄인다고 하는데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이 별다른 대책도 없으면서 또다시 일을 벌여 버렸고 중년의 나이와 겹치면서 중년의 위기 비슷한 것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2010년 개업할 당시 내가 처음 읽은 책이「융, 중년을 말하다」라는 책이다. 스위스 출신의 저명한 분석심리학자인 칼 구스타프 융을 추종하는 융 학파의 일원인 대릴 샤프가 지은 책으로, 융 분석심리학을 소설의 형식으로 알기 쉽게 풀어냈다.
다른 신경증 걸린 사람들처럼, 중년의 위기에 처한 사람들도 갈등을 겪거나 우울증에 빠지거나 불안에 시달리는데 그 때문에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중년의 위기를 병적인 증상으로 여긴다고 한다. 그러나 그와 달리 융은 중년의 위기를 일종의 자기 치유의 과정으로 보아 중년의 위기는 마음이 병들었다는 증거가 아니라 마음이 건강하다는 증거이고 이는 건강한 마음이 보다 적절한 균형을 찾으려고 시도할 때 발생한다고 한다.
“신경증은 아무 때나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융은 말하였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신경증 때문에 그 전의 인격이 무너지는 것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이러한 붕괴는 사람에게 새로운 차원의 의식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라고 대릴 샤프는 위 책에서 주장하였다.
다소 어려운 말이어서 내가 정확히 이해하고 있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다만, 나를 포함한 중년의 나이를 지나가는 사람은 뭔가 그 전과 다른 심리적 변화를 가질 수밖에 없고 이것이 반드시 유해하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중년의 나이에 뭔가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자면 그동안 내가 쌓아온 내 인생의 전부가 흔들리는 것 같은 위기를 느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때의 위기는 인생의 후반기에 자기를 실현하려는 무의식적인 시도이며, 따라서 이러한 내적인 시도를 따라 위기를 겪어 냄으로써 인생 후반기에 새로운 자기실현이 가능하다는 융의 가르침은 새로운 시도를 하며 매 순간 ‘잘 하고 있는 걸까? 잘한 선택일까?’라는 불안에 시달리는 나에게 이 위기를 견뎌낼 수 있는 심리적 버팀목이 되어 주고 있다.
정신과 전문의인 김녹두 씨가 지은「감정의 성장」, 융 학파 소속의 대표적 분석심리학 전문가인 이부영 씨가 지은「그림자」 등 분석심리학의 탐구서 시리즈도 중년의 위기를 슬기롭게 헤쳐나갈 수 있는 좋은 가르침을 주는 양서라고 생각된다.
다른 회원들도 혹시 나와 같은 중년의 위기를 겪고 있다는 생각이 스친다면 융의 분석심리학을 한번 접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다만 이러한 제안을 함부로 하기에 아직은 성숙하지 못해 아무래도 주제넘은 것 같다는 생각은 지우기 어렵다.

 

 

 

 



이창헌 변호사
●법무법인 지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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