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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철 변호사 인터뷰

경영학과 출신으로 법조인을 꿈꾸게 된 계기는?
저희 부모님은 많이 못 배우고 가난한 분들이었어요. 저희 어머니 쪽 집안 먼 친척 중에 조영황 변호사님이라는 중졸이지만 초대 국가인권위원장을 지내신 분이 계셨는데, 그분이 그 시절 사법시험을 합격하셔서 잘된 것을 보고 어머니는 아들 둘이 법조인이 되면 집안을 일으킬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게 되신 것 같아요. 그래서 형님과 저에게 법관이 되라고 항상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저는 어릴 때부터 ‘나는 법관이 되어야 하는가 보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죠. 그런데 제가 서울대 경영학과가 취직이 잘 된다는 이야기를 어디서 듣고 어머니가 극구 반대하시는데도 원서를 내고 합격을 했어요. 막상 대학을 들어와서 경영학 공부를 해보니 전혀 적응을 못하겠더군요.

경영학이 어떻게 하면 돈을 잘 벌고 어떻게 하면 기업이 효율적으로 자원을 관리할까 이런 내용을 배우는 학문인데 그쪽에 전혀 관심도 없이 지방에서 학교공부만 하다 온 저 같은 학생에게는 너무 안 맞았어요. 빈부격차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에 사춘기가 늦게 찾아왔는데, 예를 들어 친구들과 밥을 먹으면서 얘기를 하다보면 다른 친구들은 아버지가 현직 대법관, 국회의원, 그룹 임원이라는 거예요. 그런 친구들은 빠듯한 생활비에 하숙을 하면서 어렵게 사는 저와는 달리 부유하고 풍족하게 사는 것 같아 씁쓸한 느낌이 들었어요. 그런 빈부격차에 대한 인식이 마음속 깊이 자리잡게 돼서 심적으로 많이 괴로웠죠.

그러던 중에 같은 하숙집 형들과 이야기하면서 ‘카투사’라는 제도가 있다는 걸 처음 듣게 됐고, ‘군대나 가자’하고 형들 따라서 시험을 봤는데 덜컥 붙은 거예요. 그래서 군대를 바로 갈 줄 알았는데 그 다음해 11월로 미뤄졌어요.
학교는 가기 싫고 빨리 군대로 가고 싶은데 그게 안 되니까 대학교 2학년 1학기까지 허송세월을 하면서 보냈어요.
제대 후에는 회계사 공부를 시작했는데 저하고 전혀 안 맞는 거예요. 그러다 주변에 사법시험 공부를 하는 친구들이 있어서 따라서 법서를 보게 됐는데 법서를 읽을 때는 정말 마음이 너무나 편하더라고요. 그렇게 해서 사법시험 공부를 하게 되고 법조인의 길로 가게 된 거죠.

법조경력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저는 연수원을 수료하고 바로 변호사의 길로 들어섰어요. 2차 시험을 몇 달 앞둔 시점에서 아버지가 하시던 일이 잘 안 돼서 집안 형편이 굉장히 어려워졌어요. 그때는 부모님 친구분이 생활비를 보내주시고 제가 목숨같이 아끼는 김성철이라는 친구가 저를 2년간 데리고 있어 줬어요. 그런데 2차에 불합격 하게 된 거죠. 다시 1차 시험을 보고 2차를 동시에 봤는데 또 떨어졌어요. 그렇게 되니 벌써 스물아홉이 돼버린 거예요. 2차 시험 기회가 한 번 남았고, 취직은 서른 살 넘으면 안 된다고 해서 저는 남은 6개월 동안 2차 시험 공부를 제대로 안 하고 토익공부와 입사시험 공부를 했어요. 그리고 2003년 6월, 2차 시험이 끝나자마자 본 면접 중 금융감독원에 합격해서 다니던 동안 2차 결과 발표가 났는데 정말 운 좋게 합격하게 된 겁니다.

