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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의 이혼소송

비법률가로부터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전문분야가 있는지, 가장 많이 하는 분야가 무엇인지에 관한 질문이다. 그때마다 나는 회사와 관련한 일을 많이 한다고 뭉뚱그려 대답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소송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으면, 나의 대답은 단연 “내 친구의 이혼소송”이다.
지금도 햇수로 변호사 6년 차, 나는 여전히 병아리(?) 변호사이지만, 그동안 기억에 남는 사건은 수두룩하다. 이혼사건 도중 상대방이 우울증으로 자살했을 때는 마치 나의 서면이 상대방의 내면의 상처를 건드린 것 같아 나 또한 죄책감에 시달렸고, 아빠 뻘 되는 회사 대표이사가 사기죄로 2심까지 유죄 선고를 받았다가 대법원에서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되었을 때는 짜릿한 환희와 동시에 가슴 뭉클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내 친구의 이혼소송만큼 통쾌한 것이 없었다.

내 친구는 제대로 된 연애 한 번 못 해본 그야말로 숙맥이었다. 그런 그녀가 선을 봐서 만난 지 3번 만에 결혼을 결정하여 상견례를 하고, 첫 만남 이후 3개월 만에 초고속 결혼을 하였는데, 추후 그녀의 말에 의하면 결혼 전 혼전순결을 지킨 건 남편이 자신을 너무 아끼고 사랑해서인 줄 알았다고 한다. 결혼 후 드러난 내 친구 남편의 실상은 자신의 아내가 누가 됐든지 상관없고, 자신은 결혼 전 문란한 성생활을 청산하지 못하고, 지속하였다는 점이었다. 결국 내 친구에게 결혼 후 3개월 만에 여러 여자와의 관계가 들통이 나고, 둘은 관계 회복을 위해 부부상담 등 부단히 노력했지만, 결국에는 더 이상 노력하기 싫다면서 남편이 내 친구에게 먼저 이혼소송을 제기하였다. 내 친구는 나에게 전화 상담을 요청하였고, 당시 1년 차 햇병아리였던 나는 ‘너를 진심으로 이해해줄 수 있는 좋은 변호사를 만나라’고 조언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녀가 어느 대형 로펌의 부장판사 출신의 변호사를 선임하였다고 전했을 때만 해도 나는 그녀가 유책 배우자인 남편을 상대로 응당 잘 방어해낼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1년 후 나는 내 친구로부터 1심에서 유책 배우자의 이혼청구가 인용되었다는 원고 승소판결을 받았다는 점을 듣게 되었고,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1심 변호사였던 그 부장판사 출신의 변호사는 내 친구로부터 그녀의 결혼 이야기를 쭉 듣더니, 솔직하게 전부 재판부에 털어놓을 경우, 결혼이 너무 파탄 난 것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에 상대방의 유책 사유 등 많은 부분을 털어놓지 말자는 전략을 썼다는 것이다. 지금도 그리고 당시 에도 여전히 대법원은 이혼사건에 있어서 파탄주의가 아닌 유책주의이기 때문에 아직도 나는 그가 왜 그러한 전략을 썼는지는 선뜻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결국 1심에서는 원고인 내 친구의 남편에게 혼인관계 파탄에의 귀책사유가 없다는 전제하에 부부간 성관계의 부존재가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로 인정되어 이혼 판결이 난 것이었다.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누구보다 그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누구보다 검소했고, 누구보다 철학, 정신분석학, 음악, 미술 등 여러 분야에의 지적 호기심이 강하여 독서를 취미로 삼았으며, 내가 아는 누구보다 물질적인 사치와는 거리가 먼 여자였다. 그런데 1심 소송 후 건네받은 그녀의 소송기록에서 그녀는 사치를 일삼고, 시부모님에게 막말을 하는 부도덕한 여자가 되어 있었다. 그때만큼 내가 소송에 임하기 전에 상대방에 대한 전투력에 불타올랐던 적은 없었을 것이다. 그녀의 남편이 승소하는 것은 ‘부정의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그녀에게 아직 법은 정의의 편임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렇게 그녀의 항소심을 수임하고 나서 첫 기일에 나는 재판부에 의뢰인인 그녀는 내 가장 친한 친구 중에 하나이며, 이 결혼 생활의 시작과 끝까지 속속들이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바로 그녀의 변호사인 나임을 구두 변론하였다. 응당 변호인이라면 하지 않았을, 그러나 그녀를 십오 년 가까이 지켜본 친구로서는 하지 않고서는 못 배길 이야기였다. 그리고 항소심에서 그녀의 남편의 유책 사유를 일일이 열거한 준비서면을 제출하였고, 항소심 재판부는 이 사건에 대하여 처음부터 새로운 시각에서 검토할 것임을 밝혔다. 그 이후 여타 이혼소송이 그렇듯 지난한 공방 끝에 판사는 조정으로 그녀의 남편에게 재판으로서는 얻어내기 힘들었을 만큼 큰 액수의 위자료 및 재산분할 금액을 지급하고 혼인관계를 종료할 것을 권고하였고, 그렇게 그녀는 3년여간의 지옥과 같았던 결혼생활을 청산할 수 있었다. 적어도 처음 맨몸으로 그 집에서 쫓겨날 위기에서 벗어나 새 출발을 할 수 있을 만큼의 금액을 얻어낸 것이었다.

그로부터 6개월 후 그녀와 술자리를 가진 적이 있었다. 난 실로 오랜만에 내 친구가 얼마나 아름다운 여자인지 알 수 있었다. 앞이 보이지 않던 깜깜한 고통의 세월에서 벗어나 새 출발을 앞둔 그녀의 두 볼은 약간 상기되어있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녀는 몇 번이나 나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현했다.
변호사로서 의뢰인의 마지막 모습은 보는 것은 아마 판결문을 받고 나서까지가 아닌가 싶다. 그 이후 의뢰인이 어떤 삶을 사는지는 알 수 없으니까. 그러나 나는 내 친구의 이혼소송을 통하여 한 사람이 소송 이후 어떻게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지 톡톡히 지켜볼 수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법은 정의의 편이라는 점을 그녀에게 알려줄 수 있어서 진정 행복했다고 생각한다.

 

 






정지원 변호사
●법무법인 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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