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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벽

유목을 멈춘 이후로 벽이 발명되었다
그때부터
밟혀서 지워지지 않도록
사람은 기억을 벽에 옮겨 보존하기 시작했다


하나의 전시를 철거하고 나면
차고 흰 벽에는 못구멍들이 남았다
한 점으로 흘러나오는 벽의 내부
밀도 높은 어둠이 근육이라는 걸 알았다


다음, 다음으로
전람회는 열려야 하기에
벽은 회복을 시작하고


통증을 빻아 만든 가루
시간에 불행을 섞어
한 움큼 집어 바르고
모르는 거리에서 몸을 말리면


지구도 지구를 교체하기 위해
재앙을 사용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새벽을 펴 바르며
간밤의 별자리를 문질러 메우는 손


나는 복원되지 않는다
무수하게 뚫고 메우다보면
처음의 벽은 이미 사라진 벽
우리는 어둠을 갱신하며 서있다

성서의 창세기를 보면, 노동은 신이 규율을 어긴 인간에게 내린 태초의 형벌이었다. 가장 처음의 인간이었던 자는 일하지 않아도 먹고 마실 수 있었고 입지 않아도 부끄럽지 않은 세상에서 살았다. 그런 그가 넘고 깨버린 금기는 연좌제가 되어 현대에 이르기까지 모든 인류를 노동하지 않고는 살 수 없게끔 만들었다고 한다. 아직 충분히 어리고 모자란, 그러나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불행과 불운이 있기도 했던 나의 짧은 삶은 노동의 연속이었다. 생활은 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시는 생활이 될 수 없다. 가난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풍족하지도 않았던 집안에서 자랐으므로, 시를 짓는 삶을 살겠다는 선택은 눈을 가리고 외줄을 타는 기분으로 영혼을 몰아넣었다. 균형을 놓치면 목숨을 놓친다는 긴장감. 나는 노동했다. 아주 보통의 청년으로 보통의 이십 대를 지나며 온갖 종류의 아르바이트를 할 때마다 늘 태초의 인간을 생각했다. 그가 받은 형벌은 신이 인간에게 준 것일까, 인간이 인간에게 주고 있는 것일까.

인사동에서 보름간 열리게 된 미술전에서 도슨트 비슷하게 일한 적이 있다. 규모가 작아서 작품들의 동선과 배치, 설치부터 해체까지 위임받아 진행했다. 작은 회랑을 거닐며 작품과 작품 사이를 구상하고 관객의 시야를 염두하며 빛을 골랐다. 어떤 작품은 사람을 오래 잡았고 어떤 작품은 사람을 쉽게 놓쳤고 어떤 작품은 사람을 되돌아오게 했다. 미술의 일은 문학의 일과 닮아 있었고 곧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과도 닮아 있었다.

전시를 철거할 때는 설치할 때보다 수월했다. 작품을 떼어 포장재로 둘러싸고 박스에 넣고 바닥을 쓸고 닦는 일이었다. 용달이 작품들을 수거해가고 빈 회랑 한가운데 주저앉아 쉬고 있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건 벽이었다. 희고 차고 두꺼운 회벽은 온통 못이 박혔던 구멍들로 가득했다. 셀 수 없이 많은 구멍들이 벽을 채우고 있었다. 그때 벽은 하나의 정확하고 확실한 이미지였다. 작고 깊은 못구멍 속으로 아주 까만 어둠이 들어 있었다. 어쩌면 이 희고 밝은 벽의 안쪽은 어둠으로 가득한 건 아닐까. 밤마다 아무도 없는 회랑의 고독한 공기 속에서 벽은 어둠을 흘리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다음의 전시를 위해 회칠을 하고 구멍을 감추는 벽처럼, 사람 또한 자신의 구멍 위로 평생 표정과 기분을 덧칠하는 것은 아닐까. 그날의 벽은 내게 말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받아 적었다.

아무리 가려서 감춘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상처받기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가끔, 삶에 시간을 덧발라서 우리는 스스로를 속이기도 하겠지만, 나와 당신의 행복은 어쩌면 이미 세상에 없는 희망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삶이 우리에게 형벌이라고, 무너지고 부서지고 가끔은 주저앉아 울면서 허물어져도 괜찮겠다. 그럼에도 다음, 다음으로. 눈물을 닦아주듯 서로의 표정을 가만히 매만질 수 있는 시간들이 있다면. 그렇다면 우리는 회복하고 있다고 믿어도 좋겠다. 서로가 서로에게 형벌 대신에 사랑을 말하는 순간들이 있다면, 어둠을 갱신해가며 살아갈 수도 있을 테니까. 그렇게 잠시나마 빛에 도달할 수도 있을 테니까.

 








최현우 시인
●201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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