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는 법률적 소양을 갖춘 직업인,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미래를 내다봐야

- 소순무 변호사 인터뷰

솔직히 그의 길을 따를 수 있는 후배들은 몇 안 될 것이다. 대법원 재판연구관에 부장판사 출신, 조세 분야의 최고 전문가로서 대형 로펌 대표를 하는 것은 원한다고 누구나 성취할 수 있는 이력은 아니다. 인터뷰를 하기 전 그의 화려한 경력이 팍팍한 현실을 고민하는 변호사들에게 오히려 괴리감만 주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것은 괜한 걱정이었다. 그리고 분야를 막론하고 성공의 법칙은 다르지 않음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에게 어떻게 조세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물었다. 20년 동안 판사로 재직해 온 그이기에 그 시작은 ‘자리배치’였다. “1992년경 조세 문제를 주로 다루던 서울고등법원 특별2부에 배치되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대차대조표의 차변, 대변도 모르는 문외한이었습니다. 고등학교도 인문계를 나왔고 실업 과목으로도 상업이나 부기가 아닌 ‘농업’을 배웠으니까요.”

그러다가 1993년 3월에는 대법원 재판연구관으로 가면서 조세공동연구관실에 배치되었다. 당시만 해도 통상적으로 1년 정도 근무하다 지방법원 부장판사로 가는 것이 관례였다. 그런데 운명이었는지 인사상의 문제로 4년간 조세팀에 머물면서 팀장까지 지내게 되었다. “이전하고는 상황도, 마음가짐도 달라졌습니다. 연구관을 하면서 세무, 회계학원도 다녔지요. 당시만 해도 세법을 제대로 배울 곳이 없었기 때문에 관련된 분야는 어떤 곳이든 찾아다녔습니다.” 비록 처음에는 스스로 선택한 것은 아니지만, 인사배치를 발판삼아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여 전문가의 길로 접어든 것이었다. 마침 그가 재직할 당시 토초세에 대해 위헌결정이 내려졌고, 또한 이를 둘러싸고 헌재와 대법원이 치열하게 대립하는 등 많은 일이 있었다.

그는 대법원 재판연구관을 마치고 부천지원 부장판사로 재직하면서 경희대학교에서 조세환급청구소송구조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도 받았다. 또한 조세소송의 바이블로 불리는 『조세소송』도 이때 펴냈다. 손꼽히는 전문가로 안착할 무렵 그는 진로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전문화가 많이 진척되었지만 당시만 해도 법원 인사구조상 한 분야에 계속 머무르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법원에 계속 남을 것인가, 조세전문가가 될 것인가 고민 끝에 서울민사지방법원 파산부 부장으로 재직하던 2000년도에, 20년 법관생활을 마무리하게 되었지요.”

그가 결정을 내린 데는 대학 동기인 우창록 현 율촌 대표 변호사의 영향이 컸다. 당시 율촌의 규모는 지금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작았지만 조세 분야에서 선두주자가 되겠다는 의지만은 뚜렷했기 때문이다. 당시만 해도 부장판사 모셔가기가 하늘의 별따기인 상황에서 서슴없이 율촌을 선택한 것도 전적으로 우 변호사의 영향이었다고 했다. 그는 ‘율촌이 수지맞은 셈’이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조세 분야에 과연 인생의 향로를 바꿀 만큼의 매력이 있었을까? 그는 “세법은 법학의 호수”라고 답했다. “조세는 모든 법학을 아울러야 하지요. 기본적으로 거래 행위 등 민사법적 행위의 해석과 관련 있습니다. 국가작용과 관련된 공법적 분야이기도 하지요. 아울러 위헌 문제가 가장 많이 제기되는 분야이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세금을 모르고서는 법률업무를 제대로 하기가 힘들 정도입니다.” 그리고 보니 조세는 기술적인 숫자상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를 바꾸어 온 주역이기도 하다. “세법사도 참 재미있는 분야입니다. 프랑스 대혁명, 영국 명예혁명의 단초를 제공한 것도 세금입니다. 왕조의 흥망사도 조세와 맞물려 있습니다.”

