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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복기사(胡服騎射)

예전에 개업은 법원과 검찰 기준이었다. 법원 또는 검찰에서 판사 또는 검사로 재직하던 선배님들께서 변호사 활동을 개시하는 것을 주로 일컬었다. 법원 또는 검찰 현직을 在朝(재조)라 했고 개업을 한 분들은 在野(재야) 법조인이라고 불렸다. 개업은 비교적 여유로웠다. 대개는 방에만 앉아 있어도 사건이 알아서 찾아왔다고 한다.

요즘 개업은 그렇게 널널하지 않다. 일단 개업 자체를 ‘사건을 수임하는 것을 전제로’ 변호사 활동을 시작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맞다. 전혀 여유롭지 않다. 물론 예전에도 이런 개업은 있었다.
김앤장과 한미도 이런 개업으로 시작을 했다.

정부 수립 후 지금까지 등록한 변호사의 숫자가 내 등록번호보다 정확히 3배가 되는 데 불과 10년이 흘렀을 뿐이다. 변호사 수가 급증하면서 변호사들이 진출하는 분야도 다양해지고 있고 법원의 법관 임용 방식도 변했지만, 무엇보다 큰 변화는 ‘사건을 수임하는 것을 전제로’ 변호사 활동을 시작한 변호사들, 이른바 개업변호사들 간에 사건을 수임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사실 생각해 보면 동료변호사와 경쟁한다고 해서 반드시 의뢰인이 동료변호사에게 줄 사건을 내게 준다는 보장은 없다. 변호사는 의뢰인이 선택하는 것이지 변호사들 간의 경쟁을 통해서 의뢰인에게 변호사가 제공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클라우스 슈밥(Klaus Schwab)이 2016년 세계경제포럼에서 제4차 산업혁명을 이야기한 이후, 우리나라에서도 4차 산업혁명의 선두주자가 되어 돈줄을 선점하기 위한 경제 활동 주체들의 다양한 시도들이 전개되고 있다. 2020년부터 50년간 이어지게 될 제4차 산업혁명의 본질은 ‘소비의 혁명’이다.

소비의 혁명이란, 소비자가 물건을 구매하는 방식의 혁명이 일어나는 것이다. 아마존, 타다, 배민, 쿠팡 등 빅데이터를 활용한 기업들의 혁신적인 마케팅 전략은, 빅데이터를 통해서 소비자들이 진짜로 원하는 게 무엇인가를 제대로 파악하고 발 빠르게 움직인다는, 아주 상식적이고 기본적인 원리에 충실한 것이다. 빅데이터의 신뢰성은 차치하고도, 소비자는 더 이상 속이기 어렵다고 봐야 한다.

개업 준비를 위해 사업자등록을 했는데 업종에 ‘서비스업’이라고 기재되어 있는 게 참 인상적이었다. 그렇다. 변호사는 원래부터 서비스업이었다. 삼성전자 권오현 회장은 자신의 저서『초격차』를 통해서, 넘볼 수 없는 초격차를 만드는 것은 제조업에서나 가능한 일이며 서비스업은 ‘비교우위’만으로도 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진정한 비교우위를 위해서는 레드오션과는 결이 다른 방식으로 접근할 필요도 있다. 의뢰인의 만족을 사무실의 목표로 삼아 부단히 혁신을 지속하는 일을 통해 something new를 만들어 가는 일은 어떨까. 그 답 역시 서비스업에서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서비스업 하면 떠오르는 것이 변호사들에게는 낯선 속칭 저잣거리의 업종들이다. 그렇지만, 오랑캐를 무찌르기 위해서는 오랑캐의 옷도 입고 오랑캐의 말도 타고 오랑캐의 활을 쏠 줄도 알아야 한다. 춘추전국시대 조나라 무령왕이 오랑캐를 물리쳤던 고사에서 호복기사(胡服騎射)란 표현이 생겼다.
이 바닥 옷은 때로는 참 거추장스럽고 불편하다. 어디 어느 오랑캐의 옷, 쓸 만한 거 있으면 좀 입어볼까.

이세원 변호사
●법률사무소 서화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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