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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승화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원장 인터뷰

오래 전 일이지만 원장님께서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판사로서 처음 법조인으로 일을 시작하였는데, 판사를 선택하신 이유가 무엇인가요? 그리고 판사로 재직하다가 미국으로 유학을 가게 된 계기가 있으셨나요?
법조인 초년생으로서 수련을 받기에는 판사가 제일 적합하다고 생각했고, 그때는 선택의 폭도 넓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판사 업무가 주로 민·형사 일반사건에 국한되면서 판사의 역할에 “가치 형성”적인 부분이 적다고 느꼈고, 계속 판사를 하면 그냥 제너럴리스트 법률가가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판사를 하면서 서울대 대학원에서 독점금지법을 전공하고 있었는데, 이 분야 공부를 제대로 더 해 보고 싶었고, 마침 풀브라이트(Fulbright) 장학금을 받게 되어 유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교수가 된 이후에도 WTO 등 국제통상 분야에서 전 세계적으로 활약하셨고, 국제통상뿐만 아니라 국제중재 분야에서도 전문가로서 활약하셨는데, 그 경험들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듣고 싶습니다.
판사를 사직한 후 재판 업무는 내 인생에서 끝났다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하버드에서 국제통상법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1995년 모교의 교수가 된 다음에도 WTO 분쟁해결 패널리스트(1심 재판관)로 일하면서 판사와 비슷한 역할을 다시 하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소장(少壯)교수로서 국제저널에 논문들을 열심히 기고하자, 운이 좋게도 미국 유수의 로스쿨에서 방문교수로서 강의를 할 기회가 여러 번 생겼습니다.

2000년도 초반에는 우리나라 국제중재 분야의 시장이 겨우 형성되기 시작하고 있었는데, 한국인 국제분쟁 전문가가 부족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저에게 국제상사중재 분야에서도 중재인으로 일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처음에는 우리나라 기업과 해외 기업 간의 ICC, LCIA 등 국제중재에서 우리나라 당사자가 선정한 중재인으로 선임된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 경험이 많아지고 APRAG(Asia Pacific Regional Arbitration Group) 공동의장에 선출되는 등 활동이 많아지면서, 그 이후로는 의장중재인 또는 단독 중재인으로도 많이 선정되었습니다.

이러한 WTO와 국제중재에서의 경험을 통해 생생한 실무현장을 학생들에게 전할 수 있어 강의를 하는 데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고, 그 범위에서 과도하지 않게 업무량을 조절하면서 실무를 병행하려고 노력했습니다.

2012년에 WTO 상소기구(Appellate Body) 상임재판관으로 선임되셨습니다. 그 때는 어떠셨나요?
WTO 상소기구는 7인의 상임재판관으로 구성되는데 2심이자 최종심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학교 수업을 하면서 병행했기 때문에 힘들었지만, 제 강의에서 다루는 판례가 바로 상소기구 결정문이었기 때문에 학생들에게도 이 경험을 전하면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더욱이 전 세계에서 이 전공분야 전문가라면 누구든지 경험하고 싶어 하는 직무였고, 국가를 위해서도 도움이 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까지 원장님의 삶을 보면 매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시면서 사신 것 같습니다. 그 원동력은 무엇인지요?
왜 그런 생각이 드셨나요?(웃음) 그동안 살면서 항상 뜻한 바를 이룬 것은 아니고, 실패한 적도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실패해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도전을 한 것은 맞습니다.
자랑으로 들릴까 걱정됩니다만, 저는 법조선배들이 과거에 살아오셨던 인생의 보편적인 궤적을 그대로 따라가기보다는, 제가 갖고 있는 능력과 적성을 살려 뭔가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을 해 보려고 나름대로 노력한 것 같습니다. 새로운 분야, 새로운 역할을 개척한다는 점에서 스스로 즐거워서 매 순간 푹 빠져서 열심히 한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교수 생활을 하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제자가 있으신가요?
1995년에 처음 학교에 왔을 때 가르쳤던 94학번, 95학번 제자들이 기억에 남습니다. 그중에 ‘참강의기획단’을 만들어서 강의평가를 최초로 시도한 제자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교수 평가를 학생들이 한다는 점에서 참신하기도 하고 당돌하다고도 생각했었는데, 당시 다른 선배교수님들 몰래 하버드 로스쿨의 강의평가 문항을 구해서 그 친구들에게 주기도 하였습니다.

