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호 의료전문변호사 인터뷰

무려 3,000만 원이나 들여 시작한 개업이었다. 신혼집으로 잡은 지하 원룸의 보증금이 700만 원이었으니 3,000만 원은 엄청난 돈이었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나도록 손님 하나 찾아오지 않았고, 같이 개업한 변호사와 ‘오전은 네 방에서 오후는 내 방에서’ 소일하는 나날이 계속되었다. 

애써 태연한 척 했지만 불어나는 은행이자에 속이 바싹 타들어갈 무렵 첫 손님이 찾아왔다. 간판을 보고 무작정 들어왔다는 젊은 남자는 여동생이 심장수술 중 뇌동맥이 막혀 식물인간이 되었다며 병원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다고 했다. 지금은 자다가도 술술 튀어나올 만큼 익숙해졌지만, 당시만 해도 심장판막이 뭔지, 본태성고혈압이 뭔지 다 외계어 같기만 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열심히 듣는 것밖에 없었다. 

의료소송의 대가 신현호 변호사(사법연수원 16기, 법률사무소 ‘해울’ 대표변호사)의 개업 서막은 이러했다. “당시에도 이미 ‘부장판사도 서초동에서는 힘들다’고들 했지만,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개업을 했습니다.” 같이 입대한 연수원 동기 세 명이서 2,000만 원씩 모아 엘리베이터도 없는 허름한 건물의 보증금 6,000만 원을 댔고, 자동차와 복사기도 장만했다. “우리끼리 그랬어요. 복사기 바꾸기 전에 망하면 털고 취직하자고...”

복사기 바꾸기 전에 간신히 들어온 첫 사건이었지만 정말 난감했다. “아무리 설명을 들어도 모르겠더라구요. 차라리 변호사 선임료로 치료비나 하라고 했어요. 그런데 그분이 사무실을 나가면서 ‘설명의무 위반으로 이론을 구성하는 게 어떠냐’고 하더군요.” 지금은 논문도 썼지만 당시만 해도 ‘설명의무’라는 게 있는지조차 몰랐다. 그 이야기를 듣고 도서관에 가 보니 그 사이에 ‘설명의무’에 관한 여러 편의 책과 논문이 나와 있었다. 대기업 기조실에 근무한다는 환자의 오빠는 사건에 몰두하다  변호사 못지 않은 전문가가 다 되었던 것이었다. “명색이 변호사가, 부끄러워서 잠을 못 잤습니다. 창피해서 더 못 맡겠더라구요“

하지만 환자의 오빠는 며칠 후 다시 사무실을 찾아 왔다. “변호사사무실 30군데를 넘게 찾아다녔는데 의료소송이라니까 절반은 안 만나 주고, 절반은 5분 이상 이야기를 안 들어 주더랍니다. 한 시간을 들어 준 사람은 우리밖에 없었다네요. 우리는 그분 외에는 손님이 없었으니까요.” 그는 자신이 모든 자료를 준비하겠노라며 변호사 이름만 빌려 달라고 했다. 하도 염치가 없어 일을 배울 겸 무료소송으로 진행하려 했지만 그는 ‘그럴 수는 없다’며 수임료로 100만 원을 쥐어 주었다. 1990년 당시 당시 평균 수임료가 200~300만 원일 때였다. 
 

그렇게 시작한 사건은 결국 소가가 10억 이상 넘는 대형사건이 되어 버렸다. 90년에 시작한 사건이 92. 3. 13.에야 첫 선고가 내려졌다. “피해자의 승낙이 없어 수술 자체가 불법이므로 위자료뿐 아니라 설명의무 위반으로 인한 전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현재로서도 획기적인 판결이었습니다.” 이 판결은 당시 모든 신문·방송을 장식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대법원에서 위자료 지급만을 명하는 취지로 파기환송되었는데, 고등법원에서는 다시 전손해배상 취지로 판결하는 등 대법원과 고등법원사이를 핑퐁게임하면서 판결문만 무려 일곱 개, 소요시간만 8년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사건이 되었다. 

그러는 동안 그는 본의 아니게 의료전문 변호사가 되어 버렸다. “당시만 해도 한 건만 잘 해도 전문가가 될 수 있는 시절이었습니다. 하지만 처음에는 정말 이 길을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사건 때문에 산 의료서적을 내놓지 못하고 캐비넷에 숨겨 놓고 있었으니까요.” 의료소송은 그야말로 3D다. 난해한 의학용어를 알아야 하고 걸리는 시간만 해도 5~8년이다. 게다가 수임료도 높지 않다. 첫 사건도 소가가 커졌다고는 하지만 고작 100만 원을 받고 시작한 일이었다. 사무실 재정은 지인들이 갖다 주는 다른 사건으로 유지되었다. 게다가 당시만 해도 의료소송을 얕잡아보는 시선이 강했다. “94년경에 인천지법에서 사건이 있었는데 판사님이 측은한 눈으로 쳐다보더군요. 변호사가 오죽 사건이 없으면 의료소송을 하느냐는 것이었겠지요. 실제로 일부 변호사 선배들은 대놓고 핀잔을 주기도 했습니다.”

