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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리를 위한 투쟁’에서의 인연, 그 소중함과 어려움

외부 위원회를 마치고 귀가하려고 하다가 사무실 회식이 있다고 하여 회식을 하러 집근처에서 다시 택시를 탔다. 그런데, 택시 운전기사가 룸미러를 통하여 자꾸 나를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더니 운전기사는 내게 “어디에서 많이 본 듯한데요. 혹시 어느 초등학교 나왔나요?”라고 물었다.
운전기사와 나는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모두 맞추어보았다. 운전기사는 “혹시 변호사님 아니세요?”고 물었다. 내가 그렇다고 답변하니, 그분이 예전 사무실의 건물에서 주차타워를 관리하는 일을 하였고 나이가 비슷하여 인사를 주고받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기억이 떠올랐다.

그분은 본인에게 법률적 문제가 있다고 말하면서 다음날 연락을 줄 테니 명함을 달라고 하였다. 나는 택시에서 내릴 무렵 명함을 주었다. 후에 그분으로부터 연락이 왔고, 사무실에서 상담을 하였다. 그분은 택시손님한테서 상해를 입어 형사사건이 계속 중이고 검찰 조정위원회가 예정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택시 운전기사로 만났으나 알고 보니 지인이었고, 그렇게 사건을 수임하기에 이른 것이다. 나는 상해진단서, 치료비, 약비, 상해 및 핸드폰파손 사진 등을 증거로 받아 검찰조정에 관한 의견서를 작성하여 제출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검찰에서 조정은 쌍방의 입장차가 워낙 커서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민사소송을 추가 진행하기로 방향을 정했다. 가해자의 정확한 주소지를 모르므로 관할 검찰청에 대응하는 법원에 민사소송을 제기하였다. 검찰청에 피고의 주소지에 관한 사실조회를 신청하였고, 사실조회 회신이 도착하여 피고 주소를 보정하였다. 이후 법원은 실제 피고의 주소지가 있는 시군법원으로 이송하였다.

피고의 변제능력과 의사가 의심되어 피고의 주소지에 대한 부동산가압류도 신청하였다. 그 무렵 사무실을 옮기게 되어 사정상 전자신청이 아닌 종이신청을 하였다. 각종 세금을 납부하려고 시청에도 갔고, 은행에서 제반수수료를 냈으며, 시군법원의 직원의 안내를 받아 부동산 별지목록을 손수 작성했다.

부동산가압류는 가능하게 되었으나, 문제는 법원의 현금공탁 결정이었다. 아주 큰돈은 아니었으나 의뢰인은 부담스러워했다. 내가 현금공탁에 소요되는 돈을 의뢰인에게 빌려줄 테니 차용증을 작성하기로 했다. 의뢰인이 내게 매월 이자를 내고 2018년 12월까지 갚는 것이 차용증의 내용이었다.
이렇게 통상적 의뢰인보다 사건에 더 깊숙이 연루하게 되었다. 의뢰인이 지인이고, 의뢰인의 승소를 바라는 마음이 크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의뢰인은 고마워했다. 부동산가압류 신청은 인용되었다. 피고가 일부러 소장을 송달받지 않아 야간송달과 주말송달을 위한 송달료를 의뢰인이 추가로 내기도 했다. 드디어 민사본안소송의 첫 변론기일이 2018년 12월 중순경 지정되었다.