미국의 로스쿨과 비교하였을 때 우리나라 로스쿨의 문제점 또는 한계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미국은 로스쿨의 역사가 200년이 넘었지만, 우리나라는 이제 10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미국과 우리나라가 여러가지 사회 제도나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두 나라의 로스쿨을 평면적으로 비교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에서도 로스쿨이 지난 200년 동안 굉장히 많은 부침을 겪으면서 현재의 모습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미국에는 200개가 넘는 로스쿨이 있는데, 그들 중에는 천차만별의 다양성이 존재하고, 현재 우리 로스쿨처럼 변호사시험 준비에 치중하는 로스쿨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우리나라 로스쿨이 정착하는 데에도 미국처럼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는 25개의 로스쿨이 있고 정원도 2,000명으로 한정되어 있습니다. 전국에서 학부교육의 최상위 졸업자들이 전국 로스쿨에 몰립니다. 따라서 우리나라 로스쿨은 미국의 상위권 로스쿨과 비교되어야 하고, 그 교육내용이나 방향성도 그 수준에 맞추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시다시피 우리나라 로스쿨의 문제점은 로스쿨이 변호사시험을 준비하는 학원처럼 변질되어 가는 것입니다. 로스쿨이 다양한 예비법조인을 양성하고 동시에 공적 기능 수행해야 하는 측면도 분명히 있음에도, 그런 역할을 대부분 하지 못하고 오직 변호사시험에만 얽매이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그러한 우리나라 로스쿨의 문제점 또는 한계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있을까요?
시각의 차이인데요, 로스쿨을 과거 지향적으로 옛날 사법시험 시절의 기준으로만 바라본다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로스쿨 졸업생을 예전의 사법연수원 수료자와 똑같이 만들려고 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생각입니다. 실패한 일본 로스쿨 모델이 아니라, 미래지향적으로 미국 상위 로스쿨들과 같이 외국의 성공한 로스쿨 모델을 추구해야 합니다.
더욱이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도약하면서, 법치가 국가 운영의 근간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사회 구석구석에서 더 많은 새로운 법률 수요가 창출되어야 합니다. 로스쿨은 그 새로운 수요를 미리 예측하고, 준비해서, 충족시켜 줄 수 있는 미래지향적 예비법률가 공급처이어야 합니다.
 

최근 뉴스 기사를 보면 우수한 인재들이 대형로펌으로 집중되고 있다는 기사가 있었습니다.
대형로펌에만 쏠리는 현상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소위 말하는 ‘입도선매’는 교육적으로도 좋지 않고요. 로펌의 입장에서도 자기 로펌에 맞는 사람을 뽑아야 하는데, 그에 대한 평가를 할 시간도 없이 그냥 경쟁구도에서 입도선매하다 보니까 효율적인 인력 자원 배분이 제대로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죠. 그 차원에서 서울대 로스쿨은 1학년 겨울방학 로펌 인턴을 폐지한 바 있습니다.

학생들의 입장에서도 그냥 남들이 다 가니까 로펌에 지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금 현실은 변호사시험에 대한 압박 때문에 학생들 본인 스스로 인생에 대해 구체적인 생각을 진지하게 할 수 있을 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것 같아 보여서 안타깝습니다. 학생들이 좀 여유를 가지고 자기 인생 계획을 세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제가 듣기로는 미국에 하버드 로스쿨이나 예일 로스쿨 같은 경우는 1학년 때만 열심히 공부하고, 2학년, 3학년 때에는 여유가 좀 있다고 들었는데, 미국에서는 어떻게 그것이 가능합니까?
미국 상위권 로스쿨에서는 1학년 때 물론 열심히 하고, 2~3학년 때에는 자기 적성에 맞는 과목도 많이 듣고, 사회 봉사도 많이 합니다. 그러고 나서 졸업하기 직전부터 3~4개월 정도를 변호사시험에 집중해서 공부하면 웬만하면 합격하는 것이죠.

