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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또는 젊음은 빛난다.

빛났던 젊음.
젊은 여가수는 갑작스레 나타나서 유행을 일으켰다. 영국식 억양의 말투나 분방한 헤어스타일, 히피스타일의 옷맵시는 훗날 프렌치 시크(French Chic)라고도 불렸다. 앳된 영국 배우인 그가 프랑스 음악가(세르주 갱스부르)를 만나서 그의 곡들로 가수 데뷔했던 일은 파격적이었다. 길지 않은 기간 동안 그녀가 (어느 것도 완전치 못한 언어인 듯) 영어 혹은 불어로 부른 노래들은 강렬한 인상으로 박혔다. 이젠, 어느덧 옛 기억이 되어버렸고, 어느 유명 브랜드의 고급 가방 이름으로 남게 되었던 그는 제인 버킨(Jane Mallory Birkin, 1946~)이다.

버킨의 노래 중에 <Yesterday Yes a Day>라는 곡은, 반복되어 평범한 일상에 누군가가 불쑥 끼어 들어오는 ‘설렘과 새로움’을 산뜻하게 표현하고 있다. 가녀리거나 애처로운지 모를, 아름답고 몽연한 미묘(美妙)한 매력이 넘친다. 가늘고 선명한 어쿠스틱 기타선율에 애틋하고 절절한 목소리는 마치 다른 악기처럼 공명(共鳴)하고 있다. 당대를 대표한 프랑소와즈 아르디의 목소리들(<Comment te dire adieu> 등의 곡)은 당당하면서도 매끄럽고 농염한데, 버킨은 그런 매혹 없이도 듣는 사람에게 행복감과 안도감을 준다. 옛 추억으로 슬며시 끌고 가는 사이렌(Siren)의 목소리는 참으로 타고난 것이기에, 배울 수 없고 베끼기 어렵겠다.

버킨의 노래 중에 <Ex fan des sixties>라는 곡은 또 어떤가. 가사(Lyrics)라고는 보잘것 없이 영어, 불어를 섞어 놓으면서 “지나간(왕년의) 60년대 팬, 예쁘고 귀여운 아이, 로큰롤에 춤을 췄어요”란다. 자신이 팬인 양, 비틀스, 짐 모리슨, 애니멀즈, 도어즈, 지미 핸드릭스, 엘비스 등을 줄줄 읊는다. 호기심이 돋고 계속 귀를 열고 듣게되는 몽환적인 분위기의 가사가 단연 돋보인다. ‘메시지’보다는 ‘뉘앙스’라는 프랑스적인 노래들이란 나름의 멋이 있기에, 옛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팬들에게 지금도 사랑을 받고 있다. 특히, 그만큼 예뻤고 그만큼 사랑을 누렸던 한 여성이 자신의 ‘리즈’ 시절을 만끽하는 모습이 생생하면서도 싱그럽게 녹아 있다.

하지만, 영광도 잠시.
버킨과 갱스부르는 아이까지 있었지만 얼마 뒤 불화로 각자의 길을 가게 된다. 헤어지고 난 뒤 아쉽게도 지속적으로 ‘좋은 친구’를 유지하긴 어려웠다. 그 이후 버킨과 갱스부르의 전성기는 오래가지 못한다. 한때 서로가 서로를 원하고 사랑했을 때, 갱스부르의 멋진 연기와 음악이 파리를 석권했고 버킨의 목소리와 맵시는 세계인의 마음을 움직였지만, 이젠 사람들의 기억에 시크한 맵시 또는 유명 가방의 출처(?)로 한 여성만이 남았다.
 

 추락하는 건, 언젠가 날았다는 거다.
어느 작가는 자신의 어떤 작품을 높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 시답지 않은 연애소설에 대중이 왜 열광하는지도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았다. 정중하고 공손한 어법, 화려하고 현학적인 말투는 독자를 빠져들게 만들었다. 빠른 스토리 전개가 있고,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지는 플롯의 기법도 남달랐다. 지적인 이야기들에서는 젊은 에너지가 넘쳤다. 때론 차분하고 안정적인 분위기가 곧바로 격정적이거나 폭발하는 장면으로 바뀌는 장면들은 머릿속을 어지럽히면서도 독자들로 하여금 주인공들의 자유분방함에 빠질 만한 것이었다.

이문열 작가의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는 그의 작품 중에서 논란이 되었다. 다른 여러 소설들이 인간성, 종교, 사회부조리 등을 지적으로 탐구하며 밀도 있게 다뤘다면, 이 소설은 이카루스 신화(神話)를 소재로 한 것도 아니고 7·80년대 혼돈과 방종의 밑바닥을 보여주고 있지도 않다. 최고학부를 나온 젊은 엘리트와 미모와 매력의 여대생이 성장하는 모습들에서 독자는 호기심을 느낀다. 그 당대는 화려하고 방종했지만, 단지 그들은 맘껏 자유를 누린 죄 밖에는 없다. 그렇기에 “추락만이 인간이 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어느 시인(Ingeborg Bachmann·1926~ 1973)이 말했던가.

형빈과 윤주. 두 사람은 시대를 잘못 만난 것도 아니고, 불운한 사람들도 아니었다. 한 사람은 독설을 남기고 차가운 ‘주검’으로, 한 사람은 격분을 참지 못하고 총을 쏜 ‘범죄자’로 추락했지만, 그들의 인생은 불행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한때 그들은 자유이든 타락이든 만끽했고 인과법칙에 따른 종말을 맞은 것뿐이다. 한동안 그들은 맘껏 날았다는 것이고, 젊었다는 것이며 한때 행복했다는 것이다.

 젊음과 추락.
시간이 많이 흘렀다. 버킨의 노래는 50년 이상을 넘어버렸고 이문열 작가의 연애소설은 30년 이상 올드해 졌다.
그런데도, 버킨의 노래나 이 작가의 연애소설이 종종 인용되거나 드라마나 라디오를 통해 전파되는 것은 왜일까. 버킨의 노래들은 빛나는 젊음을 보여줬다. 마찬가지로 소설 속 주인공인 형빈과 윤주의 삶도 빛났던 생애를 보여줬다. 물론, 이들의 모습은 그렇게 아름답게 박제되지 못했다. 때론 비참하고 더럽게 변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비애로 그치지 않고 젊음이 추락했다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여가수의 전성기와 소설 주인공의 분방함은 ‘빛났던 한 시절, 찬란했던 청춘’이 배어있다.

젊은 그때. 남다른 축복과 영광의 시절이 있었기에, 이들의 추락은 슬프면서도 큰 대비를 선사한다. 비상과 추락은 단지 상승과 하락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한때를 근사하게 누렸던 누군가의 옛 모습이고, 다른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옛 팬(Ex fan)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겠다.

시간이 덧없이 흘러, 더 이상 새로울 것도 없고 남다를 것도 없는 시간에야 그 옛일들을 돌이켜 보면, 그걸 한때의 화양연화(花樣年華)의 멋으로 기억할 게다. 그리고 그 순간들이 들키지 않게 소중히 간직되길 바라는 인간 본연의 심성이 있다고 믿는다.

 

유재원 변호사
● 법률사무소 메이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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