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님께서는 ‘도시재난 전문가’와 ‘도시생존 연구원’이라고 알려져 있으며, 도시재난연구소의 소장으로 계십니다. 한국에서는 다소 생소한 문제를 연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제가 20대였던 1990년대에 많은 재난이 있었어요. 기억하시겠지만,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붕괴, 씨랜드 화재 참사 등.. 그때 제 친구들 중에 피해를 입은 친구도 있었습니다. 당시 정부나 소방서의 대응이 허술하고 답답했었거든요. 그런 상황을 보면서, “우리나라에 또 다른 재난이 생기면 어떻게 해야 하나?” 궁금하여 찾아보았습니다. 그런데, 한국에는 그러한 문제에 관한 단체나 전문가가 없었어요. 그렇게 찾아보던 와중에 제가 외국의 책, 자료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요.
1996년 군대에 있을 때도 잠수함을 타고 간첩단이 내려온 사건이 있었습니다. 제가 거기에 참가했어요. 전에는 전쟁영화를 좋아했고 기회가 있을 때 출동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막상 비슷한 상황이 되니까 겁나고 총소리에 긴장감이 생겼어요. ‘진짜 전쟁이 일어나면 우리나라는 어떻게 될 것인가?’라는 염려가 들더군요. 1994년 제1차 핵위기가 발생했을 때 제 친구들 중에는 출동 준비를 하면서 머리카락을 일부 자르고 유서를 쓴 친구도 있었습니다.
그런 사건들을 보니, 우리나라에 자연 재난도 있고 전쟁 위기가 있음에도, 사람들이 너무 무관심하고 정부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서 그러한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요.

2010년부터 DAUM 카페에 ‘생존 21C’를 만들어 생존 대비책소개와 정보를 공유하고, 컨퍼런스에 참여하여 도시생존에 관하여 알리며, 한국형 재난 대비 생존법에 대하여 연구하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력과 활동을 소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때 카페를 만들었던 이유를 말씀드릴게요. 재난이나 생존에 관심이 있어서 카페도 찾아보고 블로그도 찾아봤더니 종말론, 음모론 등 부정적인 내용이 대부분이었어요. 그래서 정말 지진과 같은 큰일이 생겼을 때 실질적인 정보를 얻고 싶음에도 그와 같은 부정적인 내용이 도움 되지 않을거라 생각하고 카페를 만들었습니다.
그 뒤로 제가 공부한 자료를 모아 책『재난시대 생존법』을 출간했어요. 서울소방본부, 정부기관 등에서 자문위원 활동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재난안전 전시회에 매년 참여하여 생존부스를 꾸렸어요. 생존부스에서 생존물품, 비상식량 등을 소개해 드리고 사용법도 알려드렸죠. 72시간 서바이벌 배낭, 좀비카 등이 대표적입니다.
제 활동에 대한 반응이 좋아서 대학 강의, 방송 출연, 신문 기고를 했어요. 라디오에도 1주일에 5군데 정도 출연하고 있죠. 요즘은 대학에도 재난 관련 학과들이 생겨나고 있는 추세에요. 우리나라도 재난을 주제로 한 ‘터널’, ‘부산행’ 등 드라마, 영화가 많이 나와요. 작가들과 미팅하고 의견도 주고는 합니다. 영화 ‘터널’에서는 한 달 이상 터널에 갇힌 상황에서 물이 없을 때 어떻게 생존하는지를 알려줬어요. 그랬더니 작가들이 신기해하며 시나리오 쓸 때 참조했습니다.
이러한 민간 재난생존 전문가는 우리나라에서 제가 처음이에요. 미국이나 일본에는 민간 재난 전문가들이 많이 있어요. 우리는 너무 늦었죠. 한국에서도 그러한 전문가가 늘고 활동이 확대되었으면 좋겠어요.