하지만 변호사로서 수행하는 조세 소송은 법대에서 바라보는 사건과는 또 다르지 않을까? 마냥 재미있고, 매력적이지만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이 질문에 대해 “과연 판사 시절에 재판을 제대로 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법관은 도덕적이고, 합리적이고 정직합니다. 하지만 세상 일은 그렇지 않지요. 법관 기준으로 사실인정을 할 때는 이런 현상들이 비뚤어지고 비합리적으로 보이겠지만 결코 그렇게만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제가 법관으로 있을 때도 그런 오류를 범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로펌 변호사로서 일반 개업변호사와 같은 어려움은 덜했겠지만, 재조와 재야 사이에서 상당한 인식의 괴리를 느낀 듯했다. 그는 그럼에도 과세관청의 중복조사라는 절차적 하자를 최초로 지적하여 대법원에서 이를 이유로 한 부과처분 취소판결을 이끌어 냈고, 주식 명의신탁의 조세회피 목적을 제한적을 해석해야 한다는 판결도 받아내는 등, 판사 출신으로서 탁월한 법리이해를 바탕으로 많은 선례를 남겼다.

조세 전문가를 꿈꾸는 후배 변호사들을 위한 멘토의 조언을 구했다. 조세 분야의 유망성과 관련해서는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조세 분야의 수요가 많지는 않습니다. 변호사가 되려면 세법의 이해는 필요하지만 조세 전문 변호사는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습니다. 일단 사건 수가 늘어나는 추세에 있지 않고 세무사나 회계사, 관세사 등 유사직역의 업무와 중첩되는 부분이 많습니다.”

그는 좀 더 먼 시각으로 미래를 볼 것을 권했다. “법조인들은 너무 위험을 회피하는 경향이 있어요. 하지만 현재를 기준으로 미래를 선택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은 각광받는 분야가 20년 후에도 그럴까요? 굳이 전문 분야를 택해 길을 가겠다면 최소 20년은 내다봐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그는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권했다. “예를 들면 변호사가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따서 부동산중개사무소 개업을 하는 것은 어떨까요? 사실 부동산 거래에 계약이나 담보물권 등 얼마나 법률적 쟁점이 많습니까. 소비자들도 일반 공인중개사보다 변호사를 훨씬 더 선호할 것입니다.”

그의 말에서 영화 <변호인>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당시에는 사법서사나 하던 등기업무를 한다며 나이트클럽 호객꾼처럼 명함을 돌려 변호사들을 우세스럽게 한, 그러나 그를 비웃던 변호사들을 제치고 당당히 수임률 1위로 올라선 그 변호사 말이다. 남들이 가는 길은 남들과 부대낄 수밖에 없다. 결국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실용주의와 선구적인 안목이 블루오션을 창출할 수 있다는 이야기인데, 쉬운 문제는 아니다. 그 또한 그 한계를 인정한다. “미래를 내다보는 것은 분명 필요하지만 전문 분야 변호사로서의 명성은 결국 소수의 몫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목표를 세울 때도 적절하게 세워야겠지요.” 남들과 차별화해야 살아남는 데 그 차별화가 어렵다는 데 변호사들, 특히 시장에 진입한 지 얼마 안 되는 청년변호사들의 고충이 있다.

그는 “우리 세대가 독과점의 이익을 누린 것은 사실”이라고 솔직히 인정하며 “지금의 시점에서 선배들과 비교해서는 좌절과 실망만 들 것”이라고 청년변호사들에게 충고한다. “변호사는 이제 법률적 소양을 갖춘 직업인일 뿐입니다. 과거의 업무 영역에 머물러서는 안 되지요. 지방자치단체에서 몇 급으로 채용하든, 평생 그 급수에서 일을 할 것이 아니라면 받아들여서 실력을 발휘하면 됩니다. 회사의 경우에도 준법경영을 하지 않으면 얼마나 리스크가 올라갑니까. 그런 의미에서 경영학과 출신보다 변호사들이 더 경영을 잘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행정고시도 폐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행정이라는 것이 결국 법의 집행인데 그것이야말로 변호사들의 업무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변호사로서 살아남고, 나아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우선 특권의식을 벗어던지고 과감히 실용주의를 택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메시지였다. 그는 “시대변화를 받아들이고 과거보다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더 많은 고민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을 맺었다.

글/인터뷰 : 양은경 본보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