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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 상담의 민낯

서울시내 어느 성당과 노인복지관에서 매월 또는 격월로 무료법률상담을 해온 지도 어언 22년째다. 그 상담은 누가 억지로 시켜서 한 것이 아니라서 할수록 ‘보람 찾기’에는 그다지 큰 힘이 들진 않았던 듯하다. 변호사에게 공익활동의무가 덧씌워진 때가 2008년부터였으니, 다행히 나는 빗자루 들고 마당 쓸라고 하기 전부터 스스로 빗자루를 들었던 셈이다.

처음 약 10년간은 무료법률상담 때마다 당시로서는 흔치 않았던 노트북과 휴대용 프린터기를 한가득 들고 상담에 임했다. 왜냐하면, 그 당시 상담자들은 대부분 난생 처음 받아보는 법률상담이라서 그런지 상담을 받고 돌아서면 까먹는다는 얘기를 심심찮게 전해 들었기 때문이다.

나로선 유료상담이든 무료상담이든 최소한 상담자가 상담하며 내놓은 사실관계를 전제로 내가 아는 한 책임(責任)있는 상담을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상담에 약간의 시간이 소요되더라도 일일이 상담자의 상담 요지를 노트북에 ‘전제되는 사실관계’로 타이핑을 하고 그에 따른 대법원 판례나 법률적 쟁점을 요약하여 나름의 결론을 제시해 주기 위해 노트북과 휴대용 프린터기를 들고 갔던 것이다. 당시 내게 책임있는 무료상담이란 필화(筆禍)의 위험을 무릅쓸 각오 정도는 필요하다고 생각했었나 보다.

무릇 상담은 그 정보의 흐름이 많거나 높은 데에서 그렇지 않은 곳으로 흐른다. 그러다 보면 자칫 정보 제공자라는 우월한 지위가 요즘 회자되는 ‘갑질’처럼 비칠 위험이 있다. 상담 초기에는 그것까지 신경이 쓰였었다.

그런데, 20년이 지나는 동안 세월도 변했고 ‘나홀로 소송’이란 말이 생겼으며, 가히 정보의 홍수시대가 도래하였다. 과거에는 변호사 보기가 힘들었지만 지금은 한 치 건너 두 치 정도면 변호사를 만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그 사이 나도 20살을 더 먹게 되어서인지 요즘엔 구닥다리가 된 휴대용 프린터기까지는 들고 가지 않는다. 그 대신 상담자의 언어로 핵심을 전달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연로한 상담자들 중에는 평생 끙끙 앓았던 지병(持病)처럼 해묵은 문제를 뒤늦게 최후로 들고 오는 경우가 많다. 그런 상담자들에겐 ‘친절봉사’의 정신으로 상담결과를 프린트까지 해주는 노력보다는 차라리 ‘희망고문’을 떼어내도록 충격어법으로 신랄하게 상담에 응해야 할 때가 많아졌다. 그런데 희한(稀罕)하게도 과거 프린트 시절보다는 상담을 마칠 때 상담자가 나름 나에게 혼(?)이 났을 텐데도 오히려 속이 후련하다면서 고맙다는 말을 더 자주 하는 걸 보면, 상담의 방식에 왕도(王道)는 없나 보다.

법률상담 하면 당연히 무료상담이겠거니 하는 시대도 이젠 달라진 것 같다. 한때는 무료상담이 당연하다는 잘못된 인식의 전환을 위해 변호사회에서 나서서 변호사 사무실마다 유료(有料)상담 안내문을 비치하도록 배포를 한 적도 있었는데, 요즘엔 상담자들이 주저주저하면서도 “상담료는 얼마...?”라고 묻는 횟수가 훨씬 더 많아졌다.

규모로 10위 안에 드는 대형 법무법인이라면 매출의 상당부분이 유료상담, 즉 기업자문이나 컨설팅 등 법률자문 수입으로 채워지겠지만, 아직도 대다수 변호사 사무실에서는 웬만한 경우가 아니라면 그래도 무료상담이 주류로 남아 있는 듯하다. 그래야 ‘사건당사자’와의 대면접촉 빈도가 늘고 그러다가 수임으로 전환될 수도 있다는 기대감이 여전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다 보니 상담자의 입장에서는 이를 역이용(逆利用)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른 바 ‘상담 쇼핑’ 또는 ‘메뚜기 상담’이 그것이다. ‘나홀로 소송’도 저마다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고 그 장단점 또한 있겠지만 법률전문가가 아닌 바에야 결국에는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한방에 풀어줄 ‘콜럼버스의 달걀’을 갈망하게 될 때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그러나, 그 동기가 무료상담의 역이용에서 출발한다면 그 어디에서도 쉽사리 책임있는 상담을 보장받기란 만만치 않다.