그러자 본때를 보여줘야겠다는 오기와 독기가 생겼다. 의학 원서를 사전을 뒤져가며 하나하나 해석해 가며 공부했다. 마침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에 개설된 의료법학 연구과정을 수강하며 감을 익혔다. 

시대의 흐름도 그를 도왔다. “88올림픽을 거치며 사회가 급속히 선진화되었습니다. 이른바 선진국형 소송이라는 환경, 지적재산권, 의료소송이 급격히 늘어났지요. 운좋게도 시류를 탄 셈입니다.” 그는 그동안 김할머니 존엄사 판결 등 굵직한 판결을 이끌어 냈고, 경쟁자인 서울아산병원과 삼성의료원의 고문을 동시에 맡는 의료소송의 대가가 되었다. 그는 ‘천운’이라고 했다. 

천운이든, 노력이든 지금은 상당수의 청년 변호사들이 그를 전문변호사로서 자신의 미래로 꿈꿀 것이다. 그에게 멘토의 조언을 구했다. 그는 전문변호사에게서 배우는 방법을 추천했다. “욕심내지 말고, 3년 정도 트레이닝을 받아야 합니다.” 그렇게 그의 사무실에서 일하던 변호사 중 어떤 이는 직원 다섯 명을 데리고 나갔고, 어떤 이는 큰 사건을 가지고 나갔다. 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는다. “그만큼 자기가 노력했으니까 직원이든, 의뢰인이든 신뢰를 얻을 수 있었겠지요. 그만큼은 자기 몫으로 가져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청년변호사의 70%가 이직을 꿈꾼다는 조사결과가 나올 정도로, 장시간 노동과 같은 열악한 근무조건이 청년변호사들을 옥죄고 있다. 고용변호사로서 일을 배우는 것 역시 녹록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생각을 바꿔야 한다”고 잘라 말한다. “남의 돈으로 자기 공부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변호사는 그렇게 할 수 있는 흔치 않은 직업입니다. 처음에 트레이닝을 많이 받으면 그만큼 상황대처 능력이 높아집니다. 이것은 내 일이라고 생각하고 시키지 않아도 나와서 판례를 찾아보고 연구하는 변호사와, 가욋일이라고 여기고 기피하는 사람은 나중에 실력 차이가 어마어마하게 날 겁니다.”
 

그는 다른 분야의 취업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실용적으로 접근할 것을 주문했다. “9급 공무원이라도 일할 수 있는 곳이면 적극적으로 가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변호사가 좋은 것이 계급이 없다는 겁니다. 요즘 변호사 채용 급수를 두고 말들이 많은데 계급이 아닌 보직의 문제로 접근해야 합니다. 그 직역에서 내가 무엇을 배울 수 있을지를 봐야 합니다.”
 

각박한 시대를 견디는 후배들에게 한때나마 풍요로운 시대를 지낸 선배의 이러한 충고는 선뜻 와닿지 않을 수도 있다. 그 시절에는 직원 월급이 20만 원이었는데 건당 수임료는 200~300만 원이었다. 20년이 지나는 동안 직원 월급은 열 배로 뛰었지만 수임료는 날로 바닥을 갱신하고 있다. 그는 자신도 날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수임료 경쟁에서도 예외가 아니라고 했다. “바로 옆 사무실에서는 의사출신 변호사가 착수금 300만 원에 성공보수 15%를 받는데, 여긴 비싸다고 대놓고 말하는 의뢰인도 있습니다.” 과거의 풍요를 되살릴 수 없다면, 각박한 지금도 이미 닥친 현실이니 수용하고, 이겨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개업변호사의 삶은 사건이 많으면 많은 대로, 적으면 적은 대로 고생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엊그제 같은 경우 새벽 여섯 시에 서울을 출발해, 전주-대구-포항 재판을 마치고 밤 열두 시에 왔습니다. 우리 사무실 차량이 두 대인데 한 대는 작년에 5만 킬로를 뛰었습니다. 영업용 택시 수준이지요. 그런데 또 한 일주일 사건이 안 들어오는 때도 있습니다. 그러면 ‘사무실 문닫는 것 아닌가’하는 걱정도 들지요” 
 

그는 같은 건물에서 수억을 들여 호화로운 인테리어를 하고 개업했던 변호사들이 몇 달, 혹은 1~2년 안에 사무실을 접고 나가는 경우를 수도 없이 보았다. “사무실이, 혹은 사무장이 사건을 가져오는 것이 아닙니다. 변호사는 어디까지나 스스로의 책임으로 하는 일입니다.” 그는 “욕심내지 말고 명예를 지키는 길을 택하라”며 인터뷰를 맺었다. 

글/ 인터뷰 : 양은경 본보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