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 비상임위원으로 6년 동안 계시다가 최근 퇴임하셨는데 국가인권위원회에서 하셨던 업무의 구체적 소개 및 소감 부탁드립니다.
국가인권위원회 비상임위원으로 6년을 재직했습니다. 원래 임기가 3년인데 연임을 했죠. 국가인권위원회는 인권에 관한 정책이나 제도에 관한 조사 연구 및 인권침해행위와 차별행위에 대한 조사와 구제를 하는데, 구제는 주로 시정권고를 하는 것이 주 임무입니다. 상임위원과 비상임위원이 있고 전원위원회에서 중요 안건 결정, 중요 진정에 대한 의결을 합니다. 국가인권위원회에는 분야별로 소위원회가 있습니다. 경찰서 유치장, 교도소 등의 인권침해사건과 군대, 학교, 공공기관, 다수인 수용시설의 인권침해 사건을 다루는 침해소위가 2개 있고, 차별소위는 일반적인 차별 특히 남녀차별이나 성희롱 사건을, 장애인 차별소위는 특히 장애인 차별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북한인권 문제를 다루는 북한인권특위도 있습니다. 저는 6년 동안 인권위원을 하다 보니 운이 좋게 각 소위를 모두 거치면서 사건을 다룬 경험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인권위원을 하면서 추상적으로 바라보던 인권이 아니라 인권취약지대라고 할 수 있는 교도소, 정신병원, 다수인 수용시설 등의 현장에서 인권실태를 제대로 알 수 있었고 인권에 대한 감수성도 많이 길러졌습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 제가 우리나라의 인권상황을 개선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았나 하는 측면에서 크게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법무법인(유) 태평양에서는 조세 분야에서 많은 역할을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인권 분야에 특별하게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변호사법 제1조 제1항은 “변호사는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함을 사명으로 한다.”라고 규정을 하고 있죠. 변호사법 첫머리에도 규정되어 있는 것처럼 법조인들한테는 기본적으로 법률공부를 시작할 때부터 인권이란 것에 대하여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기 마련입니다. 그럼에도 특별히 인권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판사로 재직 중에 2년간 헌법재판소 연구부장을 한 것인데 지금으로 보면 수석헌법연구관 직책입니다. 헌재에서 2년간 기본권에 관한 많은 사건들을 검토하고 연구하다 보니 특별히 관심을 더 많이 가지게 되었죠. 그 후 2008년도에 변호사가 되었는데 2010년경 대한변협의 인권위원장이시던 김용직 변호사님께서 변협 인권위원으로 같이 활동을 하자고 제안하셔서 수락을 하고 2년간 인권위원으로 활동을 하게 되면서 인권에 대하여 다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대한변협 인권위원 경험이 제가 국가인권위원으로 지명된 계기가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국가인권위원회 활동을 하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사건은?
생각보다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이 많이 접수됩니다. 진정을 하더라도 인권침해가 인정되어 인용 후 시정권고가 나가는 비율이 크게 높다고는 할 수 없어요. 인권침해의 정도까지 이르지는 않았는데 개인적 불만을 표출하기 위해 진정을 하는 경우가 많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의 인권수준이 많이 개선되었다고 해도 아직 미흡한 부분이 많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장애인 이동권이죠. 횡단보도라든지 지하철 엘리베이터 이런 것들이 장애인 이동권을 보장하는 수단들인데 예전에 비하면 많이 개선이 되었죠. 그렇지만 선진국하고 비교해 보면 굉장히 부족한 부분이 많습니다. 구체적으로 우리나라에서 휠체어 타시는 분들은 탑승이 불가능해 고속버스 이용을 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유람선도 타지를 못 하고. 그런 부분에 대하여 규정은 갖추어 놨으나 아직 시행이 되지 못하고 있었어요. 장애인이 아닌 사람들이 잘 생각하지 못한 부분들에서 장애인들은 이동권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겁니다. 그래서 그 부분에 대하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직권조사를 해서 개선안을 만들고 시정권고를 했습니다. 모든 고속버스를 저상버스로 만들 수는 없지만 일정 비율은 휠체어로 탑승할 수 있도록 대책을 세우라고 권고를 했고, 회사들이 경제적 부담 때문에 처음에는 난색을 표했으나 최종적으로는 권고를 수용해서 현재 시행해 가고 있는 과정입니다. 그 사안이 국가인권위원회 활동을 하면서 의미 있는 문제 개선을 한 것 같아서 기억에 남습니다.
