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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재량

옆방엔 신을 모신다는 사람이 살고 있다
비가 오는 날엔 손님이 찾아오지 않는다
나는 손님이 되어본 적 없고


꼬리가 휘어진 채 도망가는 고양이를 본다
너는 평생 이렇게 살게 될 거다
벽을 타고 건너오는 것들
얼굴을 만지면 얼굴이 만져진다


내가 키우던 고양이는
고양이 너머로 간다


모르는 사람의 과거를 본다는 사람
죄를 쥔 손을 등 뒤에 감추고
웃고 있는 사람


붉은 기운이 가득한 방 안에서
시간이 끊어져버린 걸 모르고 있다


얼굴 위로 얇은 이불을 덮으면
나는 조금 위로받는 기분이 된다


귀를 흔드는 물소리


이 집에는 아픈 사람이 있다
아픈 사람이 있는 집 아이는 슬픈 표정을 숨길 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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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를 지나다가 ‘적재량’이라는 단어를 본 적 있다. 화물차의 적재량을 알리는 표지판 같은 것이었다. 도로가 견딜 수 있는 무게라는 것이 있어서 그 기준을 세우고 단속을 하는 것이었는데. 그날따라 적재량이라는 단어가 이상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물건을 쌓아 올릴 수 있는 최대치의 양. 누구에게나 그런 게 존재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어떤 도로는 한가운데 금이 가 있었다. 새로 깔린 도로도 있고 오래된 도로도 있는 것처럼 금이 간 도로도 곳곳에 있었다. 금이 가 있는 도로를 보면 많은 짐을 실은 트럭이 이 길을 대체 얼마나 많이 지나다닌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도로는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엄마가 자주 아팠다. 이런저런 큰 병과 작은 병들이 오고 가는 몸이었다. 어릴 때 나는 엄마의 기침 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기침은 막을 수 없고, 막으려고 할수록 더 크게 터져 나오는 것이어서. 기침 소리가 들리는 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기침 소리를 듣다 보면 엄마 몸 안쪽에 작은 금이 수없이 생기고 있을 것 같았다. 가끔 기침 소리가 울음소리와 헷갈리기도 했다. 엄마는 어린 내게 자주 말했다.“내가 죽으면 너 불쌍해서 어쩌니.” 그러면 나는 불쌍해질 나를 걱정해야 할지 아픈 엄마를 걱정해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는 마음으로. 어리둥절하게 앉아 있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내가 슬픈 건지 화가 나는 건지 아픈 건지 몰랐다.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고 싶지 않았다.
지금에 와서, 엄마의 병에도, 엄마의 아픔에도 적재량 같은 것이 존재할 거라고 생각하면 어쩐지 안심이 되기도 한다.
사람들은 알 수 있을까. 자신이 가진 슬픔의 양 같은 것을. 자신의 고통을 수치로 재고, 그 기준을 초과하는 것을 막을 수 있을까. 알지 못하고 막을 수 없다 하더라도. 모두에겐 견딜 수 있는 슬픔의 적재량 같은 것이 존재할 것 같다. 어딘가에 눈금 같은 것이 있어서, 자신도 모르게 그 양이 측정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해결하며 사는가 하는 것도 각양각색일 것이고.
친한 언니가 자주 아팠다. 청소년 시절에 교통사고를 크게 당한 이유로 만성 두통에 시달렸고, 기본적으로 몸이 약했다. 면역력도 약하고 스트레스에도 취약했다. 언니는 두통으로 자주 응급실에 실려 갔다. 언니는 자신이 일상에서 체력적으로 어떤 선을 넘을 때 두통이 심해지고 결국 병원에 가야 하는지 알았다. 그래서 최대한 몸과 마음을 관리하며 살았다. 그런데도 한계치를 넘기게 되는 때가 잦았다. 엄마가 아파 병원에 가게 될 때마다 언니의 어린 딸은 이유를 모르고 엄마가 없는 시간을 보내야 했다. 아이가 유치원에 들어갈 즈음엔 조금 아는 것도 같았다. 그 시절 나는 언니네 집에 놀러가서 언니의 딸과 자주 놀아주었는데. 아이는 내가 본 아이 중에 가장 밝았다. 세상에서 가장 잘 웃는 아이였다. 작은 것에도 크게 웃고 즐거워했다. 의젓하고 씩씩했다. 마치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가끔 어떤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 울음을 참고 있는 사람 같다. 무너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버티고 있는 것 같다. 적재량을 넘기지 않으려고 애쓰며 사는 사람 같다. 하루하루를 씩씩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잠깐씩 표정을 놓치는 순간. 그럴 때. 그들의 슬픈 얼굴이 보인다.

 






안미옥 시인
●2012년 동아일보로 등단.
시집 『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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