그런데 연수원에서도 너무 고생스러웠어요. 집은 가진 것도 없고 빚만 많았으니까. 연수원 2년을 어떻게 하면 살아갈 수 있을까 고민만 했어요. 수료 후에도 고민이 많았는데 제가 경영대 출신이고 금융 분야로 가면 제 친구들이 저를 도와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금융 분야를 배울 수 있는 로펌을 찾아봤어요. 그런데 금융 분야는 대형로펌에서도 성적 좋고 나이 어린 똘똘한 친구들만 뽑는 곳이었어요. 저는 나이가 서른두 살이지, 연수원 성적은 영 아 니지, 이런 사람을 누가 뽑아주나요? 소위 ‘6대 로펌급’에서는 저를 안 뽑아주는데 10위권 로펌에서는 저를 금융 파트가 아닌 송무 파트로 오라고 하더라고요. 송무에서는 제가 스스로 성장할 수 없다는 생각이 확고했기에 저는 가지 않았어요. 지금도 저년차 변호사님들이 송무위주로만 하는 곳에 가면 제대로 성장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본인을 성장시킬 수 있는 곳을 가야죠.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하는 걸 보면 너무 안타깝습니다.

그런 고민을 하던 찰나에 금융 분야에 강점이 있는 중소로펌이 있었어요. 거기 제 선배가 다니고 있었는데, 그분에게 찾아가서 일할 수 있게 기회를 달라고 부탁했죠. 그래서 면접을 세 번이나 보고 힘들게 들어갔어요. 2006년에 입사를 했는데 진짜 미친듯이 일만 했습니다. 그리고 틈만 나면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제가 그렇게 한 이유는 제가 들어간 조직에서 저를 영원히 케어해 줄 수 없다는 생각을 해서 그런 거예요. 당장 대형 로펌에 들어가서 월급을 많이 받는다고 해도 그게 영원할 거라는 생각을 하면 어리석은 거죠. 일 하다가 친구들이 술 마시고 있다고 하면 바로 달려가서 같이 어울리고 다시 새벽에 들어와서 남은 일을 처리하곤 했습니다. 그러니까 친구들이 동철이는 시험 합격하고도 변한 게 없다고 그런 평가를 하더라고요.
 

 대형 로펌이 강고하게 자리 잡고 있는 금융 분야에서 성장을 이루신 비결은?
로펌에 입사해서 1년차 가을 정도에 그 당시 대형 증권사에 근무하던 친구에게서 갑자기 연락이 왔어요. 중국투자와 관련된 큰 계약 자문 건이었는데, 저에게 법률자문을 맡기고 싶다는 겁니다. 저는 작은 로펌에서 일한 지 불과 1년차밖에 안 되었는데 대형 로펌하고만 일하던 대형
증권사에서 저에게 일을 맡겨준다니 얼마나 큰 기회예요.  친구가 제발 이 일을 잘 해내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했어요(웃음). 이 자문 건이 제 첫 수임 금융사건이었습니다. 증권사 일을 하던 중 캐피털사와 관계된 일이 있었는데, 계약서 작성하고 도장찍는 날 사무실에 온 캐피털사
직원이 우연하게도 경영학과 1년 후배더라고요. 사무실도 마침 가까워서 자주 만났는데, 이 친구가 자기 상사에게 제 이야기를 잘해줘서 일을 맡게 되고 또 그 친구가 자기 주변의 다른 캐피털사 직원들을 소개시켜 주고 그 일이 계기가 되어 은행이나 저축은행, 새마을금고와도 연결되면서 네트워크가 갑자기 넓어지게 됐어요. 그렇게 클라이언트들을 많이 확보하게 된 것입니다.

