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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하는 것은 오직 내 마음

 

 

늦겨울 추위가 기승이다. 따뜻한 나라에 사는 것이 원이었을 정도로 추위를 싫어하는 나는 겨울이면 현저히 활동이 줄어든다. 보일러 온도를 잔뜩 올려두고 두문불출 집안에 틀어박힌 주말, 창 밖을 내다보며 ‘추위가 없는 곳에서 살고 싶다’ 중얼거리다가 문득 피식 웃었다. 내 어린 시절 서울의 겨울, 한강이 얼지 않은 해가 있었던가. 칼바람이 몰아치는 거리는 한 번만 나갔다 들어와도 귀가 아리고, 손등은 시커멓게 갈라지고 터서 부풀어 올랐다. 교통 사정도 좋지 않은 길을 걷다 보면, 발이 얼어 감각이 무뎌지다 못해 동상이 걸리기까지 했다. 겨울 아침 눈을 뜨면 제일 먼저 마주하는 것은 내 하얀 입김. 아궁이로 연탄을 때던 집은 아랫목 바닥 일부만 따뜻하고 윗 공기가 차가워서, 눈 밑까지 이불을 덮지 않으면 코끝이 시렸다. 따뜻한 이불 속에서 조금이라도 더 버텨보려고 꼼지락대다가 간신히 일어나면, 연탄불에 밤새 데운 들통의 더운 물을 다른 식구들도 쓸 수 있도록 딱 한 바가지만 퍼다가 미지근한 물로 떨며 고양이 세수를 했다.


아버지의 겨울 아침은 두꺼운 오리털 점퍼에 장갑을 끼고 거실 난로에 불을 붙이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해마다 그런 겨울을 지내면서, 내 소원은 언젠가부터 겨울이 없는 곳에 사는 것이 되었다. 그런 시절이 있었다.

돌이켜 그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 나는 사실상 추위가 없는, 겨울이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 소매 티셔츠 하나 걸치고 맨발로 돌아다녀도 춥지 않을 만큼 훈훈한 집에 살면서 지하주차장에서 지하 주차장으로 차를 끌고 다니면 추워도 바람을 맞을 일이 거의 없다. 차를 쓰지 못하는 날도 대중교통이 닿지 않는 곳이 없으니, 겨울에 동상이 들도록 오래 걸을 일이 없다. 어디서 더 추위가 없는 곳을 찾을까.


사람이 나이가 들어가면 체력도 정열도 모두 줄어드는데, 유독 욕심만큼은 날로 더해간다. 간절히 원하던 것을 손에 넣어도 금세 당연히 생각하고, 어디선가 기어이 부족한 것을 또 찾아내어 더 바라기 시작한다. 이미 가진 것도 부족하게 여기는 사람이 가지고 있던 것을 잃으면 도무지 견디지 못할 것은 뻔한 일이다. 열 번을 잘하던 사람이 아홉 번을 잘하면 섭섭히 생각하고 관계를 의심하기 시작하는 것도 이런 것이 아닐까. 가진 것이 많으면 고마움을 모르는 후안무치가 되기 쉽다.


내가 어려서 아버지는, 우리집 단골 반찬이었던 김을 드실 때면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다.
“배고프고 가난한 시절에 태어나서 매일 흰 쌀밥을 김으로 싸먹을 만큼 잘 사는 것이 어린 시절 꿈이었다. 나는 이제 꿈을 이루었으니 더 바랄 것이 없다.”


풍요로운 때 욕심내지 않으면 근검하기 쉽다. 근검하면 어려운 때 겪는 결핍도 이겨내기 쉬울 게다. 어느 주말이었던가. 서울 최고의 유흥가였던 압구정동에서 내가 기억하고 있는 과거와 달리, 간간히 문을 닫은 점포와 빈 건물들이 눈에 띄었다. 한때는 호황을 누렸을 저 건물과 점포의 주인들은, 이런 때가 올 것을 알았을까. 풍요로운 때도 가난한 듯 어려운 때를 대비하였을까. 그리고 지금은 여유로운 마음으로 다시 돌아올 풍요를 기다리고 있을까. 해는 싫어도 뜨고 지고, 기다리지 않아도 계절이 돌아가듯, 내 뜻과 무관하게 얻는 것도 생기고 잃는 것도 생기는 것이 인생이다. 처음부터 내 것이었던 것도, 영원히 내 것인 것도 없으니, 얻은 것을 감사하고 잃는 것을 분하지 않게 여기는 마음만 변치 않으면 세상의 천만 가지 변화가 변화랄 것이 없다. 그리고 보면 세상에 변하는 것은 오직 내 마음뿐인지도 모른다.

 

채정원 변호사

법률사무소 윤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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