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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데없이 해맑은 추

검은 해변을 걷는 침팬지
흰 발바닥이 생각난다
열뜬 이마를 짚어주던 화초
넓고 축축한 손그늘이
생각난다 커다란 환풍기 앞에 서면

공장 목욕탕 화장터 구분 없이
굴뚝에 이끼가 덮이면 어디선가
뭣 모르는 새들이 날아와 면류관을 씌워주겠지
날갯죽지에 부리를 파묻고 몇 달 밤낮을
깃털에 떨어지는 빗방울로 연명하면
그 피톨만한 게, 방금 건져 올린 티백만한 게
따뜻한 김을 뿜으며 물장구치다 눈 깜빡이는 새
쯔쯔쯧 혀를 차며 후루룩 날아오르는 거겠지

입술 없는 새들이 어떻게 미소 짓겠어?

아직 핏기가 가시지 않은 새벽
지금 귀를 쪼며 끄덕이는 건
잇다… 엎다… 잊다… 없다… 오락가락하는 시계추
해맑은 괘종시계의 웃음

올려다보면, 네게서 등 돌려 저들끼리 털을 골라주는 구름들
내려다보면, 뒤죽박죽 네 쓰라린 얼굴을 풀잎의 이슬마다 비춰보면
초록의 장화 신은 어린 날들이 너를 굽어보고 있다 밟힌 벌레를 보듯이

네가 꽃향기를 맡는 동안, 꽃들은 네 벌름거리는
콧구멍에서 무슨 냄새를 맡았을까?

머리털을 쥐어뜯고 주먹을 삼키고 단내가 나도록
혀를 차며 날아올라도 백태 낀 하늘
가로수들의 밋밋한 겨드랑이 밑
달관한 새들은 미끄럼틀을 매달고 날아오르고
쏟아져 내리는 벼껍질 같은 햇볕 속에서
나는 낱알의 잠이었다 서로를 등지고
죽은 집의 반점으로 텅 빈 몸 불려가던
낱말의 흑과 백이었다

약 1년하고 한 계절 전, 늦가을 새벽이었다. 지금처럼 마감을 넘겨버린 피곤한 시간. 몸살에 걸려 잠을 설친 나는 모란역으로 향하고 있었다. 가족들의 숨소리, 같은 샴푸 냄새가 깃든 베개들, 길이가 맞지 않는 다리로 벽시계가 걸어 다니는 천정. 거기서 조금 떨어진, 내 피로와 불안을 가려줄 어떤 장소가 절실했기 때문이다.

역에 도착하자 유흥가 골목의 담배연기, 거리에서 흘러나온 소음과 짙어진 내 입김이 차가운 새벽공기와 뒤섞이고 있었다. 가까운 카페에 들어가 나는 홍차를 홀짝이며 ‘새벽은 내 머리를 허옇게 분갈이 하고 갔다’, ‘벼껍질 같은 햇볕 속 낱알의 잠을 잤다’는 등의 시답잖은 문장을 끄적거리고 있었다.

그때 카페 문이 열리고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바퀴 구르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어보니, 한 중년 여성이 두어 개의 비닐봉지를 싸맨 캐리어를 끌고 곧장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슬리퍼에 얇은 외투 그리고 썬캡과 마스크 차림으로 카페를 한 바퀴 돌아보았다. 새벽이지만 주변 술집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어 카페는 어느 정도 자리가 차 있었다. 그는 내 건너편 자리에 멈춰 섰다. 그의 눈을 피해 나는 사각의 흰 모니터 안에서 곁눈질을 했다. 그는 그 자리에 등을 보이고 앉았고, 곧 엎드려 잠에 들었다.

내가 한 문장을 쓰고 새벽이 세 문장을 지워내는 사이, 안경을 쓴 카페 점원이 헛기침을 하며 다가와 그를 깨우기 시작했다. 그는 주춤주춤 일어났고, 곧 일어나겠다는 몇 마디를 끝으로 다시 고개를 묻었다. 다시 점원이 다가왔고, 그가 엎드려있는 테이블을 노크했다. 똑똑. 손님? 똑똑. 손님… 손님! 깨어난 그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별말 없이 나갈 준비를 했다.

나는 카운터로 가서 화장실 비밀번호를 물어보며 커피를 주문했다. 저기, 저분께 알리지 말고 가져다 주세요. 돌아보지 않고 눈짓으로. 점원은 표정이 아주 풀려버리는 얼굴을 몇 초간 보였다. 나는 다 안다는 듯이 괜찮다고 웃어 보이다가, 내가 먼저 시선을 거두어주었다. 카페 문을 나서며 돌아보았을 때, 점원이 그가 앉아있는 테이블로 다가가는 게 보였다. 곧 어색한 말과 웃음으로 점원은 그에게 커피를 건넸다. 화장실을 다녀오면서 보니, 그는 양손을 테이블 아래에 두고 의뭉스러운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하지만 어쨌든, 그는 그 커피를 받아들인 듯 보였다. 그는 천천히, 김이 피어오르는 커피를 양손으로 만지작거리다가, 한 손으로 커피를 들고 마시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른 한 손으로는, 무언가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기까지 썼을 때, ‘무언가를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표현으로 입김이 번지기 시작했다. 정말 생각하기 시작했다면… 다섯 문장은 더 지워야겠지. 그의 새벽에서 내 입김은 무엇을 흐리고 앉아있을까? 어떻게든 점원에게 피해가 갈 가능성, 그가 즉흥적이고 값싼 동정을 받아 상처받았을 가능성, 신성한 자본질서에 이바지하거나 운 좋게 흠집을 냈을 가능성… 사실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내게는 어떻게든 단어에 대한 값을 지불하는 것이 중요하다. 값이 매겨지기 전에 은밀하게, 나조차 모르게. 이를테면, 종이컵 분량만큼의 부채감을 덜어내는 것. 커피 한 잔 값의 동정과 작은 우월감의 충족으로 활기를 북돋는 것. 자신과 타인들에게 어떤 숨겨진 정념을 유발하고 조명하는 위치에 서는 것… 그래서 내가 뭘 어쨌단 말인가? (진정한 말에는 그 권능과 책임이 나뉘어 있을 리가 없다. 그렇게 믿는다.)

어떤 것을 표현한다는 것은 그것에 일치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표현에 무한히 가까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의 호흡을 빌어 내 성대(聲帶)를 떤다는 것이다. 여기서 어떠한 표현으로도 내가 그것이 될 수 없다는 한계성은, 현실이라는 ‘다원적이고 절대적인 허구’가 언약(言約)을 기반으로 한다는 진짜 사실을 강하게 환기한다. 그리고 이러한 언약의 비절대성과 부조리, 이해와 사랑의 불완전성과 폭력성, 그리고 뜻 다른 절망과 절망의 또 다른 표현을 살아낼 수 있다는 사실이 현재의 내게는 희망이다. 희망? 희망.

이설빈 시인
●2014년
 『문학과사회』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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