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학교에 갔다. 나는 직장에 있다. 일을 하고 있는데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 무차별 총기 난사 사건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이 걱정이 된다. 단순히 ‘걱정’이라는 표현은 너무 객관적이다. 총격을 하는 아이가 검은색 트렌치 코트를 입고 있다고 한다. 지난 주 사준 옷이 떠오른다. 집에 황급히 돌아가는 길이 영원처럼 느껴진다. 우리 아이가 총격전의 장본인이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자살을 했단다.

"내가 낳은 딜런이라는 아이는 그렇게 내 곁을 떠났다. 가해자로, 이해할 수 없는 싸이코패스로 남은 채 말이다. 그리고 나는 그의 엄마이다."

1999년 4월 20일 오후 12시 5분 미국 콜로라도 주에 위치한 컬럼바인 고등학교에서는 학생 12명, 교사 1명이 살해되고 23명이 부상을 당하는, 그리고 가해자 두 명은 그 자리에서 자살을 하는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한다. 가해자 중 한 명인 딜런 클리볼드의 엄마 수 클리볼드는 사건이 있은 후 17년이 지난 2016년 『나는 가해자의 엄마 입니다』라는 책을 출간한다. 사실 원래의 제목은 “한 엄마의 추측(또는 들추어보기, 따져보기)(a Mother’s Reckoning)”이 맞을 것이다. 국내에서 번역되면서 제목이 너무 선정적이라는 인상을 남긴다 .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라는 제목은 너무 많은 편견을 가지고 이 책을 읽게 한다. 반성문인가, 아들을 두둔하려는 것인가, 사회를 고발하려는 것인가. 그러나 수 클리볼드는 아들을 두둔하지도, 미국의 총기 규제제도나 미국의 교육환경을 탓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우리가 법원에 제출하는 구구절절 하면서도 상투적인 가족의 탄원서도 아니다. 책은 왜 사랑으로 키운 아들이 무고한 사람을 죽이고 자신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지를 탐구한다. 그러나 차라리 아들에게 이 만행을 멈추도록 죽음을 내려달라는 절규를 해야 했던 엄마는 16년간의 탐구로도 자신의 고통을 벗어날 수 없었고, 그렇다고 아들의 행적을 전부 이해할 수도 없었다. 시원한 결론을 바라는 독자라면 한계를 느낄 대목이다.

찾으려는 해답은 여전히 미제로 남게 되지만, 수 클리볼드는 이 책을 통해 아이에 대한 사랑, 아이에 대한 혐오를 넘어 아이가 떠난 다음에야 진정한 ‘엄마’가 된다. 그리고 한 페이지 한 페이지 그 과정을 낱낱이 서술한다.

책에서 가장 충격적인 부분은 엄마가 아들에 대한 모든 것을 지우는 부분이다. 책에서는 지운다는 말이 나오지는 않지만, 분명 엄마는 아들을 지웠고, 무에서 다시 모든 것을 찬찬히 살펴보기 시작한다. 그 계기는 다름 아닌 아들과 공범 에릭이 남긴 영상이었다. 엄마는 아들이 피치 못해, 비자발적으로 이 만행에 가담했을 것이라 믿으려 했다. 아무리 나쁜 짓을 했어도 엄마이기 때문에 아들이라면 엄마가, 가족이 품었던 사랑을 조금이라도 남겼을 것이지 처절하게 배신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믿음이다. 그러나 그 영상은 아들이 자발적으로, 적극적으로, 자기 의지를 다해 총기 난사에 가담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말았다.

“내 마음이 다시 내 아들에게 완전히 열릴 때가 올 것이다. 내가 내 아들 때문에 죽은 희생자들뿐아니라 딜런을 위해서도 울 수 있을 때가. (중략)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딜런이 자신의 어떤 면을 우리에게, 그리고 선생님, 가장 가까운 친구들, 부모한테 어떻게 그렇게 철저히 감출 수 있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도록 내가 모은 서로 충돌하는 조각들을 짜 맞추어야 했다.”

