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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인 폭행 사건에 대한 단상

최근, 잇단 의료인 폭행 사건들이 언론에 등장하고 CCTV영상에서 힘없이 맞고 쓰러지는 의료인들을 보면서 공분을 느낀다. 필자 역시 1993년에 의사면허를 취득하고 대학병원 인턴으로 근무하던 시절부터 대학병원 임상교수(영상의학전문의)로서 진료하는 최근까지도 간간이 폭언, 폭행을 경험하였기에 남의 일 같지 않기 때문이다.
주취자 응급실 폭행은 최근에야 언론에서 공론화되었지만, 응급실 당직을 서 본 의사라면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필자도 ‘주취 중 쌍방 폭행’으로 머리가 찢어져 피를 흘리며 응급실에 온 환자를 x-ray촬영 등 검사 후 찢어진 두피를 지혈할 목적으로 봉합했었는데, 병원비가 많이 나왔다는 이유로 응급실 당직의였던 필자와 간호사에게 욕설뿐 아니라 쓰레기통 등을 던지며 ‘그야말로 난동’을 부렸던 환자가 기억난다. 크고 작은 응급실(진료실) 폭언, 폭력 사건들은 늘상 경험하는 일이었지만, 대부분의 의료인들은 진료거부권이 없을 뿐더러, 환자-의료인 관계에서 환자의 처벌을 요구한다는 것은 ‘의사는 환자를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하므로 의료인으로서의 도리가 아니다’라는 직업적 의무나 주변의 압박에 길들여져 온 것도 사실이다.
필자는 중학교 이후 선친의 사업실패로 경제적 형편이 어려웠기에, 의대에 다니면서는 계속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였고 친정어머니께서는 병원 간병인으로 오랫동안 일하셨다. 의사가 된 이후로도 경제적인 어려움은 오랜기간 지속되었는데 응급실 야간당직의사로 일해야 했던 그 시절, 응급실 폭행사건들은 아직도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2004년도에 경험했던 ‘진료 중 폭언 및 괴롭힘’은 그당시 내가 법조인이 되고자 하는 열망을 가지게 한 계기가 되었다. 그 여성 수진자 분은 50대 중반의 중학교 선생님이었는데,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유방암 검사(mammography)를 받고 가셨다가 판정결과가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본인이 교직원 암보험에 가입하여야 하는데, 유소견이 나와서 혹시 보험금 수령에 지장이 있을 수도 있다는 본인의 우려)로 당시 담당자였던 필자에게 병원으로 직접 찾아오거나 전화로 한 달여에 걸쳐 괴롭힘을 주었다. 당시에 필자는, “원하는 대로 판정결과를 바꾸지 않으면 고소해서 망신을 주겠다.” “병원에서 잘리게 해주겠다.”는 등의 폭언에 대하여, 그저 “죄송합니다.” 라고 답변할 수밖에 없었다. 고소, 고발의 개념도 제대로 몰랐던 나의 무지에 대한 자책감, 억울하고 불쾌했던 감정들이 나로 하여금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하여 병원근무를 하면서 주경야독으로 ‘법학공부’를 시작하도록 하였고, 여기서 더 나아가 법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하여 변호사가 될 수 있었다.
법학전문대학원에 8전 9기(1년에 2학교씩 지원 가능, 1회 추가모집 지원)로 입학하였고 변호사시험도 삼수만에 합격하였기에 나로서는 꽤나 고생스러운과정으로 도중에 그만둘까도 수시로 생각했었다. 과거에 경험하였던 진료실 폭언, 폭행 사건이 아니었다면 여기까지 도저히 올 수 없었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돌이켜 보면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였다’라고 해석해야 할지 아니면 ‘예정된 수순’이라는 운명론자의 견해에 따라야 할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2017년 4월 14일 변호사시험 6회의 합격자 발표 이후 2년 차 변호사로서 일하고 있지만, 의료인 폭행에 대해서는 사회적인 합의와 입법적 대책마련이 절실하다는 데에 적극 찬성하는 입장이다. ‘두려움에 떨면서도 폭언, 폭행하는 상대방이 환자이니까 그래도 치료해야만 하는 상황’을 의료인에게 강요하는 것은 의료인에 대한 지나친 ‘침해’에 해당될 수 있다. 더구나 다른 환자들이 의료인으로부터 적절한 진료를 받을 권리에 대해서, 결과적으로는 2차, 3차 침해를 줄 수 있기 때문에 유효적절한 입법적 개선이 요구되는 것이다.
지금도 응급실 당직을 서는 의료인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고 구급차의 사이렌소리에 불안감이 엄습하지만, ‘이제 나는 변호사니까 응급실 당직은 안 서도 되는구나.’ 하는 생각에 위안을 삼는다면 비겁한 것이겠지?
‘정의의 붓으로 인권을 쓴다.’라는 서울지방변호사회의 회훈이 때마침 생각난다.
나의 앞선 생각들이 혹시나 ‘보편적 인권’에 반하는 것이 아니기를 또한 바랄 뿐이다.

 

 

 

 



윤은희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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