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유럽 법조계 리더로서의 책임감과 저력

- 제13회 유럽변호사 베를린 컨퍼런스 참가 결과 보고 -

2013년 10월 29일 아침, 예년보다 서늘한 가을 바람을 맞으며 베를린 출장길에 올랐다. 올해로 13회를 맞이하는 유럽변호사 베를린 컨퍼런스에 참가하기 위해서이다. 유럽변호사 베를린 컨퍼런스는 베를린변호사회가 주최하는 행사로서 유럽을 중심으로 하여, 세계 각국의 변호사들이 한자리에 모여 현재 이슈가 되고 있는 주제를 정해서 그에 대해 논의하는 행사이다. 매년 개최되는 이 행사에는 올해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네덜란드 등 총 19개국 50여 명의 변호사들이 모여 ‘사법제도의 과오 관리와 책임’이라는 주제를 놓고 심도 있게 토론하고 교류하는 자리를 가졌다.

지난 7월부터 한ㆍEU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른 2단계 법률시장 개방이 이루어져 외국법자문법률사무소가 국내 로펌과 업무제휴를 하거나 공동수임을 하는 것이 허용되는 등 유럽 로펌의 국내 활동이 점차 활발해 질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유럽 법조계의 동향과 시장흐름을 파악하고, 더 나아가 국내 변호사들의 적극적인 해외 진출 방안을 모색하는 등의 노력이 절실하게 필요한 상황이다. 이를 위하여 현재 가장 활발한 변화를 거치고 있는 독일 법조를 이해하고 우리의 대비책을 강구하는 것도 참가의 다른 목적으로 삼고 출장 기간 동안 컨퍼런스 공식행사에 꼼꼼히 참석한 것은 물론, 독일변호사협회, 널(Noerr) 로펌, 베를린고등법원, 홈벌트 법과대학을 방문하여 우리 회원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얻고자 총력을 다하였다.
공유하고 싶은 사항이 많지만, 필자에게 많은 지면을 할애되지 않아 이 글에서는 컨퍼런스 공식행사 및 공식 방문처 방문결과 중에서 핵심적인 내용만 간추려서 회원님들께 공유하고자 한다. 

유럽변호사 베를린 컨퍼런스 공식행사 참가

우리 법조가 앞으로 아시아 법조계의 리더로 성장하려면 국제적인 컨퍼런스도 개최할 수 있는 역량을 구비하여야 한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르는 법이다. 독일은 유럽 대륙법의 선구자적 위치에 있는 국가로서 현재까지도 법률 시스템에 관한 한 유럽국가들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세계 많은 국가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베를린변호사회는 그런 자국의 위상에 걸맞게 19개국에서 온 변호사들을 세심하게 관리하고, 전체 행사를 규모 있게 진행하였다. 유럽변호사 컨퍼런스의 공식행사는, 해외 참가 변호사들을 위한 샴페인 리셉션, 메인 행사의 전야제 격인 환영 리셉션, 컨퍼런스, 공식 만찬, 보로스 컬렉션 단체 관람 및 환송 리셉션 순으로 진행되었다. 
 

컨퍼런스는 각국 대표단이 자국의 깃발이 꽂혀있는 커다란 라운드 테이블에 둘러앉아 자유롭게 발표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고 영어와 독일어로 동시통역 되었다. 3시간에 걸친 회의 동안 ‘사법제도의 과오 관리와 책임’이라는 주제를 둘러싼 세 가지 쟁점에 대해 주로 논의하였는데, 첫째는 변호사의 과오에 따른 책임에 관해(주로 변호사배상책임보험의 의무적인 가입 여부와 할증보험료 문제), 둘째는 부당한 구속에 대한 보상체계에 관해, 셋째는 판사들의 과오에 대해 어떻게 책임을 지는가에 관해 각국의 현황과 법률전문가로서의 의견을 나누었다. 한국은 아시아 유일의 참가국인 만큼 많은 관심과 질문을 받았는데, 특히 유럽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변호사배상책임보험과 같은 보험을 변호사가 의무적으로 가입하도록 제도화 되어 있어 관련된 우리 제도에 대한 질문이 많았다. 참가한 모든 변호사들은 시종일관 진지한 자세로 회의에 임했고, 적극적으로 자국의 상황과 앞으로의 발전 방향에 대해 의견을 내고자 노력했다. 사법체계의 과오로 인해 국민들이 피해를 보는 상황을 최소화하려는 유럽 변호사들의 열띤 토론을 지켜보며, 유럽 법조의 근원적인 힘이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공식방문처 방문

