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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기자 반성문

 정말 몰랐을까. 최대한 합리적 정황을 구구절절 끌어들여도 이 질문에서 도저히 자유로워지지 않는다. 

 상고법원 문제 해결로 온갖 불법 혹은 편법 정보수집 활동과 로비가 횡행했다는 2015년. 그해 초, 8년 동안의 서초동 법조 기자 생활을 잠시 접고 정치부 정당팀으로 떠났으니, 난 무관하다고 할 수 있는가. 8년 중 후반 4년을 주로 서울중앙지법ㆍ서울고법ㆍ서울행정법원ㆍ서울가정법원 출입을 했으니, 법원행정처와의 적어도 큰 도로 하나를 건너야 하는 물리적 공간만큼 책임 소재에서 멀어지는 것인가. 

 양승태 대법원장 취임 초기 폭풍처럼 몰아치던 ‘소통 강화’ 행보의 실패 이후, 대다수의 고위직 판사들을 만나면 이른바 ‘기-승-전-상고법원’의 대화가 이뤄졌던 게 2015년 이전에도 충분히 있었으니 첫 ‘구구절절’은 일단 시점 상 ‘킬’된다. 심지어 정당팀에 있으면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와의 입법 소통 강화(라 쓰고 로비라 생각하고 있는)를 위해 파견 나온 판사 들과 교류를 이어갔고, 정당팀에 가서도 종종 법원 수뇌부들과 가진 만찬 자리에서 “정 기자와 함께한 세월이 얼마인데… 어딜 가도 우리 법원 챙겨주실 분이시잖아요. 그렇죠?”라는 말에 동의를 해버렸으니 더더욱 회피가 어렵다. 

  1~2심 법원을 주로 출입하면 법원행정처는 취재를 하지 않았던가. 이 동네 시스템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게 말도 안 되는 소리란 건 다 안다. 법원 기획 기사를 쓰면, 무조건 법원행정처 쪽 취재는 들어갈 수밖에 없다. 심지어 대법원-대검 출입도 1년 넘게 했다. 그땐 이용훈 대법원장 시절이었지만, 그 시절 법원행정처는 무결점이며 순수했고,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의 법원행정처만 ‘구악’이라 말할 수 없다. 개인적 체험에 의하면, 과거 법원행정처가 더 권위적 이었고 파워도 더 셌다. 고로, 나의 변명은 모두 변명 이다. 

 여기서 날 더 옭죄는 것은 3년여 동안 법원기자단 간사를 맡았다는 ‘팩트’다. 김영란법 시대 이전, 기자들에게 다양한 혜택과 향응 제공이 있던 날이었으나, 법원이 돈을 다루는 곳도 아니고 간사라 해서 뭐 대단한 지위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법원 간 사였기 때문에, 일선 법원장 등 고위법관과 접촉할 일이 상대적으로 동료 출입 기자보다 많았던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특히 청탁, 주로 “법원 너무 조지지 말아 달라”는 류의 호소를 많이 받았고, 그 이야기의 전후에는 상고법원 이야기도 부지기수로 들어 있었던 것 역시 사실이다. 도를 넘고 있다는 생각도 분명히 했다. 

 그렇다면, 왜 난 그 긴 시간 법원행정처에서부터 시작된, 예상하려 했다면 충분히 예상했을 법한 사법 농단의 묘한 흐름을 방치했을까. 검찰 조직을 날 세워 비판하듯 법원을 살폈다면 충분히 당시에도 사법농단의 부분적 실체를 알아챌 수 있었을 텐데, 그랬다면 적어도 지금의 부끄러운 반성보다 떳떳함이 좀 더 많이 남았을 텐데, 나는 결론적으로 그러지 못 했다. 

 출입 기자로 취재처와 거리를 적절히 조절하지 못했던 ‘자질 부족’이 첫 번째 반성의 지점이다. 행정처 구성원의 정보 수집 행위와 상고법원 설치 필요성에 일정 부분 동의한 건 두 번째다. 자질 부족은 스스로 더 처절히 반성하고 다시 반복하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고쳐야 할 부분이리라. 여기에 대해선 반성이란 단어 외엔 더 붙일 그 어떤 사유는 없다. 

행정처의 정보 수집 행위 동의도 ‘나이브’한 대답이긴 매한가지다. 내가 동의한 것은 촘촘히 그물을 쳐 오는 정무적 집단 ‘검찰’과 ‘경찰’의 노림수에 일방적으로 당하지 않는 수준의, 방어적 수단으로써 법원의 정보 수집 행위였지, 법원 그들의 권위와 이익을 지키기 위한 공격적 정보 수집 행위는 아니었다. 더군다나 사법 거래라니. 경찰과 검찰도 출입하며 느낀 그들 조직의 무서우리만큼 치밀한 법원 정보 수집에 사법부가 흔들리면, 그 자체로 사법 신뢰가 훼손돼 국민들이 피해를 볼 것이라는 게 당시 나의 생각이었을 뿐이다. 최종심인 대법원이 좀 더 나은 법률적 판단을 내리기 위해선 상고법원 도입이 최선 이라고도 당시엔 판단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없었다. 

 검찰 포토라인에 선, 한때 친했던 높고 높은 판사들. 기자의 취재를 피해 전력 질주를 하던 ‘법원 내 폭탄주 제조 최고 전문가’였던 한 고위 법관, 현 사법농단 수사가 언제까지 갈지 불안에 떨며 연락을 주는 사법부 구성원들. 후배들의 고난을 보며 근심과 안타까움을 떨쳐 내지 못하는 전직 대법관들. 그들과 아직도 삶의 연(然)이 닿는 나로선 기자임에도 적절 한 비판을 못 했던 스스로를 참회하고 벌하는 게 우선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공개적으로 이렇게 반성문을 쓴다. 

 부디 현재 법원을 출입하는 동료 기자들은 나와 같은 우(憂)를 범하지 말아주길 기도하고 기원한다. 법원을 최선을 다해 조지시되, 검찰의 ‘흘리기’는 항상 경계해 주길. 법원을 합리적으로 비판하되, 대안도 제시해 주길. 

 법원은 불안에 떠는 시간을 줄이고, 다시금 국민들이 “너희들 진짜 똑바로 할 생각은 있어?”라고 물을 가까운 그 어느 날. 나보다 더 처절한 반성에서 추출된 진정한 ‘사법 개혁’의 답을 내놓도록 미리 준비 하시길, 진심으로 바란다. 장담하건대 그날이 최소한의 사법 신뢰를 지키는 마지막 기회일 것이다. 나 같은 기자를 포함한 일부 언론 탓, 검찰의 과잉수사 탓, 어쩔 수 없는 관행이었다는 식의 변명이 또 전제 되는 대답밖에 내놓을 수 없다면 더 이상 되돌아 올 길은 없다.

 

 

 

 



정재호 기자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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