벌써 10년쯤 되었을까? 서울지방변호사회 무료상담실에 어느 노신사가 부산에서부터 일부러 올라와 상담을 했다가 상담결과가 자기 마음에 만족스럽지 않자 쥐약통을 흔들며 약을 먹고 죽어버리겠다면서 난리를 치는 바람에 112 경찰차가 출동하기까지 했고 직원들은 혼비백산(魂飛魄散)한 적이 있었다. 더구나 그 노신사는 다음날에도 다시 무료상담을 받으러 오겠다는 예고편을 날리기까지 하였으니...

당시 무료법률상담이나 국선변호인, 당직변호사 등등 대민업무를 총괄하는 일을 담당하던 나로서는 그 보고를 받고나서 부랴부랴 다음날 일정을 싹 비운 채 온다고 예고했던 오후 2시에 직접 상담 변호사로 출동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어제의 주인공이 납시었다.

나는 오후 2시부터 상담시간, 퇴근시간에 구애받지 말고 하고 싶은 말, 묻고 싶은 말을 모두 해보시라며 한 자락을 깔고 상담을 시작하였다. 지금 어렴풋이 기억나기로는 무슨 경계 분쟁이었던 것 같은데 분쟁 해결을 위해 형사고소, 민사소송, 행정소송, 헌법소원 등 거의 안 해본 소송이 없을 정도로 끈질기게 한 10여 년간 소송을 제기해 왔으나, 번번이 뜻대로 되지않았단다. 그 과정에 업무상 관여했던 경찰관, 검사, 판사들에 대한 고소는 몇 번이고 반복되었고... 그래서 부산 변호사들은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면서 최후의 방법으로 서울지방변호사회 무료상담실을 노크하게 되었단다.

나는 처음 6시간 정도는 그러한 사정들과 소장, 판결문 등 관련 서류를 확인하고 당사자의 입장을 확인하는 데에 할애하였다. 이른바 ‘상담의 전제된 사실관계’의 정리가 필요했다. 그 사이 상담자는 자신의 말을 제대로 들어주는 과정에 흡족하게 여겼고 호의적 태도를 반복하였다. 이미 통상적 퇴근시간은 훨씬 지나쳤고, 밤 9시를 넘어갔다. 이제는 상담의 결론을 알려줄 시간이 되었다.

내가 상담자에게 “그래서 소를 제기했지만”, “그래서 여차여차해서 안되는 결론일 수밖에 없다”는 설명을 하는데 다시 1시간이 소요되었다.

그러자, 드디어(?) 그 노신사의 태도가 돌변(突變)하였다. 쥐약통을 다시 꺼내들었고, 급기야 합판으로 된 상담실 칸막이 벽에 돌진하여 머리를 받아버리는 사태까지 연출하였다.

나로선 극약처방(劇藥處方)을 할 수밖에 없었다. 친절봉사 상담의 자세는 걷어치웠다. 나는 그 상담자에게 “그런다고 머리가 깨지지는 않는다. 머리를 깨고 싶으면 그쪽 합판 칸막이 말고 이쪽 콘크리트 벽에다 머리를 치시라...” “6시간이 넘게 상담하고 싶은 내용을 충분히 들었고 2시간이 넘도록 안되는 결론의 이유를 충분히 설명했으니, 나도 더는 상담할 기력이 없다...”라고 설명했다.

결국 112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을 통해 지방에 살던 아드님에게까지 연락이 닿아 무사히(?) 내려가셨단다. 그런 홍역을 단단히 치루어서인지 그 분은 그 이후로는 찾아오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그 상담 건은 공식 종료되었다.

요즘도 매번 상담을 시작할 때면 ‘과연 오늘은 어떤 손님(?)이 오시려나?’ 몹시 궁금하다.

 

 

 

 

 

 

임영화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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