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탐방] 이영표 해설위원 인터뷰

이번 호(號)부터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인물 또는 저명한 인사들을 취재하거나 시사성이 있는 사건을 중심으로 탐방 취재하여 게재하기로 한다. 그 시작으로 초등학교 4학년에 축구를 시작하여 26년간의 선수 생활을 마치고 지난해 11월에 은퇴한 이영표 선수를 인터뷰 하였다. 꾸준한 모습으로 끊임없이 본인의 지평을 넓혀가며 성장해 온 그가 우리 변호사들에게 귀감이 될 것으로 생각되어 화재의 인물탐방 첫 주인공으로 선정하였다. 어찌 보면 주어진 시간 안에 승리를 일궈내야 하는 축구선수와, 제 때 제대로 해내야 하는 변호사의 숙명과 닮아 있지 않을까 한다. 

o 반갑습니다. 은퇴 후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 KBS 축구해설을 하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2014 브라질 월드컵 해설준비를 하면서 방송에도 출연하며 바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o 오랫동안 축구를 해왔는데 축구장을 떠나니 소감이 어떤가요. 아쉽지 않았나요.
 

- 전혀 아쉽지 않았습니다. 7~8년 전부터 긴 시간 동안 은퇴를 준비해 왔으니까요. 은퇴식도 한 번 하기도 어려운데, 저는 밴쿠버에서, FC서울에서, 국가대표에서 세 번 은퇴식을 했죠. 이렇게 과분한 축하 속에서, 운동선수라면 누구나 원하는 모습으로 은퇴를 했으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o 은퇴 나이가 36세로 적지 않은데, 그 나이까지 선수생활을 할 수 있었던 비결이 있다면. 
 

- 특별한 비결이라는 게 없고, 운동하고 집에 가고, 운동하고 집에 가고. 그거 외에 다른 것은 안 하고 축구만 하니까 특별한 문제가 없었어요. 운동하기 위해서 일어나고, 운동하기 위해서 먹고, 자고, 쉬었기 때문에 체력적인 부분에서도 경기를 뛰기에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사실 은퇴할 때도 2년 정도 운동을 더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다 보면 선수 은퇴 후 다음 인생에 대한 준비가 늦어질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2년 일찍 은퇴를 한 거거든요. 

o 학창시절 10년 동안 매일 개인 훈련을 하고도 오랜 세월 무명으로 지내다가 대학 졸업반 때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단 것으로 아는데, 피나는 노력을 해도 안 될 때는 어떤 생각을 했고, 어떻게 이겨냈나요.
 

- 축구를 하면서 성장한다는 느낌을 받지 못할 때가 괴롭고 힘듭니다. 시간이 지나면 좋아져야 하는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안 좋아지는 때가 있거든요. 그때는 ‘버텨내자. 포기만 하지 말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연습을 쉬지 않는 거죠. 그렇게 하다 보면 어느새 극복이 되더라구요. 좌절감, 실패감, 나 자신에 대한 실망감 없이 성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에 ‘고통스럽고 외로운 가운데 있을 때 바로 성공을 향해서 제대로 가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이겨냈죠. 

o 팀을 옮기거나 은퇴 여부를 결정할 때 등 어려운 선택의 연속인 상황에서 어떤 기준으로 길을 선택하였나요.
 

- 기본적인 마음가짐은 이랬죠. 사람들은 보통 오른쪽을 선택하면 오른쪽에 대한 결과, 왼쪽을 선택하면 왼쪽에 대한 결과가 나올 거라 믿게 되죠. 그런데 저는 오른쪽과 왼쪽의 결과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오른쪽과 왼쪽의 갈림길이 생겼을 때 좋은 길을 선택하려는 게 아니라, ‘굉장히 고민을 하고 선택한 길이라면 그 길이 최고다.’라고 생각하고 나아갑니다. 어떤 때는 둘 중의 어느 것도 선택하지 못할 때가 있어요. 그럴 때는 상황이 선택하게 만듭니다. 상황대로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대로 놔두는 거죠. 스카우트 제의를 한 팀들이 ‘올지 안올지 몇 시까지 선택해라.’ 이런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들이 필요하면 다시 오겠지. 안 오면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라고 생각하면서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았어요. 그리고 어떤 것을 선택할 때 판단력을 흐리게 하는 욕심을 경계합니다. 

