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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감독 챔피언 도전기


매년 우승하는 소위 명문팀도 있지만 창단 이래 오랜 기간 동안 우승 한 번 못해본 팀도 있고 수십 년 만에 첫 우승을 하는 팀도 있다. 고교축구팀에서는 충남 천안제일고가 창단 40년 만에 처음으로 정상에 오른 팀이다. 난 서울놈이고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서울에서 다녔다. 서울 한양공고가 나의 모교인데, 한양공고의 축구팀은 전통있는 명문이었다. 내가 재학했던 시절 1학년부터 3학년까지 매년 우승을 했었다. 오히려 못하는 해가 있는 게 이상할정도였다. 그런 나에게 학연·지연이 전혀 없던 약체 고등학교팀에서 제의가 들어왔을 때 고교 선수시절의 잦은 우승으로 인해, 또 영화에서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뻔하고 이상적인 스포츠영화처럼 될 거라는 생각에 자신있게 받아들였다.


나는 이름만 들어도 대한민국 국민이 다 아는 축구선수는 아니지만 현역시절 프로와 내셔널리그(현 프로 2부리그)를 오가면서 서른 중반까지 현역으로 뛴 실패하지 않은 축구선수였다.
그러나 지도자로서는 초등학교·중학교 감독 경험도, 고등학교 코치경험도 전무한 생초보감독이었던 것이다. 현실보다 이상에 가깝다 보니 열심히 가르치면 아무리 약한 선수와 약한팀이라도 마법처럼 변화하고 우승하며 감동으로 결말 짓는 여느 흔해 빠진 스포츠 영화처럼 되리라 생각했지만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깨닫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난 결국 최하위팀의 보잘것없는 감독이 되었다.


이상을 꿈꾸며 시작한 제2의 인생이었지만, 최대한 빨리 현실을 깨달았다.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하나씩 실천해 나갔다. 우리 팀이 200여 고교 팀을 제치고 우승할 날을 바라보며 10년의 그림을 그린 것이다. 내가 마법사가 아니기에 남들보다 나의 모든 열정을 다 쏟아붓는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하여 우리 팀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 올릴 수 있었다. 처음에는 이 팀으로 스카우트 할 수 있는 최대치의 선수가 D급이었다. 최소한 D플러스를 만들려고 노력했고 다음 해에 D플러스 선수를 스카우트 할 수 있는 팀으로 성장하여 한 단계씩 변화하는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그렇게 D급 선수를 뽑는 팀에서 최소 B플러스 선수를 뽑는 팀이 되었고 2년 전인 2016년부터 파이널까지 진출하는 팀이 되었다. 그렇지만 선수는 최정상급으로 올려 놓고 정작 감독 최정상의 준비된 감독이 아니였기에 번번이 2년 연속 준우승에 머물렀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잘 먹듯이 우승도 해 본 감독이 하는 것이란 걸 또 알게 되었다.  그 많은 지도자들이 정상에 오르려 혈기와 열정만으로 노력한 것이 결국 실패로 끝나는 걸 보았기에,  세 번째는 경험에 의한 냉정을 찾으려 노력했다. 그리고 나와 나의 팀은 올해 2월 세 번째 찾아온 기회인 대한축구협회장배 전국고교 축구대회 파이널에서 기어코 정상에 오르고 말았다.

2018. 6. 금석배 전국고등학교 축구대회에서


천안제일고는 이번 우승을 하기 전까지 9년간 전국대회 입상실적이 4강 4회, 준우승 2회였던 팀이다. 하지만 점점 정상급으로 발전해 왔고, 우상을 눈앞에 두고 번번이 무너질 때 주변에서 보내는 위로가 나에게는 더더욱 오기를 품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천안제일이 언제 이렇게 성적을 냈었어”, “4강도 잘했어”, “준우승도 잘했어~” 라는 위로에 ‘4등도 2등도 잘한 거면 우리는 1류팀과 선수는 아니란 거네~’ 라고 생각하며 더더욱 칼을 갈았던 것 같다. 지금 돌이켜보면 내게 위로를 건네어 오기를 품게 해준 분들께 감사함을 느낀다. 그리고 첫 우승을 한 지 4개월 후인 지난 6월, 아직도 우승이 고픈 나와 나의 자랑스런 제자들은 또 한번 전국대회에서 우승하여 두 대회 연속우승을 하고 말았다. 난 이번에는 우승 경험이 있는 감독으로서 “우승 한번 해봤더니 우승이 쉽네요.”라고 건방진 인터뷰를 했다. 언제나처럼 축구가 좋고 축구가 있어 모든 게 행복하다.^^

 

 

 




박희완 감독
● 천안제일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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