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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帝國에서 민국民國으로- 혁명은 아직 성공하지 않았다

1. 경술년 추팔월 이십구일은 / 조국의 운명이
떠난 날이니 가슴을 치면서 통곡하여라 /
갈수록 종 설움 더욱 아프다
2. 조상의 피로써 지킨 옛집은 / 백주에 남에게
빼앗기고서 처량히 사방에 표랑하노니 /
눈물을 뿌려서 조상하리라
3. 어디를 가든지 세상 사람은 / 우리를 가리켜
망국노라네 천고에 치욕이 예서 더할까 /
후손을 위하여 눈물 뿌려라
4. 이제는 꿈에서 깨어날 때니 / 아픔과 슬픔을
항상 머금고 복수의 총칼을 굳게 잡고서 /
지옥의 쇠문을 깨뜰지어다


이 노래는 1910년 8월 29일 한일강제병합을 당한 당시 백성들이 부른 ‘국치추념가’(國恥追念歌)이다. “나가자 동무들아 어깨를 걸고....”로 시작하는 노래로 한국에 알려진 스코틀랜드 민요인 <Comin’ through the rye>에 가사를 붙인 것으로 가사를 보면 당시 민중들의 심정이 잘 나타나 있다. 백주에 나라를 빼앗겨 떠도는 신세가 치욕스럽지만 기필코 총칼을 들고 독립하겠다는 각오가 나타나 있다. 국치추념가를 포함해 당시 노래들을 보면 주로 등장하는 것이 꿈에서 깨어나자는 것과 지옥의 쇠문을 부수자는 표현이 많다. 아마도 식민지를 지옥으로 비유한 것인데 기독교의 영향인 듯하다. 또한 꿈에서 깨어나자는 자각의식도 눈에 띈다. 우리가 ‘동방의 주자(朱子)’라는 문화우월의식만 가지고는 일본 제국주의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이다.

국치를 당한 지 8년 6개월 만에 드디어 민중적 자각이 시작된 것이다. 물론 1910년 국치를 전후하여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 의병운동과 신흥무관학교를 비롯한 망명지에서의 투쟁도 없지는 않았지만 3.1혁명은 그 모든 것을 능가하는 역사적 사건인 것이다. 조선시대 부터 현재까지 가장 큰 역사적 사건을 꼽으라면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은 당연히 3.1혁명을 꼽는다. 왜 그런가? 즉 “짐이 곧 국가”(프랑스 루이 14세)였던 시대에서 “국민이 국가”(영화 <변호인>에서 송강호가 외친 말)인 시대를 선포한 것이다. 따라서 3.1혁명은 한국판 프랑스대혁명인 것이다. 3.1혁명은 “대한독립 만세”로 표현되는 반제 운동의 성격에 더해 황제의 나라(帝國)에서 국민의 나라(民國)를 선포한 역사의 전환점이다. 염상섭은 소설 <만세전>(萬歲前)에서 3.1혁명 전의 우리현실은 무덤이라고 비유했다. 즉 3.1혁명을 통해 민중들이 깨어나 무덤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현행 대한민국 헌법 제1조인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는 대한민국 임시헌장(1919.4.11.)에서 시작해 대한민국 임시헌법(1919.9.11.), 1925.4.7. 개정 헌법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지켜진 원칙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1919.4.11.)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한다.” (1919.9.11.)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1925.4.7.)


3.1혁명은 독립운동의 최종 목표와 지향을 민주공화제로 명확히 선언함으로써 그동안 복벽주의, 보황주의 독립운동 노선을 극복하였다. 복벽주의, 보황주의는 한마디로 말하면 일제로부터 나라를 되찾아 원래 주인인 전주 이씨에게 돌려주자는 것이다. 백범 김구도 처음에는 ‘국모’(國母) 명성황후를 살해한 원수를 갚기 위해 일본인 쓰치다(土田)를 격살할 만큼 복벽주의자였지만 나중에는 민주공화제를 표방한 임시정부의 주석이 되었다.

3.1혁명 직후 상하이에 모여 “대한으로 망했으니 대한으로 흥하자”라는 신석우 선생의 제안으로 나라 이름을 대한제국에서 대한민국으로 정했던 독립운동가들은 이미 1911년 신해혁명을 보고 그들도 그러한 꿈을 꾸었던 것이다.

“혁명의 운동은 곧 오천년 동양 민족의 자유를 처음으로 부르는 날이라. 의례히 기쁜 마음으로 이것을 환영” ‘청국(신해-필자 주) 혁명에 대하여’
<신한민보>(1911.10.18.)


1911년 신해혁명, 1917년 러시아혁명, 1918년 독일혁명 등 황제를 부정하고 민의 나라를 선포한 여러나라들을 보고 용기를 얻은 독립운동가들은 1917년 7월 저 유명한 <대동단결선언>에서 이렇게 말하면서 기개를 과시한다.

“융희 황제가 삼보(三寶, 국가의 3요소인 토지, 인민, 정치 – 필자 주)를 포기한 8월 29일은 즉 우리 동지가 삼보를 계승한 8월 29일이니, 그동안에 한순간도 숨을 멈춘 적이 없음이라. 우리 동지는 완전한 상속자니 저 황제권 소멸의 때가 곧 민권 발생의 때요, 구한국 최후의 날은 곧 신한국 최초의 날이다.”

그리고 드디어 고종 장례식을 맞아 3.1혁명을 시작한 것이다. 비록 프랑스처럼 황제를 단두대에 세운 것은 아니지만 고종 황제의 장례식 날 봉건주의와의 결별을 선언한 것이다.

황포군관학교 입구에서는 중국 혁명의 아버지 쑨원의 유언이 적혀 있다. “革命尚未成功 同志仍须努力”(혁명은 아직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니 동지들은 마땅히 계속 노력해야 한다.) 100년 전 독립투사들은 ‘2천만 국민이 모두 황제’(안창호)가 되는 나라를 꿈꾸었다. 그 꿈의 완전한 실현을 위해 오늘도 우리는 마땅히 계속 노력해야 한다.

방학진 기획실장
●민족문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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