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식 대화법
현대사회는 ‘소통’이 중요한 시대이다. 흔히 ‘말 잘하는 사람’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직업 가운데 하나는 아마도 변호사일 것이다. 변호사는 법 해석 논리를 통한 설득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말을 잘한다는 것이 화려한 언변과 매끈한 발음, 명쾌한 논리의 전개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인간이 의사결정을 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논리가 아닌 감성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설득을 위한 논리란 감성을 포장하는 수단에 불과할 수도 있다. 특히 변호사와 의뢰인의 만남에서는 ‘잘 말하는 대화법’보다 ‘잘 들어주는 대화법’이 더욱 중요하다. 이런 관점에서 소크라테스식 대화법(Socratic selling skill)을 중심으로 소개해 보고자 한다.
소크라테스가 토론을 통해 제자들에게 가르침을 전할 때는 결코 먼저 논리를 전개하는 법이 없었다. 다만 지속적으로 질문을 던지고, 요약하기를 반복했다고 한다. 소크라테스식 대화법의 핵심은 적극청취법(active listening)을 활용하여 어떤 질문을 던지고, 어떻게 요약하느냐에 있다. 계속되는 질문과 요약, 그리고 다시 이어지는 질문을 통해 제자들이 논제의 결론에 도달할 수 있게 도와주는 방식이다. 이와 같은 소크라테스의 귀납적 논의 방법은 오늘날 하버드대의 토론식 수업방식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변호인과 의뢰인의 첫 번째 만남에서 변호인은 의뢰인으로부터 소송에 관한 많은 정보를 듣게 된다. 이때의 대화에서 활용할 수 있는 소크라테스식 대화법의 적극청취법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반복하기(echo-back)다. 반복하기란 글자 그대로 핵심 키워드를 반복해서 맞장구치며 동의하는 행위이다. 두 번째는 요약하기(play-back)다. 이는 의뢰인으로부터 듣고 이해한 내용을 변호인이 다시 한 번 정리하여 간단명료하게 요약하는 일이다. 이렇게 맞장구치거나 요약하는 행위는 다음의 세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첫째, 나는 당신의 말을 열심히 듣고 있다. 둘째, 그리고 당신의 얘기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셋째, 따라서 당신의 상황에 대해 조금 더 핵심적인 대화를 나누고 싶다.
이와 같은 적극청취법은 의뢰인이 표현하고 싶은 복잡한 상황을 보다 객관적으로 정리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또한 의뢰인의 현재 감정에 공감하는 과정을 통해, 의뢰인은 변호인이 자신의 상황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이런 과정은 마치 유전을 찾기 위해 지표면을 차례로 두드려 나가는 행위와 같다. 수많은 지표면 탐사(적극청취)는 두말할 나위도 없이, 석유매장 가능성이 높은 땅 속(사건의 본질)으로 접근(후속질문)하기 위함이다.
커크호프와 데이비스(Kerkhoff & Davis)는 인간관계의 발전 과정에 대한 ‘유사성과 상호보완성’의 연구에서 초기단계에는 유사성을 확인하는 일이 중요함을 주장하고 있다. 사람과 사람이 처음 만나 관계가 발전되어가는 과정을 살펴보면 두 사람이 서로 비슷한 점을 찾아내는 단계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서로의 공통점을 발견할 때 두 사람은 빠르게 가까워진다. 유사성이 주는 편안함이 상대에 대한 친근감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출신학교나 고향 등을 묻고, 서로의 공통점을 발견했을 때 친밀감을 느끼는 것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관계가 오랫동안 지속될수록 유사성보다는 자신이 가지고 있지 않은 장점을 소유한 사람에게 매력을 느끼고 신뢰하게 되는 것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상호보완성의 중요도는 높아지게 된다.
유사성과 상호보완성의 논리를 변호인과 의뢰인의 대화에 적용한다면 초기에는 친밀감(유사성), 장기적으로는 변호인의 전문성에 대한 신뢰(상호보완성)가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 ‘의뢰인은 누구인가’와, 둘째, ‘의뢰인의 감정은 어떤 상태인가’에 대한 정보를 사전에 분석해 두는 일이 필요하다. 분석을 철저히 할수록 서로의 유사성을 통해 친밀감을 형성하기가 용이할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상호보완성의 관점에서 의뢰인으로부터 전문성에 대한 신뢰를 얻기가 수월해진다.
의뢰인 파악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첫째, 의뢰인의 성별, 소득, 학력 등 인구통계학적인 정보는 물론, 소송에 대한 목표기대와 함께, 법에 대한 전문지식의 정도 등을 미리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 유사성과 상호보완성의 원리를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둘째, 의뢰인의 감정적 상태에 대해서는 특히 소송에 대한 불안감, 분노, 공포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이해해야 한다. 이때 적극청취법을 통한 감정의 공유와 함께 비언어적 요소를 활용한 긍정적 제스처를 활용한다면 더욱 더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이어갈 수 있다. 불안한 상태에서는 시선이 고정되지 못하고 두리번거리는 등, 눈으로부터 불안감이 표현된다. 따라서 시선을 의뢰인과 맞추고, 상호응시를 통해 눈으로 동조해주는 방법, 의뢰인의 말에 대해 고개를 끄덕이거나 미소를 지어주는 방법 등을 활용한다면 긍정적인 상호작용에 도움이 될 것이다.
끝으로, 의뢰인과의 상담을 마무리할 때는 KISS(Keep it short & simple)의 원칙을 기억해야 한다. 변호인의 설명은 짧고 단순해야 한다. 그래야 명료하고, 전문적인 느낌을 준다. 복잡한 사안을 단순하게 요약하여 설명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짧은 문장과 명쾌한 단어로, 선을 이어 그림을 그리듯이 말하는 것이 바로 KISS다. 얼핏 생각하면 자세하게 설명하는 것이 전문적이고, 친절하게 보이며, 만일에 대비하여 피해갈 수 있는 구실을 미리 만들어 두는 것이 좋다고 여길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듣고 싶은 이야기, 자신의 지식수준에 맞는 친숙한 이야기만을 가려듣는 속성이 있다. 따라서 의뢰인의 머릿속에 변호인이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담은 선명한 그림이 구체적으로 그려지도록 전달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소크라테스식 대화법은 감성의 공유를 통한 논리의 설득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이에 따르면, 대화를 위해 꼭 필요한 세 가지는 전문지식(knowledge), 자신감(confidence), 열정(enthusiasm)이다.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전문지식이나 자신감이 아닌,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우러나 솟아오르는 순수한 열정이다. 상대에 대한 진정성이 마음으로 전달될 때 감동을 통한 기적이 일어난다. 그리고 이런 기적은 변호인과 의뢰인 사이의 대화에도 똑같이 적용될 것이다.
김혜성 교수
대구가톨릭대학교 언론광고학부, 사회과학대 학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