개인적으로 또 기억에 남는 사건은 직장 내 왕따사건인데 내부고발자로 지목된 사람이 3~4년간 지속적으로 왕따를 당했습니다. 진정인이 장기간 따돌림으로 힘든 상황에서 인권침해 시정 및 보상을 청구하는 사건에 제가 조정장으로 참여했는데 그렇게 오랜 기간 동안 서로 갈등하는 상황이 지속된 것이 정말 놀랍고도 안타깝더라고요. 진행을 하다보니 상호 간에 신뢰관계가 완전히 깨져있고 진정인도 많이 지쳐있는 것 같아 형식적으로 침해를 인정하고 보상하는 것으로는 궁극적인 해결이 되지 않을것 같아서 진정인에게는 차라리 이직을 하고 피진정인에게는 이직을 하는 데 대해 상당한 수준의 보상을 해주도록 설득했습니다. 그 과정은 정말 힘든 우여곡절을 거치긴 했는데 상호 간에 합의가 되어 잘 해결되었습니다. 그 사건이 개인적으로는 기억에 남습니다.

최근 성 소수자 문제, 양심적 병역 거부 문제, 난민 문제 등 인권 분야의 각 이해관계 및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갈등이 많이 발생하고 있는 데, 이러한 복잡한 문제들을 바람직하게 풀어내는 방안은 무엇일까요?
제가 인권 분야를 다루고 요즘같이 첨예하게 대립되는 이슈들을 다루면서 느낀 것은 소위 인권 선진국이라고 하는 나라들의 경우 사람마다 견해와 입장이 다르다는 점에 대하여 상호 존중하고 포용하는 정신이 밑바탕에 깔려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문제 해결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그런 정신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자신과 다른 것을 참지 못하고 어떻게든 자기 입장이나 견해를 강요하려고 하는 경향이 강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고 그런 경향 때문에 문제 해결이 어려워지는 측면이 있다고 봅니다. 성 소수자나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와 생각이 다르다고 무조건 억압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포용하되 그 포용하는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사회적 부작용이 무엇인지 그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안은 무엇인지에 관한 해결책을 찾아나가는 자세가 가장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난민 문제도 크게 이슈가 되고 있는데 다른 나라 사례를 보아도 난민이 여러 가지 어려움을 유발하는 것은 맞습니다. 우리나라도 실제 난민이 아니라 불법 취업을 목적으로 하는 가짜 난민 신청 사례도 있고요. 그래도 국제사회는 우리나라를 지금 선진국으로 보고 있고 선진국으로서의 행동을 해주리라고 기대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국력에 걸맞는 역할을 해야 할 책무가 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우리가 경제 규모나 국가 위상에 비해서 난민을 받아들이는 데 상당히 인색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감내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난민을 더 많이 받아들이는 방향으로 고민해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판사로서 오랜 경력을 갖고 계시고 현재는 법무법인 태평양의 대표변호사를 맡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변호사로 개업하시면서 성공적인 경력을 이어나간 비결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제가 군법무관 경력까지 포함하면 공직생활을 26년 정도 했고 2008년도부터 변호사를 시작했습니다. 제가 변호사로서 성공한 지는 잘 모르겠습니다(웃음). 그래도 큰 어려움없이 해왔던 것 같고 법무법인 대표로서 예우를 해주니 감사하기도 합니다. 제가 처음에 변호사를 시작하면서 ‘내가 법원에서는 고위직이라고 할 수 있는 고등법원 부장 판사까지 했지만 변호사가 되었으니 그에 맞게 고객이나 법원에 겸허한 자세로 임하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다음에 나에게 맡겨진 일은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가짐으로 일을 했고 그러다 보니 지금까지 큰 과오 없이 해 온 것 같아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법조인으로서 살아오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어떤 것인가요?
