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했지만 포기해야 하는 것
 

나는 비교적 학교폭력 관련 사건을 많이 대리하는 편이다. 어떤 경우에는 가해학생 측을, 어떤 경우에는 학교 측을, 또 다른 경우에는 피해학생 측을 대리하는데, 아무래도 피해학생 측의 소송대리인이 되는 경우가 비율적으로 보면 가장 많다. 학교폭력 사안 중에서 가해학생의 학교폭력이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 피해학생이 사망하는 경우뿐만 아니라, 지속적인 따돌림, 사이버상에서의 따돌림 등으로 인하여 극단적인 선택을 하여 사망에 이르게 된 사건의 피해학생 측의 소송대리인이 된 적도 몇 번 있다. 

어느 농촌 지역 군 소재지 중학교에서 졸업을 앞둔 학생들이 후배들을 집단적으로 구타하다가 그 자리에서 사망한 사건, 초등학교 때부터 괴롭힘을 당하다가 같은 중학교에 진학한 후에는 점점 더 폭행과 따돌림이 심해지자 결국 견디지 못하고 자살에 이르게 된 사건, 중학교 때부터 놀리고, 왕따 시키다가 고등학교에 진학한 이후 점점 더 놀림과 폭행이 심해져 자살에 이르게 된 사건 등에서 분쟁조정과 피해학생 측의 소송대리와 고소대리인으로 사건을 처리했던 일 중 피해학생 부모님이 가해학생들과 그 부모님에게 했던 말이 늘 학교폭력 사건을 상담하거나 소송을 수행할 때 마음 한구석을 무겁게 한다. 또 한편으로는 늘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 부족한 것은 아닌가 하는 사건들도 있다.

학교폭력 사건에서 가해학생에 대한 조치 중 하나로 ‘서면사과’ 조치가 있다. 이 조치에 대해서는 제도의 취지와 달리 운영상 여러 가지 법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학생에게 가해학생으로서 피해학생에게 서면으로 사과를 하게 하는 조치가 헌법상 보장된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은 아니가 하는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학교폭력 사건에서 가해학생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나 목격학생 진술도 명확치 않거나 부족한 경우 가해학생에게 ‘서면사과’를 하는 조치를 결정한 후 가해학생은 서면사과로 학교폭력 사건이 마무리되는 줄 알고, 피해학생에게 서면사과를 하였는데, 피해학생 측은 가해학생의 서면으로 된 사과문을 가지고 가압류를 하거나 민사소송을 제기하거나 형사고소를 하는 경우도 발생하는 등 학교폭력 가해학생에 대한 조치 중 ‘서면사과’ 조치는 검토되어야 할 여러 가지 사안들이 남아 있다.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에서 가해학생에 대한 조치가 아닌, 가해학생이 피해학생에게 자발적으로 하는 사과가 있을 경우, 피해학생이 학교폭력을 당한 충격에서 벗어나거나, 다시 학교생활을 위해 복귀하는 데 여러 가지 면에서 많은 도움이 된다고 한다. 학교폭력 가해학생 및 그 보호자가 피해학생 및 그 보호자에게 진심을 담은 사과를 하고, 피해학생 측에서 그 사과를 받아들일 경우 가해학생에 대한 선도 및 징계수위가 낮아질 수 있으며, 재발방지, 치료비 등 손해에 대한 합의 등이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학교폭력 사건 처리과정을 살펴보면 피해학생이 학교폭력을 견디다 못해 자살한 경우나 심한 후유증이 예상되는 중한 학교폭력 사안의 경우, 가해학생 측이나 학교는 피해학생 측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하기보다는 피해학생이 평소부터 개인적인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지 자신들은 피해학생의 자살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주장을 하는 경우가 많다.

아침에 자기 자식이 학교에 등교하였는데, 또는 학교에 잘 다니는 줄 알고, 선생님을 믿고 학교에 보냈는데, 어느 날 자식이 학교폭력을 견디지 못해 사망을 하거나 학교에 나갈 수 없을 정도로 피해를 입었다면,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가해학생 측이나 학교에서는 진심어린 사과를 해야 할 것이나,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사과조차 하지 않는다면 피해학생 측의 응어리진 가슴 속 한을 풀기 위하여 결국 형사고소나 민사소송으로 갈 수밖에 없으며 원만한 분쟁해결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학교폭력을 견디다 못해 유서를 써놓고 자살을 한 학교폭력 사건에서 가해학생 및 보호자, 학교장 및 담임선생님, 생활지도 선생님, 상담보건교사 등이 한자리에 모여 서로 하고 싶은 말을 하는 자리가 있었다. 결국 그 자리에서조차 일부 가해학생 및 보호자는 사과나 위로의 말을 거부하였고, 어떤 선생님은 자신은 학교폭력 사건을 몰랐고 잘못이 없는데도 자신에게 소송을 제기하였다고 오히려 불만을 털어 놓았다.

이 자리에서 사망한 학생의 어머니는 “저는 원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자식을 잃은 저에게 진심어린 사과와 따뜻한 위로의 말, 그냥 말 없이 제 손을 잡아 주기만이라도 했으면 모든 법적 분쟁을 종결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오늘 세상을 살면서 포기해야 하는 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식을 잃고서도 가해학생과 그 부모님으로부터 사과와 위로의 말을 듣는 것과 학교와 선생님으로부터 믿고 맡긴 아이를 지켜주지 못해 죄송하다는 말을 듣는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사과와 위로의 말을 듣는 것을 포기하겠습니다.”라는 말을 하고 애써 눈물을 감추려고 밖으로 나가셨다.

학교폭력 피해학생과 그 부모님이 가해학생이나 선생님으로부터 사과와 위로의 말을 듣는 것조차 포기해야 하는 그런 참담한 현실 앞에서, 도덕이나 교육을 논하기 전에 무엇인가 근본적인 인식의 변화나 대책이 필요한 중대한 잘못과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김용수 변호사
사법시험 제42회(연수원 32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