컨퍼런스 참석만큼이나 중요했던 것이 독일변호사협회,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로펌 널(Noerr), 베를린고등법원(Kammergericht), 홈벌트 법과대학의 방문이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다음의 세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첫째는, 현재 독일변호사협회와 법무부, 사법부 등이 공동으로 추진하고 있는 ‘Law made in Germany’ 캠페인이다. 최초 독일변호사협회 주도로 발아한 이 캠페인은 이후 정부와 사법부의 큰 호응을 얻으며 점차 대대적인 캠페인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 캠페인의 핵심은 바로 독일 ‘사법제도의 수출이다. 자국의 법제도가 동일하게 다른 나라들에 이식되어 있을 때, 자국 기업의 해외 진출은 훨씬 용이해진다. 자국 법조인들의 활동 반경이 훨씬 넓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베트남, 몽골, 캄보디아 등의 주변 개도국에서 법제를 정비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우리 사법제도의 수출은 미래 가치가 대단히 큰 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신규 법조인들의 취업 문제가 점점 더 깊어지고 있는 우리 법조계의 상황을 인식하더라도 새로운 해외 진출로의 개척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Law made in Germany’ 캠페인은, 그런 의미에서 머나먼 유럽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그림의 떡’이 아니라 지금 우리나라 정부와 법조계가 함께 연구하고, 벤치마킹해야 할 과제이다.

둘째는, 독일의 ‘변호사 보수에 관한 법률(Rechtsanwaltsvergütungsgesetz, RVG)이다. 이 법은 민사소송, 형사소송, 행정소송 등의 재판절차에서의 변호사 보수뿐만 아니라 재판 외의 법률상담 업무에 대한 보수 기준까지 규정하고 있으며, 변호사 보수가 일반적으로 소가에 비례한다는 것은 우리나라와 유사하지만 소가를 42개 구간으로 구분하여 매우 구체적으로 보수를 산정하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최소 보수 수준을 정하고 반드시 그 이상의 보수를 지급하도록 규정함으로써 변호사의 공공성을 담보하고 있으며, 부록에 변호사보수표(Vergütungsverzeichnis, VV)를 삽입하여 청구 사건의 종류에 따른 적정 보수를 매우 상세하게 분류하여 규정함으로써 변호사 보수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과 분쟁을 사전에 차단하고, 소송비용의 산정에 소모되는 노력을 상당히 감축하고 있다.
 

셋째는, 널 로펌의 성공 요인에 관해서이다. 널 로펌은 2012년 기준 독일 법률시장에서 총 매출 8위를 기록한 로펌으로서 1950년도에 뮌헨에 사무실을 연 독일 토종 로펌이다. 독일 법률시장 개방 이후 널 로펌은 독일의 다른 토종 로펌들과 같이 영미계 대형 로펌들에 밀려 고전했지만, 최근 몇 년 사이에 급속도로 부상하여 규모 및 매출 수준에서 독일 내 탑 10의 로펌으로 진입하게 되었다. 그 비결에 대해서 로펌의 공동 대표인 Pleister 변호사는 두 가지 이유를 들었다. 첫째, IT, 특허, 소송, 노동, 부동산 등 다양한 분야에 전문성을 확보하여 넓은 고객층을 확보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독일 30대 대기업 및 중소 상장 기업들과 탄탄한 신뢰관계를 구축했다는 점이다. 유럽과 미국에 대한 법률시장 개방의 문을 한 단계씩 열어 나가고 있는 현시점에서 널 로펌의 성공 사례는 우리나라의 로펌들에게 중요한 참고 자료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최승재 국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