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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난 무죄판결(無罪判決)

저의 변호사 생활은 2015년 작은 법률사무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제 막 변호사시험에 합격한 기쁨과 새로운 출발에서 느낀 설렘도 잠시, 실무에서 만난 사건들은 어느 것 하나 제가 그동안 교과서를 통해 갈고닦아 온 법률지식만으로는 좀처럼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소송실무에 대한 감각이 생기기는커녕 사건의 변론 방향조차 갈피를 잡지 못하던 무렵,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하고 외국계 기업에 취업을 준비하던 23세 여자 의뢰인을 만나게 됐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성매매 업소에서 일하다가 단속을 당했는데, ‘공무집행방해죄’로 경찰조사를 받게 되었다며 자초지종을 털어놨으나, 저는 사실관계를 듣는 내내 도대체 왜 그녀가 공무집행방해죄로 조사를 받게 된 것인지 전혀 감을 잡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첫 상담을 한 지 며칠 되지 않아 그녀는 손에 공소장을 쥐고 다시 사무실에 찾아왔고, 그 공소장에 적힌 그녀의 죄책은 놀랍게도 성매매 알선 ‘방조(傍助)’였습니다.

「성매매알선등행위의처벌에관한법률」은 주로 성매매를 알선한 ‘업주(業主)’를 처벌하기 위해 제정한 법입니다. 특히 성매도자와 성매수자를 별도로 처벌하는 규정이 따로 마련되어 있기 때문에 단지 직접 성매매의 당사자가 되었다고 하여 그 자체로 업주의 성매매 알선행위에 대해 형법총칙 상 공범(共犯)규정을 적용하여 성매매알선죄의 공범으로 처벌하지는 않으며, 검찰실무에서도 업주에게는 엄격한 죄책(罪責)을 묻더라도 성매매의 당사자들에게는 기소유예 등을 통해 개선(改善)의 기회를 주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런데 공소장을 통해 그녀의 사건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결코 경미한 사안이 아니었습니다. 본래 그녀는 성매매 현장 단속에서부터 임의동행을 통해 조사를 받는 과정까지 진솔하게 자신의 잘못을 모두 털어놓았고, 그 성매매 사안은 이미 기소유예로 처분종결 되었습니다. 그런데 연달아 정식 기소된 이 사건에서는 위 임의동행 당시에 그녀가 광역수사대 조사실에서 했던 행동을 엄격하게 문제 삼고 있었습니다. 즉 그녀는 임의동행 조사 당시 담당수사관 책상 위에 놓인 ‘성매매 집중단속 계획’이 담긴 공문(公文)을 휴대폰으로 촬영했고, 그 사진을 당시 업주 및 함께 일하던 동료에게 전송했습니다. 이후 그 단속계획 공문 사진은 성매매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퍼져 나아갔고, 별개의 성매매 알선 사건으로 체포된 다른 업주의 휴대폰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어디선가 단속계획 공문이 유출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 광역수사대는 당연히 발칵 뒤집혔고, 누구의 손에서 유출됐는지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그녀가 공문을 촬영하던 모습과 이를 전송하던 모습을 CCTV에서 발견해내면서 별건 수사를 시작했던 것입니다.

경찰은 이러한 그녀의 행동을 ‘공무집행방해죄’라고 파악했으나, 검찰은 아무래도 공문을 촬영한 행위를「폭행·협박·위계」라고 평가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는지 성매매 알선 ‘방조’라고 기소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증거기록을 낱낱이 살펴보아도 도대체 그녀가 ‘무엇을’ 방조했다는 것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고, 그녀가 방조했다는 ‘정범의 실행행위’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파악하기도 어려웠습니다. 한편 저와 상담하기 전에 그녀가 홀로 경찰서에서 진술한 피의자 신문조서를 읽어보니, 도대체 왜 그녀가 그 단속 공문을 굳이 촬영했고, 이를 업주 및 함께 일했던 동료에게 각각 전송했었는지, 범행의 동기(動機)를 상세히 알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난생처음 가본 경찰서에서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에 누구와라도 소통하고 싶었으며, 업주에게는 ‘저 이제 일 그만둘래요.’라는 뜻으로, 동료에게는 ‘너도 일 그만두는 게 좋겠어.’라는 뜻으로 공문 사진을 찍어 전송했던 것」이라고 매우 상세하고 일관된 진술을 하면서, 피해를 끼친 경찰관님들께 죄송하다며 선처를 호소했습니다. 증거기록을 통해 사건을 파악한 저는 그녀에게 무죄를 주장해 보자고 제안했으나, 그녀는 잘못한 주제에 괘씸하게 보이고 싶지 않다며 거절했고, 자기는 단지 판사님께 선처(善處)를 바랄 뿐이라 했습니다.

오랜 시간 어렵사리 그녀를 설득한 끝에 결국 제 뜻에 따르겠다는 확답을 받아냈고, 저는 ① 피고인은 정범(正犯)의 실행을 방조한다는 ‘방조(傍助)의 고의’가 전혀 없었으며, ② 종범(從犯)의 범죄는 정범의 범죄에 종속하여 성립하는 것인데, 피고인이 공문 사진을 전송할 당시 그 업주는 이미 단속을 당하여 업소가 폐쇄된 상황이었으며, 그 업주 및 다른 동료가 새롭게 성매매 알선 및 성매매 행위를 했다는 증거도 전혀 없다는 점을 들어 무죄를 주장했습니다.

돌이켜보면 당시 저의 변론은 형법 교과서를 읽는 수준이었기 때문에, 저에게 조언해 주셨던 주변 선배님들께서도 괜히 무리하는 것 아니냐며 다그치기도 하셨으며, 당연히 공판검사님으로부터 집중포화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제1심 판사님은 물론 항소심 재판부에서는 감사하게도 제 주장을 그대로 인용해 주셔서, 저는 처음으로 무죄판결을 만나게 됐습니다.

그녀는 저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면서, 드디어 부모님을 뵈러 간다고 했습니다. 사건이 진행되는 동안 부모님께서 이 사건을 아시게 될까 조마조마해서 몇 달째 얼굴도 비추지 못했었다면서. 그리고 저에게 다짐하듯 말했습니다. 자신이 꿈꿔왔던 외국계 기업에 취직은 안 되더라도, 앞으로는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든 떳떳한 모습으로 살아가겠다고....

김윤호 변호사
●법무법인 라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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