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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모독

신은 부하들을 시켜, 세계에 입장하는 이들에게 수고비 대신 코스트코 빵을 나눠주었다. 사람들이 태어났다. 빵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어리둥절했다. 우리는 모여 골똘히 생각했다. 왜 우리들은 빵을 받지 못한 걸까?

1) 옷이 한 벌밖에 없었다. 목둘레가 해진 런닝구만 걸치고 아랫도리 없이 입장하려 들었다.
2) 영국식 파이프 담배 모양의 영혼을 소망하는 것으로 신성모독을 했다
3) 성당 의자에 너무 오래 앉아 있는 여자를 보며 그 모습이 상처 난 부위에 딱지 지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4) 매일 매일 신나는 꿈을 꾸었고 그래서 꿈과 현실을 바꿔치기하고 싶었다
5) 신을 보며 저 사람은 소화기관에 작은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의심했다
6) 제대로 된 사람, 이라는 개념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7) 그래서 학교를 잘 나가지 않았다
8) 세상의 모든 도서관이 불에 탔을 때 구하고 싶은 책이 없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9) 책을 너무 많이 읽었다
10) 그래서 희망을 무서워했다
11) 그래서 미친 개가 자꾸 쫓아왔다
12) 그래서 뛰어, 뛰어, 뛰어다녔다

우리가 빵을 기다리고 있다

사람들과 친해지기가 어렵다. 고기를 구워 먹으며 친구들이 예능 얘기를 하며 웃었는데 나는 웃지 못했고, 그들 중 한 명이 보영이는 왜 맨날 말이 없어, 너도 얘기를 해봐, 라고 말했다. 평소와 달리 나는 울컥했다. 왜냐하면,  내가 어떤 말을 해도 이해받지 못할 거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라는 말에 확신이 있었으며 이 말을 하는 것이 폭력적일 것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입을 다물었기 때문이다. 나는 문학 때문에, 이 망할 문학 때문에, 세상의 극소수의 사람들과만 개그 코드가 맞는 인간이 되어버렸고, 그래서 착하고 선량한 내 주변 사람들과는 사랑에 빠질 수도 없어진 거야, 그래서 내가 웃지 못하는 거야, 라는 말 또한 하지 못했다. 왜 사람들이 웃을 때 나는 웃지 못할까? 생각해보면, 세상이 웃는 방식으로 내가 웃었다면, 애초에 시를 쓰지 않았을 것이다. 세상이 미소 짓지 않는 방식으로 내가 미소 지었으므로 시를 쓰게 되 었기 때문이다. 자랑이 아니라, 이건 서글픈 이야기이다.

마감 때문에 시를 쓰는 나날이다. 하지만 지금은 시 창고가 텅 비었으므로 일기재탕시밖에는 쓸 수가 없다. 어쨌든, 시를 쓰려고 한다. 그래서 먼저 손톱에 매니큐어를 발랐다. 자신감과 용기를 불어넣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피자를 시켰다. 혼자 먹을 거라서 레귤러 사이즈를 시켰다. “치즈 크러스트를 추가해 주세요”라고 말하니,“ 레귤러는 치즈 크러스트가 불가합니다”라고 해서 “그럼 라지 사이즈로 주십쇼”라고 말했다. 교육을 받은 건지, 이 피자 집에서는“오십 분에서 육십 분 정도 소요되는데 괜찮습니까?”하고 매번 물어본다. 일종의 시험이자 관문 같은 건가? 왜냐하면, 절대 오십 분에서 육십 분이 걸리지 않기 때문이다. 거짓말을 하는 이유는 두 가지로 추정된다.

1.  한 시간을 기다릴 만큼 피자가 절실한가,를 알아 보기 위해.
2.  기대를 낮추어 기쁘게 하기 위해. 짜잔, 한 시간 아니고 십 분 안에 도착했어! 


그럼으로써, <나 벌써 왔어! 생각보다 빨리 왔지?>라는 긍정적인 느낌이 피자에게 전이되도록 조건 연합시키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어디선가‘피자’라는 말만 들어도, 소망은 때때로 빨리 이루어지기도 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살 수 있도록 말이다. 어쨌든, 나는 피자를 기다렸다.

좋아하나? 기다리나?

이 두 물음이 동일하다는 건, 피자를 주문해 보면 분명해진다.

좋아한다. 기다린다.

피자는 또 빨리 왔다. 그러나 1층에서 인터폰이 울리고 나서 배달원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15층까지 올라올 때까지의 시간이, 피자를 만드는 시간보다 오래 걸리는 것 같다는 게 하나의 수수께끼이다. 나는 시를 쓰는 책상에서 피자를 먹었다. 피자를 먹고 시를 쓰려고 했다. 포만감에 잠이 왔다. 그래서 누워서 시를 쓰기로 했다. 그리고 누워서 잠을 잤다. 나는 불면 없이 푹 잤다.

 







문보영 시인
●2016년 <중앙일보>로 등단,
2017년 김수영 문학상 수상,
시집 『책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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