종말론은 20세기 세기말적 현상이 아니었나요? 소장님께서 주신 명함을 보니 ‘코난’이라는 별명이 기재되어 있더군요. 재밌는 별명이에요.
2012년에는 종말론이 많이 확산되었잖아요. ‘2012’라는 제목의 영화도 있었고요. 그때 언론에서 많이 나왔어요. 종말, 생존 이런 것들을 이야기하면, 우리 사회에서는 말로도 그런 것을 꺼내지 말라고 하고 꺼리는 분위기예요. 안전 문제도 그렇게 보고 있죠. 저는 사람들이 그 문제에 밝게 접근해야 한다고 봐요. 그래야 지진 등 재난에 평소에 회피하지 않고 접근할 수 있겠죠.
제가 ‘코난’이라는 별명을 사용하고 있는 것도 재난이나 생존이 사람들에게 편하고 긍정적으로 읽히기 원해서 그런 거예요. 미국에도 저와 같은 재난생존, 재난대비 전문가들이 있는데, 이를 ‘프레퍼’라고 합니다. 이들은 자기들끼리만 정보를 공유해요. 그래서 어둡고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하죠. 저는 책을 쓰면서 재난에 긍정적이고 미래지향적으로 다가가려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좀비카>

부산행, 샌 안드레아스, 해운대 등 재난영화를 보면, 인간이 쌓아올린 문명도 대자연의 위력 앞에서 허무하게 무너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에 있어 우리나라의 경우 어떠한 분위기인가요?
요즘 그런 영화들이 유행했죠. 인기도 많이 있었어요. 사람들이 안전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반증해요. 사건, 사고도 그렇고, 자연재난도 그렇죠. 예전에 제가 지진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이 쓸데없는 이야기를 한다고 했었는데, 작년과 재작년에 포항과 경주에 지진이 일어나면서 직접 겪어보니 이제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인식이 강합니다.
재난은 미리 준비해야 하는데, 사실 사전에 모든 일을 겪어볼 수는 없겠죠. 우리나라도 진도 7의 대지진이 일어날 수 있다는 한국지질연구원의 발표가 있었어요. 그러자 경주시, 포항시는 한국지질연구원에 직접 찾아가서 주민들의 불안을 유발하는 발표를 왜 하느냐고 항의하였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나라의 경우, 그러한 문제를 외면하고 말하기 꺼리는 분위기예요. 인류 역사를 보면 홍수, 지진 등 재난과 전쟁이 발생한 적이 있었고, 그에 대해 조금이라도 대비를 해야 한다고 봅니다.

최근 일본에서 진도6의 오사카 지진, 기록적 폭우가 일어나는 등 세계 각지에서 재난, 전쟁 등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외국에서는 도시재난에 관한 연구와 대처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떤지가 궁금합니다.
일본의 경우, 도쿄에 진도9의 대지진이 조만간에 올 수 있다고 학자들이 강력히 경고하고 있어요. 도쿄 대지진이 있기 전에 후지산이 폭발할 수 있다고 하죠. 후지산이 분화하면 수도권 약 1,000만 명이 위기에 처할 수 있어요. 이에 대비하기 위하여 도쿄에서는 매달 1회 시민들이 대피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직장인들이 걸어서 집까지 가는 훈련을 하고 있고, 롯폰기 인근 빌딩 지하에 수만 명이 들어가 열흘 이상 먹고 마실 수 있는 식량과 물을 비축하더군요.
일본은 우리나라 입장에서 보면 과하다고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준비하고 있어요. 그럼에도 지난 기록적 폭우와 같은 자연재해는 엄청난 재앙입니다. 정부, 지자체에서 이러한 것을 준비하여야 한다고 봅니다. 저도 서울소방본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강의하고 있는데, 공무원들이 아무래도 순환보직이다 보니 이 분야의 지식이 없어요.
우리도 매년 1, 2회 민방위 대피 훈련을 하잖아요. 그런데, 작년 여름 민방위 훈련 중에 국무총리가 오셔서 “사람들이 뛰지 않고 걸어간다.”라고 질책하셨죠. 공무원들도 편한 운동화를 신고 뛰어야 하는데 하이힐이나 구두를 신고 경광봉만 흔들고 있으니 시민들도 분위기상 따르지 않아요. 이렇듯 우리나라의 공무원들은 보여주기 식이 많습니다.