그러던 중 피고(가해자)로부터 갑자기 연락이 왔다. 이미 상해죄로 벌금은 냈으나, 일정한 금액을 주고 합의하고 싶다는 의사였다. 아마 피고는 변호사 또는 법무사 비용, 부동산가압류까지 된 상황, 법원에 여러 차례 다녀가는 시간적·경제적 손실 등을 감안할 때 합의가 낫다고 판단한 듯하다.
피고에게서 두 번 정도 연락이 와서 통화하다 보니 그분 역시 딱한 처지라고 느껴졌다. 피고는 분할해서 내겠다는 제의도 하고 의뢰인이 원하는 액수보다 훨씬 적은 금액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변론기일이 1주일 앞으로 다가오고 결국은 합의가 안 될 듯했다. 의뢰인은 분할 합의금 지급이나 적은 금액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참 연락이 오지 않다가 재판 며칠 전 갑자기 피고에게서 연락이 왔다. 청구금액보다는 낮으나, 최종 교섭에서 의뢰인이 요구한 금액을 일시에 지급할 것이니 민사본안소송 취하와 부동산가압류 취소를 해달라는 것이다. 피고는 변론에 대응함에 드는 비용이나 시간 면에서 압박을 당한 듯하다. 나는 피고로부터 합의금을 받은 후 성공보수금을 제한 나머지를 의뢰인에게 주었고, 민사소송을 취하하였다.
그런데, 사안은 거기에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부동산가압류 집행해제 신청을 옮긴 사무소에서 처리하느냐가 애매했다. 부동산가압류 집행해제 신청에도 송달료, 등록면허세, 등기수수료 등이 소요되었다. 신청이 까다로운 일은 아니나, 피신청인에게 약속해서 해주는 것이고, 피신청인이 비용을 부담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의뢰인이 별도의 위임을 위해 인감도장, 인감증명서를 사무실에 제출해야 했고, 의뢰인에게 이 신청을 새로운 법무법인이 위임받지 않았고 비용이 지출되는 문제라고 설명하였다. 그랬더니 의뢰인이 버럭 화를 냈다. 여태까지 변호사님만 믿고 왔는데, 형사조정, 민사소송 및 가압류에 너무 많은 비용과 시간이 들었다는 것이다.
나는 의뢰인에게 “민사와 형사는 구별되고, 민사소송과 가압류신청도 별개이므로 그렇게 된 것이다”, “나로서는 최선을 다했고, 특별히 아는 분이라 공탁금도 빌려줘 가며 더 노력한 것이다”, “그 사건 때문에 시군법원에 갔고, 각종 수수료, 세금을 냈으며, 법원직원에게 배워 별지목록을 작성했다”고 언성을 높여 말하기도 했다.

피고는 이미 상해죄로 벌금을 내고 형벌을 받았다. 그러나 의뢰인은 권리침해에 대한 충분한 보상을 받지 못하였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권리구제가 너무나도 지연된 사실과, 형사조정, 민사본안 및 가압류에 비용이 지출되어서 불만이었다. 게다가 위임한 변호사는 부동산가압류 집행해제 신청에 드는 추가 비용까지 말하고 있으니...

내가 의뢰인과 입장을 바꾸어 생각하니, 민사와 형사의 엄격한 구별, 부동산가압류 사건에 대한 새로운 위임은 변호사 입장에서는 중요하겠으나, 당사자 입장에서는 중요하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뢰인 입장에서는 분쟁해결에서 이미 오랜 시간이 소요되었고, 절차적 복잡함으로 고통을 겪었는데 추가비용 지출까지 더해지니 분통이 터졌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믿고 있던 변호사까지 내 편이 아닌 것 같은 느낌에 불쾌감도 생겼을 것이다.

부동산가압류 집행해제 신청에 큰 비용이 들지 않고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어서 결국 부동산 가압류 집행해제를 해주기로 하였다. “잘 처리할게요. 그간 고생 많으셨습니다.”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을 때는 의뢰인으로부터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2018년 말일 의뢰인에게 “안녕하세요. 성승환 변호사입니다.…기해년(己亥年) 새해에 항상 건강과 행복이 충만하길 기원합니다.”라는 의례적인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해를 넘겨 2019년 1월 1일 답장이 왔다. “변호사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항상 건강하시고 뜻하시는 모든 일이 만사형통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2018년을 넘기기 전에 이 사건은 해결되었다.

루돌프 폰 예링은 ‘권리를 위한 투쟁’에서 “나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나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동시에 법을 침해하거나 법을 주장하는 것이다.…이기주의는 부지불식간에 자신과 자기 권리를 뛰어넘어 권리자가 법률의 대변자가 되는 이념적 고지에 도달한다.…윤리학은 권리를 위한 투쟁을 비난하기는커녕 오히려 이를 의무로 요구한다.…너는 투쟁을 통해 너의 권리를 찾아야 한다.”고 말하였다.

인연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여 사건에 깊이 들어갔다가 좋은 소리는커녕 욕만 들을 뻔했다. 이번 일은 인연이 있는 의뢰인의 사건이었던 만큼 그의 입장에서 침해된 권리, 나아가 법 감정의 손상이 구제되었는지를 깊이 생각하게 해주었다.

 

 

 





성승환 변호사
●법무법인 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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