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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너희 옆집 살아

나 너희 옆집 살아

난 너의 옆집에 살아 | 소년이 되어서도 이사를 가지 않는 난 너의 옆집 살아
| 너의 집에 신문이 쌓이면 복도를 천천히 걷고 | 베란다에 서서 빈 새장을
바라보며 | 새장을 허물고 사라진 십자매를 기다리는 난 | 너의 옆집 살아 |
우린 종종 같은 버튼에 손가락을 올려놓고 | 같은 소독을 하고 같은 고지서를
받고 같은 택배를 찾으며 || 안개가 가로등을 끄며 사라지는 아침 | 식탁에 앉아
처음으로 전등을 켜는 나는 너의 옆집에 살아 | 이사를 오며 잃어버린 스웨터를
찾는 너의 | 냉장고 문을 열어 두고 물을 마시는 너의 옆집 살아 | 내가 옆집에
사는지 모르는 너의 | 불가사리처럼 움직이는 별이 필요한 너의 옆집 살아 |
옆집엔 노래하는 영웅이 있고 자전거를 복도에 세워 두는 소년이 있고 국경일엔
태극기를 올리는 착한 어린이가 있어 || 십자매가 날개를 접고 돌아와 다시 알을
품을 수 있도록 | 알에 묻은 깃털을 떼어 내지 않는 | 비가 오는 날에도 창문을
열어 두는 나는 너의 옆집에 살아 | 복도의 끝에서 더 긴 복도를 만들며 | 가끔
난간 위에서 흔들리는 코알라처럼 | 난 너의 옆집 살아 | 바다의 지붕을 나무에
새기며 | 커튼을 걷으면 밀려오는 나쁜 나뭇잎을 먹어 치우며 | 같은 난간에
매달려 예민한 기류에도 함께 흔들리는 난 | 난 너희 옆집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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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오를 수 있는 만큼

누구에게나 친구는 특별한 존재겠지만, 내게 친구는 가족이며 또 다른 분신이다. 선천적 난치병을 지니고 살아온 탓에 많은 제약 속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행운이었던 것은, 어린 내겐 과분할 정도로 의젓한 친구들이 있었다. 그들은 가방을 대신 들어주고, 숨이 찬 내게 등을 내어 주었다. 덕분에 계단과 오르막을 올랐고, 내 육체만으로는 갈 수 없는 곳을 오르기도 했다.

2016년, 의료인이 된 친구, 소방관이 된 친구를 포함한 7명의 친구들은,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수액과 응급 처치를 할 의료 용품, 산소통 등을 챙겨 알루미늄 지게에 나를 태우고 산에 올랐다.

오래전, 친구에게 한 번도 산에 올라가보지 못했다는 말을 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산 정상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 맘이 이상하게 슬퍼진다는 이야기를 했다. 친구는 그 말을 잊지 않고 오래 간직했다. 시간이 지나 그 친구는 의료인이 되었고, 어느 날 조심스럽게 산에 오르자는 이야기를 꺼냈다.

처음 친구에게 산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날, 친구는 곧바로 나를 업고 산에 오르고 싶었다고 했다. 하지만 혹시 산에 오르다 사고가 나던가, 내가 아플까 걱정이 돼 쉽게 그러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근데 이제 자신이 의료인이 되었으니 담당 의사에게 허락을 받고 준비할 의료 용품을 챙겨 산에 오르자 했다. 만약의 일에 충분히 대비하여 함께 오르자 했다.

담당 의사에게 허락을 맡고, 필요한 장비들을 준비했다. 친구들은 팀을 꾸려 나를 앉힐 알루미늄 지게를 손보고, 점검차 산을 미리 오르며 등산로를 체크했다. 친구들은 한두 달, 나를 위한 계획을 짰다.

꼼꼼하게 준비를 하여 2016년 시월, 태어나 처음으로 산을 올랐다. 정확히는 친구들에게 업혀 산을 느꼈다. 친구들이 발을 디딜 때마다 그들의 등을 통해 산을 느꼈다. 산소통을 드는 친구, 미리 앞으로 가며 길을 점검하는 친구, 번갈아가며 지게로 나를 업은 친구들, 뒤에서 받쳐 주는 친구, 그 표정을 담아 주던 사진가 친구. 사람들에겐 그저 서울의 완만한 산이었겠지만 내겐 그 어떤 산보다 아름답고 높은 산이었다.

산을 오르기 전 우리의 목표는 정상이 아니었다. 우린 ‘함께’, 우리가 ‘오를 수 있는 만큼’만 오르자 했다. 그것이 우리가 생각한 정상이었다. 생각해보면 친구들과의 시간이 그러했다. ‘함께’, ‘할 수 있는 만큼’.

많은 불가능 속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행운처럼 친구들을 만나 많은 풍경을 보았다. 그런 친구들을 생각하며 쓴 시가 이 시다. 함께 응급실에 가고, 보조 침대에 누워 나를 지켜주던 친구들을 나의 몸은 기억한다. 그 힘으로 여태껏 살아 있다.

시간이 흘러 친구들은 직업을 갖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가정을 꾸리기도 했다. 각자의 호칭에 걸맞은 삶을 사느라 예전만큼 자주 만나지는 못해도 내게 그들의 위치는 언제나 ‘옆집’이다.

나의 삶이 온전히 나의 것이 아님을 누누이 이야기한다. 친구들은 늘 헌신적으로 나를 대했다. 나보다 나를 더 위하는 친구들. 그들에게 이제는 먼저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 이사를 가지 않는 아름다운 이웃들에게, 굳건하고 아름다운 친구들에게. 벨을 누르면 인사할 수 있는 그런 거리에 내가 있다고, 나 또한 너희 옆집에 산다고.

성동혁 시인
●2011년《세계의 문학》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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