미국에서는 변호사 숫자가 많지만, 그 문제를 시장이 해결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변호사자격은 법률가로서의 소양을 가지고 어떤 의미 있는 일을 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자격증 정도로 생각되고 있습니다. 꼭 법조계가 아니라도 사회 곳곳의 다양한 분야에 진출하고 있습니다. 벤처 창업에 뛰어드는 사람도 있고, 기업 경영인이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법률 교육을 받고 변호사의 자격 취득 후 우리나라에서도 좁은 의미의 법조인이 되는 것 이외에 의미 있고 보람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여지는 앞으로 계속 넓어지리라 기대합니다.
그런 일들을 찾아서 법조인의 역할을 확대하고, 새로운 분야로 진출하는 로스쿨 졸업생들이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로스쿨의 문제를 논의하면서도 어떻게 하면 우리나라에서 법조인의 역할을 선진국 수준으로 더 확장시킬 수 있는지 그 얘기를 먼저 좀 하고, 그 방향에 맞추어 로스쿨 교육이 어떻게 개선되어야 하는지를 함께 논의 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로스쿨의 공적 기능 수행 역할에 대해서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미국의 유수 로스쿨이 제일 내세우고 자랑하는 게 있어요. 그게 바로 임상수업(legal clinic)이에요. 임상수업의 대상(對象)은 주로 그 학교 주변 지역의 취약 소외계층이 겪는 공공정책적 함의가 있는 법률문제입니다.

임상교수 또는 지도변호사의 지도를 받으면서 학생들은 소외계층을 상대로 고객 미팅도 하고 준비서면도 쓰는 등 소송 수행에 직접 참여합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진짜 실무교육도 하고, 학생들이 공공정책적으로 기여도 하면서 공적 마인드를 갖게 하는 것이 추구하는 목표입니다.
소송이 한 학기에 다 끝나지 않기 때문에 미국에서는 1년 또는 2년 연속으로 임상수업을 진행하기도 합니다. 소송 사건은 담당 지도변호사가 수임을 하고, 학생들은 소송지원의 일원으로 참여하는 겁니다. 지도변호사의 월급은 학교에서 주고, 고객으로부터 수임료는 전혀 받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임상교육은 예산과 시간, 비용이 많이 들어 로스쿨이 준비 없이 바로 하기는 쉽지 않은 것이죠.

임상수업(legal clinic)은 국선변호인이나 법률구조공단의 일을 가져가는 것이 전혀 아닙니다. 각 임상수업 반(class)에서 기껏해야 한 사건을 한 학기 내지는 수년간 다루기 때문에 수행하는 사건의 숫자는 많지 않습니다.

서울대 로스쿨에서는 김주영, 소라미 변호사를 임상객원교수로 영입하고 공익변호사 2인을 채용하여 임상교육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쉽지는 않겠지만, 서울대가 선진적인 임상교육 모델을 잘 만들어서, 다른 로스쿨들과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로스쿨이 자기 돈만 버는 변호사를 양성하는 기관이 아니라, 공적 기능을 수행하면서 공적 마인드를 갖춘 예비법조인을 길러내는곳이라는 국민들의 인식이 자리 잡을 수 있었으면 하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서울대는 특히 국립법인으로서 나라의 재정지원을 받기 때문에 사회에 공적 기여를 해야 하는 책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선배법조인으로서 후배법조인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조언 부탁드립니다.
지금 대형로펌들도 30년 전에는 창립파트너와 소속변호사 몇 명밖에 없었던 작은 사무소였습니다. 그때는 우리나라 법조시장의 성격상 대형로펌은 불가능하다고 다수가 이야기했습니다. 그런 사무소가 지금 이렇게 성장한 것입니다. 지금 제4차 산업혁명과 AI시대에는 젊은 변호사들이 기성 법조인이 걸어온 길만을 그대로 답습할 필요가 없고, 또 그래서는 성공할 수가 없습니다. 보다 도전정신을 가지고 미래지향적인 법률가상을 추구하시기를 권유해 드립니다.

다시 말하지만, 변호사자격은 반드시 좁은 의미의 법조인이 되는 요건이 아니라, 법률가로서의 리걸마인드를 가지고 어느 분야든지, 조력자가 아닌 주인공으로서, 활동할 수 있는 무기 또는 발 받침대라고 생각합니다. 선배들이 30년 전에 로펌을 설립한 것이 무모한 도전으로 보였듯이, 후배 법조인들도 지금 이 시대에 맞고 미래지향적인 “무모한 도전”을 시도해 보시기 바랍니다.

인터뷰/정리 : 전우정 본보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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