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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 사건의 증거기록 등사와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에 대하여

형사재판은 검사의 기소로 시작하여 판결의 확정으로 종결된다. 검사가 피의사건을 기소하면, 피고인 또는 변호인은 공소장을 송달받고 공소제기 후 검사가 보관하고 있는 서류의 열람·등사를 통하여 증거기록을 확인한다(형사소송법 제266조의3 제1항). 이는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피고인의 방어권을 위한 절차다.

피고인 또는 변호인이 성범죄 사건에 있어서 공소제기 후 검사가 보관하고 있는 서류 등의 열람 및 등사를 신청하면, 검사는 형사소송법 제266조의3 제2항에 의거하여 피해자의 인적사항이 확인될 수 있거나, 피해자의 내밀한 부분1) 또는 피해자가 등장하는 영상이 찍힌 CD등에 대하여는 열람만 허용하는 것이 실무다. 바꿔 말하면 검사가 그 증거들에 대해서는 등사를 거부한 것이고, 그와 같이 검사가 증거의 등사를 거부한 사실은 변호사 사무실 사무원이 너덜너덜해진 증거기록을 가지고 왔을 때 알게 된다. 등사가 제한된 기록을 보는 것도 답답한데, 이때 검사는 동법 제3항에 따라서 그 이유를 서면으로 통지하지도 않는다.

피고인이 수사기관으로부터 수사를 받을 당시 이미 사건에 대하여 자백하고 있었고, 재판을 받기 이전이라도 법원으로부터 선처를 받는 쪽으로 사건의 방향을 잡았다면 굳이 증거기록을 등사하여 면밀히 살펴볼 실익은 없다고 볼 여지도 있다. 피해자의 인권 역시 당연히 보호되어야 할 것이지만, 모든 성범죄 사건에 있어서 일관하여 위 증거기록에 대한 등사를 불허할 것은 아니라고 본다.
검사가 등사를 거부하면 피고인 또는 변호인은 동법 제266조의4 제1항의 규정에 따라 법원에 그 서류 등의 열람·등사 또는 서면의 교부를 허용하도록 할 것을 신청할 수 있다.2) 그러나 법원의 실무는 피해자의 인적사항이 드러나기 때문에 검사가 이를 거부하는 것 같으니, 변호인이 직접 열람하고 본 신청은 취하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오히려 변호인에게 되묻는 것이다.3) 바꿔 말하면 결국 신청의 심리로 들어가더라도, 불허하겠다는 강력한 재판부의 의사표명이다. 이러한 검찰 및 법원의 실무는, 피고인의 방어권을 형해화하고 있다는 것에 강한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피고인 또는 변호인이 검사가 보관하고 있는 서류, 즉 증거기록을 등사하고자 하는 것은 오로지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을 위한 차원이다. 공소장 기재 내용만으로는 검사가 어떠한 논리로 피고인을 기소하였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이를 대비하기 위한 것이다.

검사의 공소사실의 요지 낭독으로 형사재판이 시작되면, 이에 대하여 피고인이 그 공소사실에 대하여 인부를 하여야 하는데 경우에 따라서는 그에 대한 인부도 할 수 없는 경우가 생긴다. 피고인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하고 있고 이를 입증할만한 객관적인 영상은 검사가 갖고 있는데, 이를 확인하여 면밀한 판단을 하지 못한다면 피고인으로서는 인부절차에 나아갈 수 없다. 피고인이 아닌 변호인이 열람한다고 하더라도, 당해 증거에 대하여 면밀한 분석이 필요한 경우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검찰이나 법원 입장에서 그 간단한 것 하나 못하냐고 반문할 수 있는데, 이는 피고인에게 있어서 절대로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피고인으로서는 자백하는 사건에 있어서는 최대의 선처를, 부인하는 사건에 있어서는 무죄를 바랄 수밖에 없다. 한편 당해 증거기록에 대하여 모두 동의하고, 법원을 통해서 등사를 할 수 있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이는 공소사실에 대한 인부 이후의 절차이기 때문에 실익이 없다. 증거를 면밀히 분석하지 못한 채 인부하였다가 방향을 선회한다면, 법원이 좋게 볼 리 없다는 점에서 섣불리 인부절차에 나아갈 수 없는 것이다.4)

현행 형사소송법 제266조의3 및 266조의4는『형사절차에서 일부 존재하는 자백 위주의 범죄수사와 조서중심의 재판관행으로 인하여 피고인이 검사와 대등한 소송주체로서의 법적 지위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피고인이 적정한 방어권을 행사하는 데 상당한 한계가 있어 왔는바,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하여 공판절차의 운영을 개선할 필요가 있기에 피고인 또는 변호인이 공소 제기된 사건에 관한 서류 또는 물건의 열람·등사 등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하는 증거개시 제도』로서 도입됐다(2007. 6. 1. 법률 제8496호로 일부 개정 이유, 법제처).