기본적으로 법조인의 사명이라는 것은 기본적 인권옹호와 사회정의 실현입니다. 법조인은 항상 그 부분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어떻게 보면 ‘변호사는 사회정의 실현에 걸림돌 아닌가’라는 견해도 존재하는데요(웃음), 그렇지만 사회정의 실현에 있어 절차적 정의의 구현이라는 측면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변호사가 절차적 정의를 수호하는 역할이 매우 큰 것입니다. 경우에 따라서 목적이나 의욕이 앞서다 보면 부정한 수단을 사용하거나 절차를 깡그리 무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부분이 있다면 변호사로서 지적하고 시정하고 본인 스스로도 엄격하게 준수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소 민감한 질문일 수 있는데 최근 이른바 재판거래, 사법농단 사태로 인해 국민의 법원에 대한 신뢰도가 악화되고 있고 법원 내부적으로도 상당히 많이 흔들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국민들의 사법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어떠한 개선 노력을 해야 할까요?
지금 보도를 보면 참 저로서도 혼란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우선 재판거래 이야기가 나오는데 재판거래라는 것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확인 안 된 사실이 마치 사실인 것처럼 과장 보도된 측면도 있겠지만 일단 재판거래 의혹을 받고 있는 상황 자체는 부정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그 부분에 대하여는 적정한 절차를 통해 향후 진상이 밝혀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중요한 것은 이 사태로 말미암아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많이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신뢰라는 것은 잃기는 쉽지만 회복하기는 정말 어렵습니다. 사법부가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그야말로 기본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법관은 어떠한 외부의 움직임에도 흔들림 없이, 헌법에 규정된 그대로,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재판을 하고, 그것이 오랜 기간 축적이 되고, 또 국민으로부터 인정을 받아야만 궁극적으로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 과정은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선비는 오얏나무 아래에서 갓끈을 고쳐 매지 않는다’는 말도 있듯이 법조인들은 오해를 살만한 행동을 스스로 삼가야 할 필요성도 있습니다.

현재 법률시장은 무한경쟁이라고 할 만큼 치열한 상황이고 많은 젊은 변호사들이 법률시장 진입이나 생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요, 이러한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어떤 부분들을 개선해야 할지 의견 부탁드립니다.
현재 법률시장이 어렵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우선 우리나라 법률시장 여건에 비추어 너무 짧은 시간에 많은 수의 변호사가 배출된 것도 그 원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변호사 배출 숫자를 줄이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는 것 같고 달리 마땅한 해결책도 없어보여 저도 답답합니다. 그래도 다른 측면에서 생각해 보면 제가 처음 법조인 경력을 시작한 1980년대 당시에는 변호사들은 다들 개업해서 송무변호사로 일했습니다. 그러다가 변호사가 대량 배출되기 시작하면서 사내변호사, 공공기관 변호사와 같이 새로운 분야로 많이들 진출하게 되었고 지금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는데요, 현시점에서도 새로운 분야 개척에 대한 노력을 계속하여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변호사협회 등에서 변호사들이 새로운 분야로 원활히 진출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 주고 경우에 따라서는 법령 개정에도 힘쓴다든지 그런 부분에 전력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아무래도 업무가 많이 바쁘실 텐데요, 변호사 업무 이외에 열의를 가지고 하시는 취미활동이 있으신가요?
특별한 취미라기보다는 제가 법원에 있을 때 서예에 입문했는데 집에서 조용히 붓글씨를 쓰다 보면 정신수양에도 많은 도움이 되고 스트레스 관리도 되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후배변호사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변호사 수도 많아지고 그러다 보니 변호사의 위상이 과거와 달리 많이 낮아졌다고 이야기들을 하는데 그래도 변호사는 되기도 어렵고 많은 사람들이 선망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변호사는 기본적 인권옹호와 사회정의 실현을 사명으로 하여 우리나라를 선진법치국가로 만드는 주인공이라는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십시오. 나아가 변호사는 자격이 아니라 실력으로 승부를 해야 하는 것이니 틈틈이 전문지식 함양 또한 게을리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인터뷰/정리 : 김승현 본보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