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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글쓰기와 변호사의 글쓰기

신문기자를 하다가 변호사가 되고 보니 두 직업을 비교하는 일이 많다. 만나는 사람도 반 이상이 전·현직 기자들이니 변호사라는 직업의 속성을 질문받는 일이 흔히 있다. 이러한 질문에 대한 나의 답변은 대개 “거의 같다”로 요약된다.

기자와 변호사가 하는 일은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공통점이 훨씬 많다. 대표적인 공통점이 글 쓰는 직업이라는 점이다. 전화변론을 하는 전관도 있었던 것 같고, 법정 드라마에서 멋진 언변을 구사하는 변호사도 등장하지만 체험한 바로는 변호사의 기본적 직무는 글쓰기라고 본다. 공판중심주의니, 구술변론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소송사건은 서면 중심으로 처리되고 있다. 사실 법정에서 민사사건의 대리인인 변호사나 형사사건의 변호인이 구두로 재판부에 대한 설득에 성공하는 일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의뢰인들 중에는 변호사가 글쓰기보다 말을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지만 글을 잘 쓰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외화(外畵)를 보면 배심원을 설득하기 위하여 현란한 말솜씨를 구사하는 변호인이 있지만 그 이면에는 법관에게 제출하는 글이 뒷받침되어 있지 않을까 추측한다.

두 번째 공통점은 기자든 변호사든 창작을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기자가 취재를 통해 글의 내용을 채우듯, 변호사도 의뢰인의 주장을 법적 논리에 맞게 정리해야 한다. 기자와 변호사의 글이 소설이 아니라 구체적 현실과 밀착되어야 하는 까닭이다.
셋째로 기자와 변호사의 글은 숙성의 시간을 갖지 못한 채 마감시각에 맞추어 급조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숙성의 기간을 갖는 대표적인 글의 종류는 소설 등의 문학작품일 것이다. 기자와 변호사도 기획 기사나 준비서면을 작성하는 경우 여러 차례의 퇴고 등 숙성의 시간을 갖는 경우가 많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발생한다. 큰 사건이나 사고가 터지면 기자가 분초를 다투며 기사를 써야 하듯, 변호사도 구속영장 실질심사, 방송 또는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 동·호수 추첨금지 가처분신청 등의 사건을 맡으면 밤을 새워 글을 써 법원에 접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차이점은 기자의 글쓰기는 곧바로 데스크의 첨삭과 교열부서의 정정 과정을 거치는 데 비해 변호사의 글은 변호사의 손을 떠나는 순간 누구도 고쳐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간혹 공동수임한 사건의 공동변호사나 로펌의 팀장이 후배변호사의 글을 다듬는 경우가 있겠지만 그것은 예외에 속한다. 따라서 공표된 기자의 글은 기자와 데스크, 교열기자의 공동작품인데 비하여 변호사의 글은 대부분 단독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아울러 기자의 글은 출고된 지 몇 시간 후면 수많은 독자들의 검증과 평가를 받게 되지만 변호사의 글은 판사, 검사 등 한정된 수의 사건관계자를 독자로 삼는 점도 차이점이다.

변호사로 19년째 일하고 있는 지금, 새삼 기자에서 변호사로 전업한 지난날을 되돌아보면 두 직업 사이에 차이를 느끼기보다는 공통점이 더 많은 듯 하다. 직업분류상 기자와 변호사가 다른 직업일 뿐, 하는 일의 본질은 동일하다는 생각이다. 다만 기자로 일할 때 원고지를 붉은 사인펜으로 물들이던 데스크의 첨삭이 횡포로 느껴졌던 일이 지금은 그리운 추억으로 남아 있다. 변호사의 글도 뛰어난 데스크의 손질을 거치면 더 나아질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강병국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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