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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린 父情, 빗나간 딸바보

대학입시 성적이 좋기로 유명한 강남의 어느 여고에서 벌어진 성적 비리사건은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안겨주었다. 자신의 딸들을 위하여 내신성적과 직결된 시험지 유출을 서슴지 않았던 교무부장 아버지의 막장 부정행위를 지켜보면서 많은 이들은 분노를 느꼈겠지만, 한편으로는 아버지로서 무리해야만 했던 지나친 욕심에 측은지심도 지울 수 없었다. 내신성적을 조작해서라도 딸들을 상위권 대학에 보내려는 과욕이 결국 범법자를 만들고 나아가 대학입시제도의 근본적인 문제점까지 되돌아보는 계기로 연결되었다. 아무리 애타는 부모 심정이라도, 마냥 공감할 수는 없다. 딸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해서는 아버지가 무작정 달콤한 열매만 가져다 먹일 것이 아니었다. 찰나의 영광이 오히려 독이 되었던 것이다. 오히려 인생의 쓴맛도 보게 해줘야 하고, 공정한 룰 속에서 진정한 실력을 키울 수 있는 기회와 방향을 제시해야 하지 않을까? 팝 뮤지션의 세계에서도 딸바보 아버지들 때문에 진정한 실력보다 유명인 아버지의 last name으로 과대평가되어 막상 자신의 first name으로는 빛을 볼 수 없었던 평범한 딸들의 안타까운 이야기들이 전해지고 있다.

 스티비 원더. 세상의 빛을 전혀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으로 태어났지만, 세상의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사람들에게 주옥같은 명곡들을 들려줬던 그는 리듬 앤 블루스, 소울, 펑크 등 흑인 음악 장르를 시대, 연령, 인종을 초월하여 융성시키면서 단순히 대중적 인기에 그친 것이 아니라 대중음악의 품격을 높인 천재로 음악 비평가들의 찬사를 오늘날까지 받고 있다. 1960년 10살의 어린 나이에 하모니카를 연주하면서 본격적인 음악활동을 시작한 그는 “Fingertips” 등의 히트곡을 들고 당시 흑인 음악의 중심지인 ‘모타운’ 레코드에 발탁되었다. 1960년대를 거쳐 1990년대까지 “Uptight”, “Superstition”, “Sir Duke”, “I just called to say I love you”,
 “Part time Lover” 등 꾸준한 히트곡을 양산한 스티비 원더는 그 무엇보다도 독창성으로 승부하였기 때문에 여러 차례 그래미상을 석권했었다. 그러한 음악적인 배경 때문에 그의 펑크, 소울, 프로그레시브 음악과 재즈로도 편곡되는 등 불후의 명곡으로 남아있다. 그러한 그에게 사랑스러운 딸 Aisha Morris가 있었다. 그녀는 태어나면서부터 의도치않은(?) 피처링으로 유명세를 탔다. 아이샤를 위하여 스티비 원더가 정성스레 작곡한 유명곡 “Isn’t She Lovely”의 전반부에 나오는 아기 울음소리의 주인공이 바로 아이샤...

그녀는 무럭무럭 성장하여 아버지와 같은 길을 걷고자 했다. 당연히 아버지의 성원이 뒤따랐다. 양으로 음으로 도와주는 아버지 덕분에 아이샤 모리스의 이름도 팝 팬들에게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다. 수년간 그녀는 스티비 원더의 공연과 앨범에도 참여하면서, 2000년대 말에는 “How will I know”에서 아버지와의 듀엣으로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샤는 스티비 원더의 딸에 불과하였다. 아버지의 이름을 뛰어넘는 재능은 보여주지 못했다. 백킹 코러스로는 몰라도 아버지의 거대한 그림자에 갇혀서 그녀는 오히려 주변의 관심과 기대에 부담감만 느끼면서 점차 잊혀지는 존재가 되어가는 듯하다...

 1980년대 말 지강헌 일당의 탈주극을 구성하는 배경음악이 되었던 “Holiday”, “Don’t Forget to Remember”와 같은 1960년대 팝 명곡들을 거쳐 “Stayin’ Alive”, “Night Fever” 등 1970년대 디스코 시대에서 그 위세가 만개했던 형제 하모니그룹 Bee Gees. 비틀즈 이후 빌보드 차트의 상위 1-5위를 전부 석권하는 기염을 토했던 비지스의 막내 모리스 깁은 비지스 형제 중에서 가장 먼저 세상을 떠났다. 모리스 깁의 딸 Samantha도 여러차례 팝세계의 문을 노크했다. 아버지를 대신하여 큰 삼촌들이 사만사에게 여러 차례 기회를 제공하였다. 맏삼촌 Barry Gibb은 다른 앨범 제작 때 사만사를 세션 싱어로 활용하였고, Robin Gibb도 자신의 공연 게스트로 그녀를 초대하였다. 하지만 알코올 중독자였던 아버지 모리스를 대신한 삼촌들의 눈물겨운 조카 사랑은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였다. 비지스 家의 구성원이었을 뿐 자신의 이름으로는 사만사의 실력은 인정받지 못했던 것이다. 비지스의 팬들에게나 사만사의 존재가 알려졌을 뿐이다. 그녀는 음악활동을 계속하고 있지만, 아버지 그리고 삼촌들의 명성에 눌려 오늘도 헤매고 있을 뿐이다. 빗나간 부정까지는 아니더라도 남들처럼 살고 싶은 딸들에게는 딸바보 아버지들의 애정이 때로는 걸림돌이 될 수도 있나 보다.

 

이재경 교수
●건국대 글로벌융합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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