o 많은 구단으로 이적하면서 다양한 지도자들을 접해 보았을 것 같은데 지도자의 기본 덕목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 지도자는 진심으로 조직과 팀을 위해 정직하게 일하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도자가 자기 자신을 위해서 일하는지, 정말 팀을 위해서 일하는지 팔로워들은 다 알아요. 그런데 리더들은 자신이 팀원들을 속일 수 있다는 오류에 빠지기 쉽죠. 리더로서 정직하게 일하면 팔로워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어요. 팔로워들은 리더 한 사람한테 평가받으면 되지만, 리더는 팔로워 전부한테 평가를 받아요. 리더가 그걸 의식하지 못하면 좋은 리더가 될 수 없죠. 말하는 것, 행동하는 것, 결정적인 순간에 반응하는 것을 보면 ‘이 사람이 어느 정도 레벨의 지도자구나’ 하고 딱 나오죠. 또 좋은 리더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좋은 팔로워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아무리 리딩을 잘 해도 따라오지 못하는 팔로워도 있거든요. 팔로워도 언젠가는 리더가 될 텐데, 좋은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좋은 팔로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o 그러면 이 기준에 부합하는 축구 지도자를 굳이 한 사람 뽑으라면 누구이며, 그 이유는.
 

- 저한테는 히딩크 감독님이 그랬습니다. 제가 히딩크 감독님에게 감동받은 것은, 다른 사람한테 중요하지 않지만, 어떤 사람한테는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히딩크 감독님은 그것을 잘 간파하고 존중해 줬어요. 어떤 사람이 자기 욕심 때문에 말도 안 되게 요구하면 단호하게 잘랐지만, ‘저 사람한테는 저 것이 중요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때는 그것을 받아주더라고요. 리더가 팔로워들에게 무조건 강하게 ‘따라와’ 아니면 잘라내는 것이 아니라 져 줄 때 져 줄 수 있는 리더로서의 모습에 많이 감동했죠. 

 o 축구인생에서 자신만의 철학이 있었다면.
 

- 축구에 한정해서만 아니라 삶에서는, 저도 잘 지키진 못하지만, ‘정직’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축구선수로서 정직은 자기가 해야 할 본분을 지키는 거죠. 경기장 안에서도 최선을 다해야 하지만, 선수라면 경기 전에 경기장 밖에서 최선을 다해서 연습하고, 해야 할 일들을 해야 하고,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을 하지 않는 거예요. 술·담배를 절제하고, 잘 때 일찍 자고, 훈련을 할 때 최선을 다하면서 항상 경기를 준비하고, 패배했을 때 그 패배를 받아들이고, 승리했을 때 겸손해야 하고, 이게 공식처럼 나와야 된다고 생각해요. 오픈된 공간에서 정직하기는 쉬워요. 그런데 자기만의 공간에서의 정직이 진짜 정직이죠. 

o 오랜 시간 치열한 경쟁과 성적의 압박감 속에서 축구 자체를 즐기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이는데, 그래도 가장 재미있게 축구를 한 시기와 그 이유는.
 

- 축구가 제일 재미있었을 때는 돈 안 받고 축구할 때가 제일 재미있었죠. 축구 자체를 즐길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돈을 받고 축구를 한 뒤부터는 축구가 즐기는 데에서 이기는 데로 목적이 넘어가니까, 그리고 열심히 준비해서 경기장에서 열심히 뛰는 것은 제가 할 수 있는데 이기는 것은 내 능력 밖이니까 스트레스를 받게 되더라고요. 저에게 돈을 주는 목적은 이기라는 거였거든요. 제가 영국에 가서 프리미어 리그에서 뛰는데, 제가 꿈을 이뤘잖아요. 그런데 세계 최고의 리그에서 최고의 선수들과 뛰는데, 유니폼 스폰서를 보니깐 도박회사 유니폼 스폰서인거예요. 그때 제가 ‘이 재미있는 축구를 하러 와서 도박회사 광고를 하려고 지금 이렇게 축구를 하고 있나’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하더라고요. 이런 데서 오는 괴리감 같은 게 있었죠. 

o 성공했다고 느꼈을 때가 언제인가요.
 

