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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산법정을 찾는 채무자들에게 박수를

갓난아이는 숱한 허리 비틀기 끝에 자기 몸을 뒤집습니다. 사실 될 때까지 하는 것이지요. 몸을 뒤집기 위해 애쓰는 그 모습만으로도 우리는 열광하고 박수를 보낸다는 것을 아이를 키워본 사람은 다 알 것입니다. 아이가 뒤집기에 성공한 이후에도 더 많은 도전과 실패 끝에 아이는 기어 다닐 수 있고, 일어설 수 있고, 걸을 수 있으며, 뛸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우리의 몸은 성장을 향한 부단한 패자부활의 결과인 것입니다. 성장 과정에서 누구나 크고 작은 실패를 하고 그 실패를 통해서 배우고 앞으로 나아갑니다. 한글을 처음 보자마자 익히는 사람은 없고, 거듭된 노력 없이는 구구단을 암기하지 못합니다. 재수를 해서 대학교에 들어가기도 하고, 여러 번 실패 끝에 취업에 성공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사업을 시작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 번은 망합니다. 사실 실패의 큰 문을 몇 차례 들락거린 다음에 성공의 좁은 문에 들어서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창업자의 열에 아홉은 다 한 번씩 실패하고, 미국 실리콘밸리의 IT 창업자들도 평균 2회 이상을 실패한 이후에 작은 성공이라도 거둔다고 합니다.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관대한 파산제도를 보유한 것이 애플, 페이스북, 구글 등 세계적인 기업이 새롭게 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이라고 합니다. 개인이나 기업에게 관대한 파산제도가 허용된다는 것은 다른 말로는 실패를 딛고 재도전할 수 있는 넓은 기회를 제공한다는 뜻도 됩니다. 그리고 이런 배경에서는 사람들이 꼭 창업을 통해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하던 일을 과감히 접고 다른 일을 찾아가기가 용이합니다. 사회가 전체적으로 유연해지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는 기업이 파산하거나 회생절차에 들어가는 것에 대해서는 비교적 너른 이해를 하지만 개인이 파산이나 회생하는 것에 대해서는 무척 날선 시선을 가지고 있습니다. 빚진 죄인이라는 속담처럼 빚진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빚을 갚지 못 하는 것을 죄처럼 생각하는 정서가 남아서, 결국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채권자의 시선에서 사회를 바라보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다소 나아졌다고는 해도 개인 파산이나 개인회생 신청자들에게 대체로 분수를 모르고 돈을 빌렸다가 이를 갚지 않으려는 사람, 도덕적으로 해이한 존재라는 꼬리표를 붙입니다. 그런데 현실에서 파산이나 회생을 신청하는 개인들은 경험과 능력이 부족하여 경제적으로 난관에 봉착한 것일 뿐 도덕적 결함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생활에 필요한 돈을 벌지 못 했고, 이를 빚으로 메우다가 결국 감당할 수 없어서 이를 정리하려는 것뿐이기 때문입니다. 잘 알다시피 채권채무관계에는 이미 그 불이행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채무불이행의 위험은 종국에는 채권자가 지게 돼 있습니다. 그래서 돈을 빌려주는 쪽인 채권자가 빌려주기 전에 채무자의 사정을 잘 살펴야 합니다. 은행은 금융전문가이므로 당연히 자기책임으로 채무자의 상환능력을 잘 살펴서 빌려줘야 하고, 채무자의 상환능력을 심사할 능력이 없는 개인들은 아예 돈을 빌려주지 않는 것이 맞습니다. 그리고 어떤 경위로든 빚이 감당불가능한 상태가 되었다면 파산절차를 통해 정리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개인의 인권을 존중하는 길입니다. 과도한 빚을 평생 지라는 것은 그의 전 노동을 바쳐 부채를 갚으라는 것인데 이는 노예의 삶을 강요하는 것으로 문명사회가 취할 태도가 아닙니다. 물론 파산절차를 규율한 우리 채무자회생법에서도 신청기각, 파산 선고 후 비면책 시의 신분 및 자격제한, 면책불허가, 비면책채권 등 효력배제나 제한 규정, 사기파산죄 등 형사처벌 규정을 두어 제도 남용을 방지하고 있으므로 이 점에서도 도덕이 아니라 법률로써 규율하면 충분합니다.

한편으로 채무자가 감당할 수 없는 빚을 계속 안고 있다면 사회적으로도 문제가 심각합니다. 소비가 위축되고 성장률이 하락합니다. 우리나라 개인들이 진 가계부채가 기준에 따라 다르나 가계대출과 판매신용을 합친 가계신용을 기준으로도 1,500조 원이 이미 넘었고, 작년 우리나라 경제성장률(GDP)은 연 3%를 넘지 않았습니다. 수출주도형 국가라고 하지만 이미 내수 비중이 40% 이상 차지하는 나라에서 내수시장의 진작없이 경제가 활성화되기도 어렵습니다. 정부에서 아무리 소비를 강조해도 개인의 빚이 너무 많으면 별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 경제가 어려운 것이 과도한 부채 때문만은 아니지만 이것이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중요 요인인 것은 분명합니다. 한국은행과 금융위원회도 지난 수 년간 개인들이 안고 있는 가계부채 규모나 질이 심각하여 경제에도 큰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한편 감당할 수 없는 빚은 근로의욕을 상실하게 하여 결과적으로 사회 내 인적자본이 사장됩니다. 즉 살아 있어도 쓸모없는 사람으로 취급받는 것입니다. 이처럼 인적자본이 사장되면 이들을 부양하기 위한 사회보장비용도 증가하여 사회적 부담도 가중됩니다. 무엇보다 개인들의 과도한 빚을 방치하면 경제위기가 발생할 위험이 증가합니다. 나라 전체가 위험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를 거슬러 생각해 보면 채무자들이 근로의욕을 잃고 나앉아 있는 것보다는 재기를 위해 파산법정을 찾는 것은 사회적으로 칭찬받을 일입니다. 자기 자신의 인적자본을 살려 사회보장비용을 줄이고, 장차는 벌어들인 돈을 자기 생활에 필요한 곳에 소비함으로써 경제성장률 상승에도 기여하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경제위기 발생 위험을 줄이는 데도 한몫을 하는 셈입니다. 그러므로 채무자가 힘찬 발걸음으로 파산법정의 문을 두드린다면 이는 그가 아직 삶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경제적으로 부활하기 위해 첫걸음을 떼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에게 박수를 보내야 온당합니다.

백주선 변호사
●한국파산회생변호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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