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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현실적인’

 화면 가득 트럼프의 얼굴이 비쳤다. 만면에 미소를 띤 그는 세상 모든 것을 얻은 사람처럼 득의양양한 모습이다. 트럼프를 보면 가장 먼저 트럼프의 머리가 가발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언젠가 그는 선거유세 중에 한 여성 청중에게 자신의 머리카락을 만져 보라면서 자신의 머리는 절대 가발이 아님을 강조했다. 생각해 보면 가발을 그처럼 우스꽝스럽게 만들 리가 없다. 그것도 소위 백만장자라는 사람이 절대로 그럴 리가 없다. 어쨌든 트럼프 본인도 어지간히 가발이 아니냐는 소리를 많이 듣긴 했나 보다. 선거유세에 나와서까지 가발이 아님을 강조하였으니 말이다. 가발인지 아닌지 알 수도 없고 그것이 중요하지도 않지만 트럼프의 머리모양은 여전히 내게 비현실적으로 보이긴 했다. 사실 그의 나이가 우리나라 나이로 일흔셋이라는 사실을 감안 하면 그 정도의 머리숱도 평균보다는 훨씬 풍성한 것일 텐데도 트럼프를 볼 때마다 우스꽝스러운 그의 머리모양은 여전히 비현실적이기만 하다.

트럼프가 득의양양한 미소를 띠는 모습이 한참동안 비춰지더니 차츰 화면이 줌아웃 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화면 안으로 또 한 사람의 비현실적인 인물이 들어왔다. 김정은이었다. 머리모양만 보자면 김정은 역시 우스꽝스럽긴 마찬가지이지만 트럼프보다는 훨씬 현실적이다. 생각해 보면 올백머리를 한 그의 머리모양은 소위 미국교포 스타일 머리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런 느낌은 전혀 들지 않고 보자마자 바로 그의 할아버지 머리모양을 떠올리게 한다. 사실 그는 머리모양뿐만 아니라 체형이나 얼굴까지 그의 할아버지를 쏙 빼닮았다. 아마도 자신의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하기 위해 그의 할아버지의 모습을 일부러 흉내 낸 것이겠지만 그의 아버지는 그의 할아버지를 흉내 내고 싶어도 흉내 낼 수 없었을 것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그와 그의 할아버지는 정말 어지간히 많이 닮았다.

트럼프와 김정은이 한 화면 안에 들어오더니 이내 둘이 서둘러 악수를 하고, 서로를 마주 보며 찰나의 미소를 지은 다음 곧바로 다시 정면을 뚫어지게 응시한다. 마치 조금이라도 서로를 더 바라보게 되면 어찌할 바를 몰라 금세라도 울어버릴 것만 같은 불안한 미소다. 트럼프의 머리모양만큼이나 둘이 함께 서 있는 모습은 비현실적이다. 하지만 한 가지 더 비현실적인 것이 있다. 두 사람의 얼굴 크기이다. 어느 신문기사에서 트럼프와 김정은의 키는 20cm가량이나 차이가 난다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래서 아마도 김정은은 꽤나 높은 키높이 구두를 신고 회담장에 나올 것이라는 것이다. 실제 화면에서 본 트럼프와 김정은의 키 차이는 꽤 났지만 그것이 부담스러울 정도는 아니었다. 정말로 김정은이 키높이 구두를 신고 회담장에 나왔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오히려 비현실적인 모습은 트럼프와 김정은의 얼굴 크기였다. 트럼프가 김정은보다 20cm가량 크다고 보도되었음에도 김정은의 얼굴이 트럼프의 얼굴보다 훨씬 더 커 보였기 때문이다. 텔레비전을 통해 보는 것이 아니라 둘이 악수하는 사진만을 보았다면 조작된 사진이 아닐까라는 의심이 들었을 정도다.

언젠가 김정은이 스위스에서 유학하던 어린 시절의 사진을 본 적이 있다.  한강 둔치 농구장에 가면 언제라도 마주칠 것만 같은 마른 체구의 평범한 얼굴이다. 그가 스위스에서 북한으로 돌아간 것은 2001년경으로, 지금으로부터 약 17년 전이다. 17년이면 사람도, 세상도 바뀌기에 충분한 시간이긴 하다. 실제로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 지금 화면에서 보고 있는 트럼프와 김정은의 모습이야말로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증거이다(CVIE, 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Evidence). 그렇다면 앞으로 17년 후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17년 전인 2001년은 911테러가 있었던 해다. 인터넷을 통해 당시 트럼프의 모습이 담긴 인터뷰 영상을 찾아보았다. 영상 속에 담긴 그의 모습은 지금과 다른 것 같기도 하고,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적어도 그 당시 그의 모습은 비현실적으로 보이진 않았다. 단지 그가 인터뷰하며 서 있던 도로 뒤의 뉴욕 세계무역센터 건물의 모습이 비현실적일 뿐. 하기야 현실이 현실적이든, 비현실적이든 무슨 상관이랴. 어차피 모두가 현실인 것을. 다만 바람이 있다면 현실적이든, 비현실적이든 우리가 사는 세상이 미소를 띨 수 있는 현실이었으면 하는 것이다. 설령 어찌할 바를 몰라 금세라도 울어버릴 것만 같은 불안한 미소라 할지라도 말이다.

 

 

 

 


황희 변호사
●법무법인 이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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