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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金庸) 무협과 중국의 미래

작년 10월 중국의 소설가 김용(金庸)이 사망했다. 그는 10억 부 이상의 작품을 판매한 역사상 가장 인기 있는 작가 중 한 명이었으며, 중국의 J.R.R. 톨킨 혹은 셰익스피어라고 불릴 정도로 뛰어난 작품성을 인정받기도 했다. 그는 홍콩의 가장 영향력 있는 신문인 명보(明報)의 소유주로 유력한 언론인이기도 하였으며, 법학도 출신[상해 동오(東吳) 법과대학 졸업]이기에 우리 변호사들에게 더 친근한 인물이기도 하다. 필자는 본고에서 그의 추모를 겸하여 그의 작품세계를 소개하면서, 이를 통해 바라본 중국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김용 金庸
1924~2018

중국의 J.R.R. 톨킨 혹은 셰익스피어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저자인 톨킨은 판타지 장르를 정립하고 그 문학성을 고취한 공로로 ‘판타지의 아버지’로 불린다. 김용 역시 중국 무협 장르를 정립한 점, 무협에 고도의 문화적 수준을 부여하여 문학성을 고취한 점 등을 인정받아 중국의 J.R.R. 톨킨으로 불린다.

그는 또 백화(白話, 중국어의 구어체)문학의 전범을 제시한 점, 중국문학·서양문학의 전통을 통합한 점, 순수문학·통속문학의 대립을 극복한 점, 중국의 문화전통을 완성도 있게 살려낸 점을 인정받아 영국이 인도와 바꾸지 않겠다던 셰익스피어에 비견된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다. 북경(北京)대학의 ‘김용소설연구’를 비롯 전국 대학에 그에 대한 강의가 개설되어 있고, 그의 소설을 연구하는 학파는 김학(金學)이라고 불리며 약 500여 편의 연구논문을 출간했다. 중국 중고교 교과서에도 그의 소설이 다수 실려 있다.

유경철, 「김용 무협과 중국 상상 연구」(2005)

김용이 그토록 영향력이 있었던 만큼, 한국에서도 그에 대한 박사논문이 발표된 적이 있다. 유경철(현 강릉대 중문과 교수)이 쓴 「김용 무협과 중국 상상 연구」는 무협에 대한 한국 최초의 박사논문으로 알려져 있으며, 김용의 작품세계 및 현대 중국의 이해에 많은 도움을 주는 글이기에 이를 소개해본다.

위 논문의 요지는 19세기 서구 열강에 의해 침탈당하고 분열되며(대륙·홍콩·대만·해외화교 등) 자존감·정체성을 상실하였던 중국인들이 김용 무협의 ‘양강(陽剛) 중국’, ‘문화(文化) 중국’, ‘중국의 협(俠)’의 ‘상상’을 통해 그 침탈 이전의 자존감·정체성을 회복하며 ‘중국 민족’이라는 근대적 민족으로 다시 탄생했다는 것으로, 문학연구를 넘어 일종의 역사적·사회과학적 상상력을 담은 논문이다. ‘근대적 민족’의 탄생은 현대국가 성립의 필수 요소이므로, 그 이해는 현대 중국의 이해에도 많은 도움을 준다고 할 수 있다.

‘양강 중국’은 중국의 남성성의 복원 과정을 의미한다. 이는 일종의 정신분석학적 연구로, 제국주의 침탈로 인해 남성성의 거세를 경험한 중국인들은 김용 소설이 여성 캐릭터들을 숭배하거나 희생시키고, 처벌하거나 용서하는 방식으로 그들을 남성 질서 내로 포섭하는 과정의 경험을 통해 남성성을 회복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문화 중국’은 김용이 중국의 강호(과거)를 심미화·도덕화·신비화하여 고도의 문화적 공간으로 변모시켰고 중국인들이 그 상상을 통해 심리적 우월감을 회복하였다는 내용이다. ‘강호의 심미화’는 특히 중국의 전통 문예의 활용을 통해 이뤄졌는데, 김용은 작품에서 중국의 유불도(儒彿道) 철학과 중국의 전통 문예(文藝)와 기예(技藝), 즉 시사가부(詩詞歌賦)와 서예·회화·음악·바둑·의술 등을 자유자재로 인용 및 활용하여 중국의 강호를 심미적이고 신비한 공간으로 변모시켰다. ‘강호의 도덕화’에서 김용은 역시 유불도의 철학을 활용하여, 강호를 의협(義俠) 뿐 아니라 유가(儒家)의 충효·보국안민과 불가(佛家)의 자비·희생, 도가(道家)의 탈속(脫俗)과 자유가 넘치는 윤리적 공간으로 변모시켰다.

