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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이용 계좌명의인의 임의인출행위에 대한 형사적 제재대법원 2018. 7. 19. 선고 2017도17494 전원합의체 판결

01 사안의 쟁점

대상판결은, 피고인들이 보이스피싱 조직원에게 자기 명의로 된 대포통장계좌와 접근매체를 양도한 후 보이스피싱 사기피해자가 현금을 피고인 명의의 계좌로 송금·이체하자 피고인들이 그 계좌에 송금·이체된 돈을 임의로 인출하여 사용한 경우, 횡령죄가 성립하는지 여부와 그 피해자가 누구인지가 쟁점으로 된 사안이다.
대법원은 기존에 계좌명의인이 접근매체 양수인의 사기행위에 공모 또는 방조한 경우에는 피해자와 사이에 어떤 위탁관계가 존재한다고 볼 수 없고, 송금된 돈을 인출하더라도 새로운 법익침해가 없다는 이유로 사기피해자에 대한 횡령죄를 구성하지 않는다고 한바 있다(대법원 2017. 5. 31. 선고 2017도3045 판결 참조). 대상판결은 계좌명의인에게 사기행위에 대한 인식이 없어 공모관계가 인정되지 않는 경우에는 송금된 돈에 대한 소유자 및 소유자와 보관자 사이의 위탁관계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에 따라 견해가 나뉘었다.

02 판결 요지

대상판결의 다수의견, 별개의견, 반대의견의 견해를 쟁점별로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03 판례 평석

가. 횡령죄에서 위탁관계의 성립근거
횡령죄는 그 행위 주체가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에 한정되는 진정신분범이다. 판례는 여기에서 보관이란 위탁관계에 의하여 재물을 점유하는 것을 뜻하므로 횡령죄가 성립하기 위하여는 그 재물의 보관자와 재물의 소유자 사이에 위탁관계가 있어야 하는데, 그 위탁관계는 계약에 의하여 발생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이에 한하지 않고 사무관리와 같은 법률의 규정, 관습이나 조리 또는 신의성실의 원칙에 의해서도 발생할 수 있다고 한다(대법원 1985. 9. 10. 선고 84도2644판결, 대법원 2003. 7. 11. 선고 2003도2077 판결 등 참조).

대법원은 ‘착오송금 사안’ 즉, 송금인의 착오로 인하여 잘못 이체된 돈을 예금주가 임의로 인출하여 소비한 사안에서 “송금·이체의 원인이 되는 법률관계가 존재하지 않음에도 계좌이체에 의하여 취득한 예금채권 상당의 돈은 송금의뢰인에게 반환하여야 할 성격의 것이므로, 계좌명의인은 그와 같이 송금·이체된 돈에 대하여 송금의뢰인을 위하여 보관하는 지위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는 이유로 예금주와 송금인과의 사이에 신의칙상 위탁관계를 인정하여 왔고, 이는 송금인과 피고인 사이에 별다른 거래관계가 없더라도 마찬가지라고 한다(대법원 2010. 12. 9. 선고 2010도891 판결 등 참조).

나. 보이스피싱 사기 피해금에 대한 위탁관계
다수의견은 앞서 본 착오송금 법리를 보이스피싱 사기 사안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보아, 계좌
명의인이 송금된 돈이 사기피해금인지를 알지 못하고 인출한 경우에도 계좌명의인에게 송금인(사기피해자)을 위한 보관자의 지위를 인정하였다. 다수 의견의 보충의견은 송금·이체를 하게된 구체적인 경위에 따라 신의칙상 보관의무가 달라진다고 볼 수 없고, 그 이유나 경위를 알아야만 의무이행이 가능한 것도 아니라는 점에서 착오송금 사안이 이 사건에도 적용될 수 있는 근거를 밝히고 있다.

이에 반해 별개의견과 반대의견은 접근매체 양수인과 계좌명의인 사이에 계약상 위탁관계가
성립하는 이상 그 관계를 우선 고려하여야 하고, 계좌명의인에게 부당이득 반환의무에 대한 인식이 없음에도 착오송금 법리를 들어 피해자에 대한 횡령죄를 인정하는 것은 당사자의 고의에 반할 뿐 아니라 횡령죄의 위탁관계를 지나치게 넓힐 위험이 있다는 이유에서 본 사안에 착오송금 법리를 적용할 수 없다고 한다.

