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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역사』 변호사(辯護士)의 변호사(辯護史)

작년 한 해 베스트셀러 중 가장 화제가 되었던 책은 유시민의 ‘역사의 역사’였다고 한다1). 이미 유명 정치인의 반열에 오른 작가 개인의 지명도에 기인한 것인지 서적 콘텐츠 자체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가늠하지 못하겠다. 다만 작가로서의 유시민이 언제나 학술적인 분야를 대중이 쉽게 접근하여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안내해주는 가이드 역할을 해 온 데 대한 독자의 신뢰와 평가가 반영된 것임은 확실하다.

필자가 볼 때, 이 책은 역사학 자체를 연구·분석한 것이 아니라 ‘역사’가 ‘이야기’라는 속성을 벗어날 수 없는 점2) 에 착안하여, 대중과 후세의 호응을 얻은 ‘역사서’를 저술한 ‘역사가’들이 자기 나름의 해석을 통해 ‘이야기’를 펼쳐 온 ‘역사’, 바로 그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라고 본다.

저자는 2016년 겨울 시작된 ‘촛불혁명’을 마주하면서 인생의 책인 ‘역사란 무엇인가(E.H.카)’를 다시 떠올렸고, 동서양 역사가들이 남긴 역사 고전3)을 다시 읽으며, 그들이 우리에게 전하려고 했던 생각과 감정을 르포르타주(reportage)4) 형식으로 엮어내었다고 한다.

저자는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썼고(2011) ‘촛불혁명’으로 촉발된 시대의 요청으로 개정신판을 다시 냈는데(2017) 그러고 보면 저자는 항상 ‘...란 무엇인가’5)라는 발생사(發生史)적 고찰을 중시하여 저술에 선행한다. 이 책 역시 이번에는 역사를 대상으로 하여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낸 것이고, 저자가 자처하는 ‘지식소매상’으로서 독자에게 새로운 지식과 신선한 깨달음을 주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흔히 역사는 진보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과학기술의 발전, 그로 인한 삶의 편리함, 신분·계급의 철폐와 정치적 기회의 확대는 이 명제를 부정할 수 없게 만든다. 그러나 자원고갈, 생태계 파괴, 인간소외 현상은 지금보다 훨씬 불편하고 우울했다던 과거에는 결코 겪지 않았을 폐해와 부작용이다.

그리스 문명부터 현재까지 지속된, 더 부유하고 편리하게 살기 위한 인류의 몸부림이 과연 삶의 질에 있어서 진정한 행복을 가져온 것인지에 대한 의문은, 이 책에 소개된『공산당 선언』, 9.11 테러로 부각된『문명의 충돌』, 『사피엔스』만 떠올려 보아도 (생물학적) 진화와 (사회학적) 진보는 다른 개념임을, 경제든 기술이든 발전의 양과 질은 성장과 분배의 문제로 귀결됨을 쉽게 알 수 있게 해 준다.

개인은 진화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은 그 자체로 마냥 부정될 것은 아니지만 그 이전에 인간의 욕망과 본성에 대한 이해, 개인과 사회가 뒤엉킨 사건에 대한 해석이 보다 근원적인 고민으로 먼저 다가오게 된다면, 저자가 배우고 느낀 바가 독자들에게 온전히 전해졌다고 보는 것이 필자의 주제넘은 착각일까.
이븐 할둔이 기존 역사가를 비판한 글에서 헤로도토스를 비판한 투기디데스가 떠오른다는 저자의 각주를 통해 필자는 카를 마르크스의 “역사는 반복된다. 한 번은 비극으로, 한 번은 희극으로”라는 격언을 새롭게 이해하게 되었다. 인간의 본성은 변함이 없기에 인간의 이야기인 역사 역시 인간의 한계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피엔스에 대한 저자의 식견도 필자의 소견과 맥과 궤를 같이 한다.

“나는 인간이 자연선택의 역사를 종식하고 지적 설계의 역사를 열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우리의 몸은 수렵채집인과 다르지 않으며 우리의 정신은 모든 기회를 편 가르기에 활용하는 부족 본능을 극복하지 못했다. 우주를 탐사하고 유전자를 조작한다고 해서 신이 되는 것이 아니다.”라는 저자의 최종결론에 골백번 찬동한다. 그렇기에 변호사는 인공지능으로 인해 결코 사멸(死滅)하지 않을 것이지만 그렇다고 고고한 척 애를 써봤자 대립의 당사자와 갈등의 사실관계 속에 섞여서 어우러져 살아갈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 서울지방변호사회도 변호사(辯護士)의 변호사(辯護史)를 못 쓸 것이 없다. 변호사야말로 의뢰인의 사실관계를 정리·편집·재해석해주는 개별사·미시사·민중사를 다룬 역사가들 아닌가. 책과 강의로 배울 수 없는 인간사를 생생하게 접하게 해주는, 특히나 그것을 타인의 말로 듣고 자신의 글로 쓰게 해주는 이 직업은 그래서 정치인, 연사(演士), 작가로 어렵지 않게 호환 가능한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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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터파크 독자가 뽑은 2018 최고의 책은 유시민의 ‘역사의 역사’였다(2018.12.22.기사 제목 발췌, https://www.insight.co.kr/news/199426 참조)
2) 독일어로 ‘역사’를 뜻하는 ‘Geschichte’는 ‘이야기’라는 뜻으로도 쓰인다.
3) 헤로도토스의 『역사』,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전쟁사』, 사마천의 『사기』, 이븐 할둔의 『역사서설』, 레오폴트 폰 랑케의 『근세사의 여러 시기들에 관하여』와 『강대세력들·정치 대담·자서전』, 카를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말』, 박은식의 『한국통사』와 『한국독립운동지혈사』, 신채호의 『조선 상고사』, 백남운의 『조선사회경제사』, 에드워드.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 오스발트 A.G. 슈펭글러의 『서구의 몰락』, 아널드 J.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역사에 관심이 없더라도 하나같이 그 존재는 알고 있을만한 역사서들이다. 저자 덕에 맛볼 수 있게 되어 기쁜 마음으로 수저를 들며 먼저 시식한 필자로서는 나름 테이스티 로드였고 꽤 꽃길이라고 여겨지는바 이 책의 완독이 부담되는 분들은 손길 가는 각 장별만이라도 발췌독하기 바란다.
4) 보고기사, 기록문학 또는 논픽션. 프랑스어로 탐방·보도·보고를 의미하며, 소위 ‘르포’로 줄여 쓰는 르포르타주는 사전적인 의미로는 허구가 아닌 사실에 관한 보고라는 뜻이다. 어떤 사회현상이나 사건에 대한 단편적인 보도가 아니라 보고자(reporter)가 자신의 식견(識見)을 배경으로 하여 심층취재하고, 대상의 사이드 뉴스나 에피소드를 포함시켜 종합적인 기사로 완성하는 데서 비롯되었다. 방송 프로그램으로는 MBC의 『PD수첩』이나 KBS의 『추적 60분』 등이 대표적인 르포르타주 형식에 해당된다.
5) 여담이지만, 작년 추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김영민 교수가 경향신문 [사유와 성찰] 칼럼란에 기고한 “‘추석이란 무엇인가’ 되물어라”라는 글이 각종 인터넷 사이트에 돌고 돌며 당시 젊은이들 사이에서 ‘결혼이란 무엇인가’, ‘직업이란 무엇인가’ 등 응용버전으로 회자(膾炙)되기도 했다.

신성민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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