‘중국의 협’이란, ‘한족(漢族)’ 민족주의자로 출발했던 김용이 ‘중국 민족주의’의 완성을 위해 도달한 결론이다. 중국에는 한족 외 50여개의 소수민족이 있으므로, ‘한족주의’만으로는 중국을 통합할 수 없다는 점을 깨달은 것이다. 그리하여 후기작 『천룡팔부』(1963)에서 주인공들은 (이전작들과 달리) 모두 한족이 아닌 이민족(거란·대리·선비족 등) 출신이며, 이들이 오히려 천하(중국)의 평화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 마지막 작품 『녹정기』(1969)의 주인공 위소보는 아예 그 출신민족을 알 수 없는 인물로, 역시 한족이 아닌 ‘중국인(中國人)’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김용 무협을 계승한 영화들 ‘영웅’과 ‘와호장룡’

이쯤에서 독자들을 위해 김용의 작품을 추천하고 싶으나, 그 분량이 방대하므로 영화를 대신 추천한다. 영화화된 김용의 작품 중 대표작으로 <소오강호>(1990), <동방불패>(1992), <의천도룡기>(1993), <동사서독>(1994) 등이 있다. 그런데 필자는 이 영화들이 김용 무협을 충실하게 구현하기보다는, 당시 홍콩 무협영화의 문법에 더 충실했던 작품들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김용 원작이 아니지만 오히려 김용 무협세계를 더 잘 구현했다고 생각되는 두 영화를 다음과 같이 추천한다.

필자는 장예모 감독의 <영웅>(2002)이 김용 무협의 정수를 영화적으로 가장 잘 체현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이 작품이 원작으로 하고 있는 『사기』의 『자객열전』 자체가 우선 무협장르의 시초라고 불리는 작품이다. ‘문화 중국’의 면에서 이 영화는 중국의 온갖 문예(서예·음악·미술·바둑·검법 등)의 활용을 통해 심미적 강호를 구현하고 있으며, 주인공의 선택을 통해 ‘하나의 중국’, 즉 ‘중국 민족’을 추구할 것을 지시하고 있다.

이안 감독의 <와호장룡>(2000) 역시 ‘문화 중국’의 심미성·철학성을 높은 수준으로 체현한다. 이 영화는 특히 대나무숲 액션 등에서 볼 수 있는 정(靜)과 동(動), 유(柔)와 강(强)의 조화를 통한 도가(道家)적 미적 정신의 체현, 그리고 주인공들의 비상(飛翔)을 통한 도가적인 ‘초월적 자유’의 추구를 보여주고 있어, ‘문화 중국’의 심미성의 추구에 있어서는 <영웅>보다도 더 높은 경지에 도달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중국의 현재와 미래에 대하여

김용 무협을 통해 본 중국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김용의 ‘중국 민족’ 기획은 실은 이미 현대 중국이 수행 중인 근대화 기획 중 하나이며, 동북공정 등의 역사 기획은 그 일부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민족주의 강화’ 기획은 19세기 유럽의 낭만주의에서 보듯 전통문화를 소환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에 따라 중국은 전통문화를 현대적으로 구현하고 있는 김용 무협의 세계를 향후 더 자주 불러내게 될 것이라고 본다. 2008 베이징 올림픽 예술 총감독이었던 장예모가 그 총감독 선정 직후 국가주의 선전영화라고도 볼 수 있는 영화 <영웅>을 연출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필자는 ‘김용 무협’이 그 ‘중국 민족’ 기획의 일부로만 갇히기에는 아깝다고 생각한다. 김용 무협의 ‘문화 중국’은 비록 ‘중국 민족주의’라는 귀결을 낳기는 했으나, 문화적으로 그것을 훨씬 넘어서는 예술적 가능성을 가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용 무협이 그러한 예술적 가능성을 더 꽃피우기 위해서는 반드시 중국인의 문화적 자유가 필요하다. 그러나 현대 중국은 국민의 더 많은 문화적 자유와는 반대 방향, 즉 더 많은 검열과 통제의 길로 가고 있기에 안타까운 마음이다. 중국인들이 언젠가 더 많은 문화적 자유를 얻게 되어, 김용 무협의 가능성을 더 높은 수준으로 만개시키는 날이 오기를 기원한다.

 






임준형 변호사
●법률사무소 메이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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