그러나 이쯤 되면 피고인이 여전히 검사와 대등한 소송주체로서의 법적 지위를 보장받고 있는지 의문이며 여전히 피고인이 적정한 방어권을 행사하는 데 상당한 한계가 존재한다고 볼 수밖에 없다. 물론 피고인이 동법 제266조의4 제1항에 따라 법원에 신청하고 기각된다면 이에 대하여 다시 항고할 수야 있겠지만, 전술한 바와 같이 법원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피고인 또는 변호인이 끝까지 그 처분에 맞설 수 있는 용기를 갖기란 쉽지 않다.

얼마든지 피고인의 방어권을 보장하기 위한 법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지만, 피해자의 인권 및 개인정보보호라는 명목하에 실무상 형사소송법 제266조의3 제1항, 제3항 및 동법 제266조의4 제1항은 형해화되어 있다. 따라서 ① 검사가 동법 제266조의3 제2항에 따라 서류 등의 열람·등사 또는 서면의 교부를 거부하거나 그 범위를 제한하여 그 이유를 서면으로 통지하지 아니한 경우에도5) 동법 제266조의4 제5항과 같이 해당 서류 등에 대한 증거신청을 할 수 없게 하도록 하는 형사소송법의 개정이나, ② 법원도 동법 제266조의4 제1항의 신청이 들어올 경우 인용 여부에 대한 내부적인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고 본다.6)

형사 피고인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 검찰과 법원의 성범죄 사건에 대한 의식의 변화를 기대하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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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를 들면,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위반(카메라등이용촬영)의 경우.
2) 법원이 검사의 열람·등사 거부처분에 정당한 사유가 없다고 판단하고 그러한 거부처분이 피고인의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취지에서 수사서류의 열람·등사를 허용하도록 명한 이상, 법치국가와 권력분립의 원칙상 검사로서는 당연히 법원의 그러한 결정에 지체 없이 따라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법원의 열람·등사 허용 결정에도 불구하고 검사가 이를 신속하게 이행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해당 증인 및 서류 등을 증거로 신청할 수 없는 불이익을 받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검사의 거부행위는 피고인의 열람·등사권을 침해하고, 나아가 피고인의 신속·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및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까지 침해하게 되는 것이다(헌재 2010. 6. 24. 선고 2009헌마257). 이러한 검사의 행위는 직무상 의무를 위반한 과실이 인정되고,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에서 정한 과실도 인정된다(대법원 2012. 11. 15. 선고 2011다48452 판결).
3) 심지어 법원이 동법 제266조의4 제1항의 규정을 모르고, 동법 규정에 의한 신청을 검찰에 하라고 한 경우도 있다.
4) 자백하는 사건이든 무죄를 다투는 사건이든, 피고인 또는 변호인은 법원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5) 동법 제266조의3 제4항은 검사가 48시간 이내에 제3항의 통지를 하지 아니하는 때에는 제266조의4 제1항의 신청을 할 수 있다고 되어 있으나, 제266조의4 제1항이 그 신청의 요건으로 ‘검사가 서류등의 열람·등사 또는 서면의 교부를 거부하거나 그 범위를 제한한 때’라고 규정하고 있어 불필요한 규정으로 보인다. 만일, 제266조의3 제4항에서 규정하고 있는 검사의 통지를 요건으로 삼는다면 제266조의4 규정은 존재의 이유가 없다.
6) 예를 들면, 피고인이 재판 전에 어떠한 입장을 명시적으로 취했느냐에 따라 그 기준을 달리 설정할 수 있을 것이다. 재판이 시작되기 전 자백하는 취지의 의견서를 제출하였다면 그 신청을 인용할 실익은 없다고 할 것이나, 필자가 경험한 것과 같이 공소사실의 인부를 위해서라면 그 신청을 인용해도 될 것이다.

안갑철 변호사
●법무법인 한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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