- 성공했다고 느낀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내가 꿈을 이루었다. 국가대표가 되어서 너무 좋다.’는 느낌은 있었지만 성공했다고 느낀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저는 제가 축구를 더 잘하고 재미있게 하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 더 경험하고 싶었고, 그러다 보니 제가 네덜란드도 가고, 유럽 더 큰 클럽에서 뛰는 거였지, 성공을 위해서 뛰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2002년 월드컵이 끝나고 제 마음을 다잡았던 말이 있어요. ‘선 줄로 생각한 자 넘어질까 조심하라.’라는 성경구절이었는데, ‘내가 서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내가 유명해졌다고, 내가 성공했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내가 무너지고 넘어질 일이 없겠구나.’ 하고 늘 생각하다 보니 제 마음을 지키게 됐죠. 

o 2002년 월드컵 4강 진출보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16강 진출을 더 크게 평가하던 인터뷰 기사를 보았는데,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 2002 월드컵은 저에게 첫 월드컵이고 어렸기 때문에 열심히만 했어요. 그리고 2002 월드컵은 홈에서 했기 때문에 운이 좋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죠. 그런데 2010 남아공 월드컵은 실력으로 간 거니까 ‘홈그라운드다. 심판이 어땠다.’ 이런 말 자체가 나오지 않았잖아요. 또 한국 축구의 어웨이 경기 16강은 최초였고, 저는 그것이 2000년대의 저를 포함한 우리 축구세대에게 주어진 마지막 임무라고 생각했어요. ‘우리 세대에 16강을 가 놔야, 그 다음 세대가 이 계단을 밟고 더 높은 곳으로 갈 수 있겠다. 그래서 어웨이 16강을 반드시 이루어야 한다.’ 그런 마음으로 월드컵을 준비했습니다. 그렇다 보니 남아공 월드컵이 끝나고 너무 기뻐서 눈물이 나더라고요. ‘이제는 대표팀을 은퇴해도 되겠다. 내가 한국축구에서 할 일을 다 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걸 누가 저에게 요구하지도 않았어요. 제 스스로 묻는 질문이었고, 미션이었던 것 같아요.

o 제일 기억에 남는 경기는.
 

- 저 때문에 진 경기가 제일 기억에 남죠. 개인운동이면 나만 지면 괜찮은데, 축구는 단체운동이어서 내가 지면 동료들도 다 지는 거잖아요. 그런데 나 때문에 졌다고 생각해 보세요. 상당히 힘들죠. 월드컵 4강 가는 것처럼 이긴 거야 나 때문에 이겼든, 동료 때문에 이겼든 기쁜 일이니까 괜찮아요. 2002년도 아시안컵 때 4강전에서 제가 페널티킥을 못 넣어서 우리가 결승에 못 가고 동메달을 땄던 게 기억이 나네요.

o 공인으로서 사생활이 노출되어 있는 트위터에 의견을 올리는 것이 부담스러울 법도 한데, 종종 트위터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밝히고 있는데 남다른 이유가 있나요.
 

- 운동하는 친구들도 그렇고, 사람들이 노력해도 힘들다는 등의 고민을 하니까 처음에는 한 두 개씩 댓글을 달아 주다가 일일이 못 하니까 트위터로 남기기 시작했죠. 제가 갖고 있는 고민, 어렸을 때의 노력, 꿈에 관해서, 정직에 관해서 이런 것들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어요. 

o 앞으로 계획은.
 

- 현재로서는 특별하게 정한 계획은 없어요. 당분간은 캐나다에서 몇 년 있으면서 축구에 대해 더 배우려고 합니다.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것 자체가 재미있습니다. 그렇게 더 안 다음에 제가할 수 있는 어떤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o 우리 변호사님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 세상에 직업이 참 다양한데, 변호사님들은 누군가를 변호해 주고, 대신 말해 주고, 많은 사람들을 돕는 뜻있는 직업이잖아요. 그런 점에 사명감을 갖고 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흔하면서도 ‘저게 무슨 말이지?’ 이해가 안 되었는데, ‘아, 나도 얼마든지 저 사람처럼 죄를 지을 수 있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어요. 그 다음부터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는 게 아니다.’라는 말이 조금은 이해가 되더라고요. 변호사님들이 그런 마음으로 일 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글 / 인터뷰 : 김진수 본보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