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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으로 그리고 성폭력 피해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각자 맡은 구역에서 청소를 하면서 오늘 하루 직장에서, 학교에서 또는 직업자활작업장에서 있었던 일들을 재잘재잘 이야기한다.
어느 가정의 저녁 시간과 똑같은 자매들 간 일상적인 대화다. “커피숍에 손님이 많아서 힘들었다”, “학교에서 친구가 화장실가다 넘어져서 도와주었는데 고맙다고 말을 안 해서 속상하다”라는 등의 대화를 듣고 있다가 무심히 들은 대화의 내용 때문에 3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가슴이 멍하고, 알 수 없는 답답한 마음이 든다. 단지 같이 살고있는 식구가 부당한 대우를 받은것에 마음이 상한것만이 이유는 아닐 것이다.
이십 대 초반인 강미(가명)는 복지관에서 장애인 직업자활을 다니고 있다. 그리고 유민(가명)이는 장애인 바리스타 자격증을 취득하고 공공기관청사 안의 커피숍에서 근무하고 있다. 청소를 막 끝내고 소파에 앉아서 둘의 대화는 시작되었다.
“점심을 먹고 커피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으려고 줄을 서 있는데 어떤 아저씨가 오더니 너 장애인이지? 내가 먼저 뽑고 너는 나중에 뽑아! 이러는 거야. 내가 장애인라고 무시하나 봐. 기분이 나빠.”라고 강미가 말을 하니 이 말을 듣고 있던 유민이는 “강미야 기분 나빠하지 마! 우린 장애인이야. 장애인이 자존심을 가지고 있으면 살아가는 데 무지 힘들거든. 그러니까 기분 나빠하지 마!”
우리 집은 9명의 지적장애인이 생활하고 있다. 지적장애인이면서 성폭력 피해자인 이들이 생활하는 피해자 보호시설이다.
친부, 양부, 삼촌, 주변의 마을사람 등 가해자에게 수개월에서 수년 동안 성폭력뿐만 아니라 신체적 학대와 폭력 그리고 방임 등으로 힘든 삶을 살아온 이들이다.
대부분의 입소생들의 생태학적 배경을 보면 어려서부터 일상생활에서의 방임, 방치 등의 환경에서 성장하였고, 교육적 방임으로 인해 앞서 말한 것처럼 인간이 가져야 하는 기본적인 자존감이나 자존심마저 스스로 주장하지 못하고 내려놓아야만 이 사회에서 살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성폭력 피해를 입고도 가해자보다 더 죄인처럼 위축된 생활을 하는 것이 지적장애를 가진 성폭력 피해자라고 생각한다.
장애인에 대한 사회의 전반적인 시스템이 미약하고 인식 또한 선입견을 갖고 있음에도 장애인 인식개선을 위한 사회적 노력은 미흡하다.
15년간 이들과 같이 생활하면서 항상 마음에 담아두고 해결하지 못한 것도 우리 사회가 지적장애인을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이 미성숙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장애인이면서 성폭력 피해를 가지고 살아가는 이들이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일은 요원한 세계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이제는 ‘정의와 평등과 인권을 부르짖는 현 사회에서 그들 스스로가 자신들의 자존감을 버리게 만든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
올해로 1981년 제정된 장애인복지법(심신장애자복지법)이 시행된 지 38년이 흘렀고, 1994년 제정된 성폭력특별법이 시행된 지 25년이 흘렀다.
특히 성폭력특별법이 기존에는 범죄자의 처벌과 피해자 보호를 같은 법률에서 다루었으나 2010년에 법률적으로 분리 제정하여 피해자에 대한 국가의 적극적 보호와 치유회복을 위한 장치가 마련되었다.
그러나 2017년부터 소셜 미디어가 기폭제가 되어 해시태그(#MeToo)로 시작된 성추행, 성폭력 피해 고발 운동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폭력피해자들에게는 2차적 피해가 되고 있다.
지난해부터 시작한 미투 운동으로 위성방송, 지상파방송 할 것 없이 각종 뉴스와 시사프로그램에서 성폭력과 성추행을 주제로 다루는 바람에 TV채널을 돌리기만 해도 하루에 수십 번, 수백 번씩 그 단어들을 들어야 했다.
같은 피해를 가진 우리 입소자는 처음에 성폭력, 성추행이라는 단어를 애써 듣지 않으려 외면하였지만, 지금은 체념과 무관심으로 가득 차 있는 얼굴이다.
이들이 우리 사회의 소수자이기 때문에 다수자를 위해 이러한 2차적 언어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 것인가?
장애인이기 때문에, 자존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힘들기 때문에 그들 스스로가 인간으로의 가치와 평등을 내려 놓아야 하는 것인가?
어느 입소생의 말 한마디가 나의 뇌에 아직 웅웅거리 듯 여운으로 남아있다.
“우리는 장애인이야. 그리고 성폭력을 당했기 때문에 우리 편은 별로 없어! 아마 결혼도 못 할 거야!

 

 

 

 

 



김재승 원장
● 장애인 성폭력 피해자 보호시설
꿈밭에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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