<생존배낭>

한국의 경우 세월호 참사를 비롯하여 삼풍백화점 등 붕괴사고, 크레인 전도, 제천, 밀양, 세종 화재참사 등이 있습니다. ‘한국형 재난’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우리나라의 경우 관련 전문가가 소신과 지식을 갖고 과감하게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몇 년 전 뉴욕 도시 한복판에 여객기가 추락했어요. 그때 여객기의 기장이 비상착륙 시켜서 수많은 시민들을 살렸거든요. 대통령, 고위 관료들이 직접 지휘한 것이 아니라 소방관 또는 경찰서장이 본부장일을 하고 대통령, 총리, 장관도 거기에 끼지 못해요. 오바마 대통령도 옆에 조그만 의자에 앉아 경청할 뿐이었습니다. 당시 오바마 사진도 있어요. 지진, 산불, 테러에 대응하는 방식도 같아요.
미국 911테러 당시 소방서장이 본부장이 되어서 즉각적인 판단을 하고 명령을 내렸었죠. 현장 전문가가 지휘해야 해요. 대통령이 출동해서 상황본부장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경우 현장에 있는 전문가가 아무것도 모르는 정치인한테 보고를 해야 하고 정치인의 지시를 받아야 하죠.
우리나라는 세월호 참사 때도 그랬고 제천 사건 때도 그랬고 어떤 큰일이 터지면 대통령, 장관 등이 수장 노릇을 해요. 하지만, 그렇게 되면 지휘체계가 망가지고 공무원들이 보고서를 쓰면서 시간도 늦어져요. 공무원 조직의 상명하복으로 인하여 반응도 늦어지고 적시에 해야 할 일을 못하죠.
아무리 주의해도 사고는 날 수밖에 없어요. 우리의 경우 안전을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어요. 안전에 투자도 안 하고, 관련된 업무자의 지위가 낮아요. 은행, 증권, 도시철도공사 등 큰 회사에서 해킹방지 등 안전투자를 비용으로 보기 때문에 큰일이 터져야 부산스럽게 움직여요. 외국에서는 이를 비용이 아닌 투자라고 보고 사전에 대비하죠.

경찰서, 소방서 등 국가기관이 재난에 대처하는 것과 민간이 재난에 대처하는 것은 어떠한 관계가 있는지요.
세월호 사건 이후 민간의 재난 단체, 협회, 학회 등이 우후죽순 생겨서 수백 개가 됩니다. 아직까지 그분들을 보면 실질적이지 못하고 형식적이에요. 가령 심폐소생술, 불 끄는 소방 등 기존에 우리가 봐왔던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요.
지진 등 자연재해를 봐도 교수나 학자들이 있는데, 그분들도 전공분야만 알고 다른 분야는 거의 모릅니다. 재난이 발생하면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재난을 가져와요. 가령 동일본 대지진의 경우에는 연쇄적으로 지진 발생 후 쓰나미가 오고 원전이 폭발했죠. 오히려 3차 재난의 피해가 컸어요. 그런데도 우리나라의 전문가들은 전공에 집중하고 있어요. 저는 전체적으로 연구하고 있어요. 저 같은 민간 전문가들이 많이 활동해서 정부나 지자체 등에 조언하고 활동해야 해요.