영업 노하우에 대해서 살짝 알려 주십시오.
저는 후배변호사님들에게 이야기를 해주고 싶은 게 있어요. 사람은 보통 현재의 모습만 보잖아요. 그런데 저는 사람들에게 건방지지 않은 선에서 인간미를 가지고 대했어요. 친구들도 제가 가난한 집에서 성장해서 얼마나 고생했는지 아니까 이렇게 도와주려고 했던 거예요. 제가 성공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거죠. 저는 채용 시에도 가정형편이 어려운 후배들을 뽑으려고 하는데, 그런 친구들을 훌륭한 변호사로 키우고 동시에 경제적인 여유도 찾아주고 싶은 제 열망이 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제가 요즘 뽑은 후배들 중에는 미래를 내다보고 1년차에 저처럼 인간관계 관리하는 후배들이 한 명도 없었어요. 그럼 저는 후배들에게 그래요. “지금까지 인간관계를 그렇게 어설프게 했냐. 어떻게 변호사가 됐는데 주변에서 사건 하나를 안 맡기냐”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데 제가 잘난 척을 하는건 절대 아니고 변호사는 그런 부분을 항상 마음속에 새기고 열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걸 알려주는 겁니다. 인간관계는 당구에서 스리쿠션과 같아서 내가 상대방에게 도움을 주면 상대방도 나에게 똑같이 도움을 주는 개념이 아니라 상대방이 다른 사람들에게 나에 대한 좋은 이야기들을 하고 그 이야기를 들은 누군가가 저에게 도움을 주는 개념으로 봐야 해요. 그런식으로 여러 변호사들 중에 가장 먼저 제가 생각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먼저 생각난다면 이미 경쟁력이 떨어진 거죠.

그렇게 되기 위한 핵심은 두 가지입니다. 먼저, 실력이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친절해도 일을 엉망으로 하면 안 됩니다. 두 번째는 인간미가 있어야 합니다. ‘좋은 사람’이라는 느낌을 갖게 해줘야 해요. 그게 정말 중요하고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합니다. 남의 고통을 함께 할 수 있고 내 것을 양보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가까운 사람이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도움의 손길을 내밀 수 있는 그런 품성을 갖추어야 해요. 똑똑하기만 하고 그런 품성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은 아까 말씀드린 인간미가 없는거죠. 성공할 수가 없어요. 예전에 변호사가 극소수일 때는 그런 품성이 없어도 대접받았죠. 그런데 지금은 변호사가 많아졌는데 그런 사람과 가까이하고 싶겠어요? 그런 사람들이 성공하기는 이제 쉽지 않아요.

결국 성공의 비결은 간단합니다. 실력이 있고, 인간미가 있는데 최선을 다하면 성공할 수밖에 없습니다. 거기에 운이 가미되기는 하지만 그건 5퍼센트 미만이라고 보고 나머지는 전부 노력입니다. 인간관계는 멀리 봐야 해요. 지금 저와 같이 일하고 있는 고객들은 30대 초반에 저와 같이 대리, 과장급에서 일을 같이 하던 실무자들입니다. 그런데 10년 넘게 한결같으니 팀장, 이사가 되어서도 저와 함께 일을 하고 있는 겁니다. 먼 미래를 보고 인간관계를 잘 다져가야 해요. 모든 사람들을 다 내 사람으로 만든다고 생각하고 사회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 사람들이 나에 대해서 좋은 평을 하고 그걸 들은 다른 사람들도 나에 대해서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변호사는 법적 지식은 기본이지만 결국에는 인격이 제일 중요하지 않을까 해요. 노하우라는 게 다른 게 있을까요? 결국 사람의 마음을 얻는 거겠죠.

로펌을 운영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무엇인가요?
저희 회사는 파트너들도 휴가를 어쏘변호사님들과 동일하게 사용합니다. 파트너나 대표라고 해서 기준에 맞지 않게 휴가를 사용하지는 못합니다. 독일의 에르빈 롬멜 장군의 전기를 읽어보면 롬멜 장군이 북아프리카 사단의 사단장일 때 자기 지프차가 진흙에 빠졌는데 보통 장군들은 병사들이 그걸 끌어올릴 때 구경만 하고 있잖아요. 그런데 이 사람은 병사들하고 같이 차를 끌어올리고 있는 사진이 있어요. 그러니까 병사들이 롬멜 장군을 따라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죠. 저는 금융 분야를 주로 하다보니 대형 로펌과의 치열한 경쟁에서 이겨내야 하는데 제가 솔선수범하지 않으면 누가 저를 따르고, 어떻게 경쟁을 하겠습니까.