별개의견은 계좌명의인이 접근매체 양수인의 보이스피싱 범행을 알지 못한 이상 접근매체 양
도에 관한 약정이 무효라거나 돈의 보관이 불법원인급여에 해당한다고 볼 뚜렷한 근거가 없으므로, 계좌명의인이 그 계좌에 입금된 돈을 인출하면 접근매체 양수인에 대한 횡령죄가 성립한다고 보았다. 반면, 반대의견은 접근매체를 양도하여 사용하도록 한 행위가 보이스피싱 사기범행의 실행행위에 해당하는 것이어서 횡령죄로 보호할 만한 가치 있는 신임관계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이유로 접근매체 양수인에 대한 횡령죄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이 부분은 다수의견의 입장과 같다.

다수의견의 논리는, 별개의견과 반대의견이 지적하는 바와 같이, 계좌명의인에게 접근매체양수인의 사기행위, 즉 핵심적인 불법요소에 대한 인식이 없었음에도 사기피해자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여 형법상 책임주의에 반하고,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자로부터 돈이 송금·이체된 경우에까지 착오송금의 법리를 확장하는 것은 횡령죄에 있어서 위탁관계를 지나치게 넓힐 위험이 있다. 다만 다수의견은 횡령죄에 있어 위탁관계는 형사법적으로 보호할 필요가 있는지 규범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고 보아 보관자의 지위를 엄격하게 해석하는 입장을 취함으로써 횡령죄의 위탁관계가 확장되는 것을 제한하고 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다. 검토의견
개인적으로는 별개의견과 반대의견과 같이, 보이스피싱 사기의 경우 계좌명의인과 접근매체 양수인 사이의 내부적 관계에서는 계좌에 대한 실질적인 지배권한이 접근매체 양수인에게 있다는 점에서 착오송금사안과 달리 보아야 하지 않는가 생각한다.
차명계좌를 이용한 보이스피싱 사기 범죄는 계좌명의인이 접근매체 양수인에게 그 계좌를 사용하게 하되 자신은 그 계좌에 입금된 돈을 인출하지 않기로 하고, 접근매체 양수인이 피해금을 현금화하여 범행을 완성한다는 점에 특징이 있다. 즉, 계좌에 송금·이체된 돈의 실질적 지배권한은 접근매체 양수인에게 유보되어 있다. 이처럼 보이스피싱 사건에서 계좌명의인은 예금주로서 송금된 돈에 대하여 사실상·법률상 처분권한을 갖고 있지만 실질적 지배권한은 접근매체 양수인에게 있다는 점에서, 계좌에 대한 지배권한의 분리가 일어나지 않는 착오송금 사안과 차이가 있다. 이러한 점에서 보이스피싱 사기범행을 알지 못한 계좌명의인은 차명계좌거래에서 수탁자인 계좌명의인과 유사한 지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계좌명의인이 접근매체 양수인의 사기범행을 알지 못한 경우에는 당사자의 관계를 차명계좌거래와 유사하게 취급할 수 있고, 계좌명의인의 임의인출행위는 접근매체 양수인에 대한 횡령죄가 성립한다고 생각한다.

라. 대상판결의 시사점
대상판결의 다수의견은 계좌명의인과 접근매체 양수인사이의 보관약정은 횡령죄로 보호할 만한 가치가 있는 위탁관계가 아니므로 접근매체 양수인에 대한 횡령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보았다. 이러한 견해는 중간생략 명의신탁 약정을 형사법적으로 보호할 가치가 없다고 보아 수탁자의 처분행위를 횡령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본 판례의 입장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있다(대법원 2016. 5. 19. 선고 2014도6992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이와 같은 판례의 흐름은 횡령죄나 배임죄와 같이 신임관계를 본질적 요소로 하는 재산범죄실무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판례의 입장에 의하면 보호가치가 있는 위탁관계인지 여부를 규범적 기준에서 판단하여야 하는데, 여기에는 ‘보호가치’에 관한 가치형량이 작용하게 된다. 따라서 형사변론 준비과정에서는, 개별사안에서 ‘보호가치가 있는 위탁관계’인지 여부에 관하여 보다 심도있는 검토가 필요할 것으로 사료된다.

김은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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