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和氣/푸른구멍

빛이 넘어진 다음 비가 내렸다
나무가 흔들리고 바람이 웃었다
무성한 덤불을 아끼는 토끼처럼
어둠에 어둠을 꿰매 긴 목걸이를 만드는
돌아가신 할머니처럼
비가 내렸다
번개가 치고 천둥이 울렸다
등을 쓸어주는 크고 단단한 손
머리까지 끌어올려 이불을 덮을 때
투명한 얼굴로 돌아갈 때
너는 내 곁에 누워 숨을 쉬고
나는 네 곁에 누워 생각에 잠긴다
생각은 점점 무성해지고
이상해 어떤 시절은 끝내
떠올릴 수 없고 내내 죽어 있던 것처럼
가파른 낭떠러지의 날들이 있어서
잘 지내니 별일은 없지
문득 스스로 안부를 묻곤 해
죽은 개 곁을 다른 개가 맴돈다
젖은 털을 핥으며
컹 짖는다
돌 위에 가만히 돌을 놓듯
비가 내린다

초록이 무너지는 계절. 걷다 보면 가끔 나는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없어 불안에 잠길 때가 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벚나무가 하나씩 잎을 떨어뜨렸다. 바람은 세차게 불고 나는 잊은 것이 있는 것 같은데, 그게 뭔지도 가늠할 수 없어 아연해지곤 했다. 한 사람이 태어나고 살고 죽는 일련의 과정을 믿을 수 없고. 겨울, 앙상한 나무들은 가끔 잠시 죽어 있는 것처럼 보이고 나는 여름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마지막으로 요양원에 갔던 날 내 손을 잡고 어떤 말씀을 하셨고 나는 울음을 터뜨렸는데, 끝끝내 그 말이 무엇이었는지 떠올리지 못했다. 그러고도 밥을 먹고 시를 쓴다. 남아 있는 시간에 닿지 못한 채.

이 글을 읽는 모두가 백 년 안에 죽게 될 것이다. 그런 일은 종종 우리를 소름 끼치게 만들기도 하고 깨끗하게 만들기도 해서. 나는 나무가 되어보기도 하는 것이다. 온몸의 잎을 하나하나 떨어뜨리며 고요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어둠을.
때로 그 어둠을 알알이 손끝으로 헤아릴 수 있을 것만 같다. 그게 점점 죽음에 가까워지는 방식이라면. 장례식장을 찾는 객들은 죽은 사람이 한때 가졌던 생에 대한 알리바이에 다름 아니라고. 나는 울지도 않고 멍하니 앉아 생각했다.

죽음이 슬픈 것은 다시 만날 수 없는 절대성 때문이라고, 영영 기억해내지 못할 그 마지막 말은 내내 공백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런 공백들을 엮어 한 다발의 시를 쓸 수 있다면 무엇을 쓸 수 있을까.

문득 미야자와 겐지의 시 <무성통곡>이 떠올랐다. 죽은 누이를 위한 시. 차마 인간의 눈 코 입으로 담아낼 수 없어 심장 안에 가득 쌓인 울음을. 그 누이를 위해 소복이 눈송이를 퍼 담는 마음을.

그런 마음을 조용히 돌을 놓듯 담담히 내려놓고 싶다. 그 검은 돌이 내 심장 속에서 내내 가라앉고 있어 영원히 바닥을 만나지 못할 것 같아서. 심연을 들여다보는 가냘픈 인간의 시선으로.

나는 육 년 전 몇 개월간 여행을 떠난 일이 있다. 덥고 건조하고 빛이 많은 곳이었다. 오로지 모국어를 잊고 나를 잊고 싶었는데, 바다를 건너고 사막을 지나 먼 곳에 겨우 먼 곳에 이르러서도 나는 가져간 몇 권의 책을 끝없이 반복해 읽으며 더없이 한국말이라는 것에 천착하고 있었다. 밤이면 하늘을 빼곡히 채우던 별들과 밀려왔다 밀려가는 파도의 포말 속에서 나는 나를 참 멀리도 데리고 왔구나, 그런데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구나. 슬픔에 잠겨 약간은 자신을 조소하며.

떠난다는 것은 결국 그런 것인가. 허물어진 다음에는 돌이켜 생각할 수 없는데, 그렇다면 한 생이라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한 계절이 돌아 그다음 계절이 오는 것은. 끝내 들여다보던 심연 속으로 돌이 되어 스며드는 것인가. 나는 아직도 아무 대답을 할 수 없다. 그러나 질문할 수는 있을 것이다.

 

 

 

 

 

백은선 시인
●1987년 서울 출생
2012년 『문학과 사회』 신인상
2016년 시집 『가능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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