저는 밤 1시 이전에는 절대 자지 않습니다. 후배변호사님들에게 항상 저도 열심히 하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는 거죠. 그래야 충성심이 나오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소위 영혼과 지갑의 보상이 필요합니다. 영혼만 보상하는 게 아니라 지갑의 보상도 이루어져야 한다는 거죠. 저는 일만 열심히 하면 급여는 대형 로펌보다 더 많이 주려고 합니다. 열심히 한 만큼 보상은 제대로 해야 합니다. 일한 만큼 보상이 안 되는 조직은 결국 영속성이 없기 때문에 소멸하게 되어 있어요. 저희 회사는 3년만 지나면 다 자기 고객이 만들어집니다. 김동철 변호사를 배신하고 나가도 그 고객은 온전히 따라갈 정도로요. 저는 억지로라도 고객을 만들어 줍니다. 그래서 후배변호사가 그 고객만 챙겨서 나가면 어쩔 수 없는 것이지만 제가 기대하는 바는 저처럼 후배들이 자기 후배들에게도 고객을 만들어주고 이 조직이 영속될 수 있는 그런 구조를 만들길 원하는 겁니다. 혹시나 자기 고객을 빼앗길까 후배를 경계하는 선배가 제일 바보같다고 생각해요. 로펌은 자식한테 승계할 수 있는 회사가 아닙니다. 후배변호사님들이 모범을 보이는 선배변호사들을 존경하고 따르면서, 선배변호사들은 후배들을 케어해 주고 성장시켜 주면서 로펌이 계속 이어지게 되는 거죠.

후배들은 제가 나중에 후배들에게 대표 자리를 물려주고 법인도 물려줄 것이라는 걸 알아요. 망하는 조직의 특징은 자기가 무능해졌음에도 계속 대표를 하고 있는 거예요.
그런 대표 밑에서는 유능한 사람들은 다 나가고 무능한 사람들만 남아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본인은 모르죠. 이런 점을 저는 항상 경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적정한 때가 되면 당연히 후배들에게 로펌을 물려줄 거고, 그걸 위해 현재 후배들이 자력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겁니다. 일하는 능력, 사건 수임 능력, 고객 관리 능력, 회사 관리 능력을 후배들에게 지속적으로 교육하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그래야 영속성이 있죠. 로펌은 플랫폼 비즈니스입니다. 제가 법무법인(유) 현을 운영한다고 해서 저 개인이 돈을 버는 것이 아니고 좋은 시스템을 만들고, 좋은 분들을 영입해서 좋은 평판을 얻게 되면 회사 전체에 사건이 많아지는 거죠. 저 개인만이 아니라 모든 구성원들이 혜택을 보는 것이고, 특정인이 이익을 독식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한 구조로 가는 거예요.