책의 나머지 반은 그 이해에 할애된다. 분명 엄마가 살피는 것이기에 한계가 있다. 조금이라도 두둔하고 싶은 마음은 어느 부모라도 내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책을 읽으면서 느껴지는 것은 이러한 불완전함마저 포장없이 받아들이는 엄마의 모습이다. 책에서는 공범 에릭에 대한 얘기가 상당부분 나온다.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보아 에릭은 보다 깊은 분노를 가지고 있지만 딜런이라는 존재가 있어야 이를 외부에 표출할 수 있었고, 아들 딜런은 에릭이 있어야 자신의 분출구를 찾는 듯했다. 엄마는 이러한 둘의 관계를 더 예민하게 느끼지 못했음을 깨닫는다. 

“딜런이 에릭과의 관계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하기도 했었다. 특히 이 점에 대해 내가 부족했던점이 나를 절망에 빠지게 한다. 3학년때 두 아이가 문제를 일으켰을 때 딜런은 에릭과 거리를 두려고 애쓰며 나에게 도와달라고 했다. 그래서 우리끼리 암호를 만들었다. (중략) 지하실 테이프에서 에릭과 딜런의 역학을 보고 나자 그 일이 다른 관점에서 새로이 떠올랐다. 딜런은 다른 친구들과 같이 나가기 싫을 때에는 이렇게 말했다. ‘이번 주말에는 안 돼. 숙제해야 돼.’ 그런데 에릭을 거절할 때만은 내 도움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때는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딜런에게 ‘그냥 싫다고 하면 안 돼?’라고 물을 생각도 못 했다. 딜런이 나에게 도와달라고 하는 게 현명하게만 보였는데, 나중에야 무언가 훨씬 위험스러운 일의 조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너무 늦은 뒤에야 알아차렸던 것이다.”

이러한 단서는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많이 나온다. 문제는 그런 단서들이 전부 총기난사사건의 전조로 보이지만, 일상에서 과연 어느 부모가 예민하게 알아차렸을까 하는 것이다.

아이의 부정적인 태도, 버릇없이 구는 모습, 점점 가족과 멀어져가면서도 가족이 관심을 가져보면 아무 문제 없다는 모습을 보여주기에 엄마조차 10여 년이 지나서야 그 때 아들이 보인 모습들을 연민으로 대할 수밖에 없다. 그 연민으로부터 엄마는 십수 년이 지나서 다시 자기 자리
를 찾는다. 그녀는 ‘가해자의 엄마’, ‘아이를 잘못 키웠다는 오명’, 이런 수식어로부터 평생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오롯이 ‘엄마’ 본연의 모습이고자 하는 이책이 의미 있다. 수 클리볼드는 솔직하게 고백한다. 아직도 자기 아들을 이해할 수는 없다고. 그러나 자신이 놓친 수많은 단서들을 들춰보고, 어렵게 받아들이고 나서야 비로소 다시 아들을 끌어안는다.

책은 읽는 내내 무겁다. 무엇인가 뱃속을 휘젓는 느낌까지 든다.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내가 이런 책을 읽고 있다는 이상한 죄책감마저 들게도 한다. 그래도 최근에 읽은 책 중 추천도서가 있냐고 물어본다면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많은 사건을 처리하고 사람에 대한 탐구를 멈출 수 없는 직업이 변호사라지만, 나 스스로 선을 긋고 더 이상 살피려 하지 않은 때가 많다. 매너리즘의 시작일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얼마나 어려운 주제인지, 그런 매너리즘을 목전에 두고 있는 내가 얼마나 교만한 것인지 이 책은 조금이나마 들춰준다. 책의 제목은 ‘Reckoning’이라는 원제 그대로가 맞다. 가식 없이 자신을 보여준 수 클리볼드라는 어머니에게 경의를 표한다.

임제혁 변호사 법무법인 서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