민방위 훈련을 가본 적이 있고 민방위의 날도 있지만, 대단히 초보적이고 형식적이었습니다. 재난에 대한 대책도 부분적인 데에만 머물러 있습니다. 어떠한 점에서 보완이 필요한지 궁금합니다.
요즘 장마철, 태풍철이라 TV에서 대처법이 나오고 있는데, 그것도 마찬가지예요. 실질적인 것이 아니라 상투적인 것이에요. 교과서적인 내용에 봐도 그만 안 봐도 그만인 자료들이에요. 재난안전 교육에 참석해도 비슷비슷하고 뻔한 정보에요. 자격증에 관한 교재도 마찬가지예요. 한 마디로 발전이 없어요. 정부에서도 80년대, 30년 전의 오래된 안전 관련 매뉴얼들을 ‘표지갈이’만 해요. 표지와 이름만 바꾸고 내용은 똑같아서 펼쳐보면 그림이나 내용이 옛날 거예요.
외국의 경우, 실질적인 방법을 제시해요. 작년 지진 때에도 ‘도쿄방재매뉴얼’이라고 일본 지자체 매뉴얼이 한국에 알려져서 선풍적 인기를 끌었죠. 300페이지나 돼요. 그에 비해 우리 매뉴얼은 몇 페이지 안 되더군요. 저도 서울시와 함께 매뉴얼 만드는 일을 했었고, A4용지 30페이지 정도를 보냈는데, 몇 페이지는 논란이 있다는 이유로 삭제되었습니다. 재난발생 시 물을 마셔야 하고 고인 물이나 빗물을 마셔야 할 때 그냥 마시면 배탈이 나니 락스 몇 방울을 떨어뜨려 세균을 죽이는 내용을 넣었더니, 케미포비아를 이유로 정부나 서울시에서는 그 내용을 삭제하였습니다. 오늘도 방송출연이 있어서 태풍 관련 실질적인 대처법을 대본으로 제시했는데, 상당 정도의 내용을 빼고 정부 발간 매뉴얼을 가지고 대본을 만듭니다. 방송이니까 무난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 그 이유예요.

최근 태국 동굴 안에 갇혀있던 소년과 코치 전원이 17일 만에 구출된 일도 있었습니다. 재난에서의 생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저희 카페 회원은 2만 명이 넘습니다. 재난의 종류에 관한 관심사가 다 다릅니다. 회원들은 집에 은신처를 만들기도 하고, 비상식량, 장비 등을 갖추어 두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는 가장 중요한 것은 생존 의지라고 생각해요. 그다음이 지식이고, 그 다음이 장비예요.
체력관리도 중요해요. 현대인은 1km도 못 달리고, 배낭에 무거운 짐을 지고 한두 시간도 못 가요. 평소에 운동하고 체력을 다지는 것이 필요해요. 수영, 달리기, 요리, 낚시, 자동차정비, 격투기, 공구사용 등도 생존에 도움이 된다고 봐요.
재난발생 시 대처하는 몇 가지 안전상식을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계단 탈출 시 뛰어가지 말고 빠른 걸음으로 이동하는 것이 좋고 노래를 부르는 것이 좋습니다. 평소 호루라기를 휴대하면 좋아요. 소리를 지르면 먼지를 마시게 되고 폐에 쌓이며 체력이 금방 빠지므로 소리를 지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요. 쇠파이프 같은 물체를 쳐서 소리를 내는 것이 좋습니다.
4대 라이프 라인, 즉 전기, 통신, 수도, 가스 중 수도가 가장 늦게 복구되어요. 밥은 안 먹고 한 달 버티나, 물은 마시지 않으면 3, 4일도 못 버티므로 재난 시 식수 확보가 제일 중요해요. 집안에서 버텨내야 하는 상황이면 수도가 끊기기 전 모든 그릇을 동원하여 물부터 받아야 해요.

각종 재난 및 생존 문제와 관련하여 변호사 입장에서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홍수, 수해로 사람이 죽게 되면 보상금이 나와요. 사망 시 정부가 보상금을 지급하게 되는데, 정부의 잘못, 공무원의 통제 과실로 오히려 위험하게 되는 경우도 있고, 가지 말라고 하는 곳에 가다 빠져 죽으면 보상이 안 되는 경우도 있어요. 이와 관련해서 법적으로 애매한 부분이 많아서 따져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저는 이 분야에서 큰 법조 시장이 열린다고 봅니다. 외국에는 이미 재난 관련 전문 변호사들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우리도 기후변화, 테러 등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므로 법적으로 조언해 줄 수 있고, 담당할 수 있는 전문 변호사도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이 분야 지식이 있어야만 사건 해결이 가능하고 효율적일 것입니다.

● 인터뷰/정리 : 성승환 본보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