이 인터뷰가 중요한 건 이런 제 생각이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공감을 얻게 되면 우리 회사로 좋은 분들이 많이 오게 될 거예요. 제대로 된 시스템만 확고하게 갖추고 있으면 저는 저희 로펌이 크게 확장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다른 분들에게 변호사님은 어떤 사람으로 비춰지고 싶으신가요?
저는 동료, 선후배들이 봤을 때 조금 어려운 사람이에요. 저희 어머니조차 그렇게 느끼시니까요. 저의 아내만 저를 다루기 쉬운 사람 취급하고 말도 함부로 하고 그럽니다. 9살이나 차이 나는데 말이죠(웃음). 그도 그럴 것이 저는 잔정은 전혀 없지만 큰 정이 있는 사람이에요. 사람을 극한까지 몰아가서 훈련을 시키는 스타일입니다. 저희가 대형 로펌들을 상대해야 할 일이 많은데 영원히 그 뒤에 있을 거라는 이야기를 듣는 게 너무 싫거든요. 금융 분야에서 1등을 하고 싶은데 그건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만큼 슬픈 일이 어딨어요? 그래서 저는 최선을 다하고 조직에 해가 되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아무리 친한 관계라도 결코 용납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걸 제외하고는 저는 무한 이타적인 사람이에요. 저는 술을 아무리 마셔도 정신줄을 절대 놓지 않고 그런 유형의 사람들은 절대 리더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조직은 잠시 정신줄을 놓으면 망할 수도 있기 때문에 그래요. 다른 사람들은 저의 이런 성격을 아니까 저를 편하게 보질 않는 거고, 제 아내는 그것과 무관하니까 저를 편하게 대하는 거죠(웃음).

혹시 자녀분들도 강하게 키우시나요?
자녀는 딸 하나 아들 하나인데요. 불편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딸은 무한히 사랑해 주고 스트레스받지 않게 키워야 한다는 생각이고, 아들은 강인하게 키우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6살 아들에게는 인생의 무게감을 느끼게 해 주는 심각한 이야기를 던질 때도 있죠(웃음).

회계법인이나 자산운용사 같은 새로운 분야에도 진출하고 계신데요.
사람의 생각은 다 같아요. ‘이게 내 것이다’라고 생각하면 다 열심히 하잖아요. 회계법인 현과 특허법인이 별도로 설립된 이유는 일에 대한 열의의 문제였어요. 회계사 분들, 변리사분들을 법무법인에서 내부적으로 채용해서 활용도 해 봤는데 저는 별도로 법인을 두고 그분들께 법인
운영을 맡기면 본인회사라는 생각에 더 열심히 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어요. 실제로 그렇게 해 보니 굉장히 열심히 하세요. 법무법인에서 일거리는 계속 보낼 테니 일만 열심히 해 달라는 취지였는데 그 시도가 성공한 거죠.

그리고 자산운용사인 파트너스 현을 만든 이유는 제 개인 비즈니스를 하기 위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주된 이유는 저를 도와주신 분들이 회사에서 나올 때가 되셨는데 이분들을 단순히 고문으로 모시는 것보다는 자신의 능력을 더 잘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자산운용사는 그래서 만들게 된 거예요. 그러니까 후배들이 걱정을 해요. 로펌 운영에 힘을 안 쓰고 제 개인의 영리를 위해 다른 곳에 한눈파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에 말이죠. 그래서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이야기 했어요. 제 개인 비즈니스가 아니고 우리 로펌이 과반수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비즈니스라고. 법무법인(유) 현은 결국 후배변호사들이 운영하게 될 것인데 그게 어떻게 제 개인의 비즈니스냐라고 말이죠. 자산운용사가 잘 되는 것이 결국 법무법인이 잘 되는 길입니다.

마지막으로 후배변호사님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선배변호사님들께 먼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많이 버셨다면 그만큼 후배들에게 물려줄 것은 물려주고 베풀어 주시는 마음을 가지셨으면 합니다.
후배변호사님들께 말씀드리고 싶은 건 힘들어도 기득권에 주눅들지 말고 자신들의 역량을 발휘했으면 한다는 겁니다. 유능한 변호사들은 동물원의 동물들처럼 먹이를 받아먹는 것에 만족하지 않습니다. 광야에서 이를 악물고 사냥하다 보면 처음에는 힘들지만 성취를 이룰 수 있어요. 그리고 혼자서 하는 것보다는 함께 뭉쳐서 공정한 시스템을 가지고 로펌을 운영해 보셨으면 합니다. 뭉쳐서 기득권을 깨 나가면서 신규 시장에 진출했으면 해요.
또 다른 법무법인(유) 현처럼 야생에 있던 변호사들이 주류로 진입하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인터뷰/정리 : 김승현 본보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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