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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홍 평전-한 독립운동가의 치열한 삶

2019년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와 더불어 강제징용 배상 판결로 인하여 촉발된 한일 갈등이 격화되고, 논란의 책인『반일종족주의』가 베스트셀러가 되는 등 어느 때보다도 역사에 대한 관심과 논란이 많았던 한 해였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때에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에 대하여 평한다는 것은 극히 민감한 일일 것이나 이러한 때일수록 일제강점기 시절 독립운동을 하였던 독립운동가들에 대하여는 우리가 기억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수많은 독립운동가 중 안재홍에 대하여 소개하고자 상기 책에 대하여 글을 쓰게 되었다.
내가 안재홍에 대하여 알게 된 것은 서울대학교 정용욱 교수가 쓴『해방 전후 미국의 대한정책』(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 2013)이라는 책을 읽으면서였다. 안재홍은 미군정의 민정장관에 취임하였는데 좌우 간의 대립이 극에 달하고 찬탁과 반탁이 대립되는 상황에서 미군정의 민정장관은 누구도 하고 싶지 않은 자리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 자리에 오른 사람은 누구였을까 궁금증이 생겨 검색하던 중 바로 이 책『안재홍 평전』(정윤재, 민음사, 2018)이라는 책을 알게 되었다.

안재홍은 일제강점기에 조선일보의 주필로 활동하면서 이완용이 사망하였을 때 일본의 괴뢰이자 매국의 죄역을 저질렀다고 논평하였으며, 일제의 비합리적인 감옥제도 운용 실태와 고문 등 비인도적 처사를 비판하였다.

또한 일제의 교묘한 문화통치로 인하여 조선 지식인들 사이에서 자치론이 대두되고 있을 때 신간회를 조직하여 항일운동을 계속하고 조선의 완전한 독립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독립운동으로 인하여 여러 번(9차례, 7년 3개월) 옥고를 치르기도 했던 안재홍은 태평양 전쟁 시기 일제로부터 여러 차례 시국 강연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으나 이를 끝내 거절하였다.

1944년 전쟁에서 일제의 패망이 기정사실화되자 총독부는 국내에 있는 독립운동가들을 회유 또는 협박하면서 치안유지에 이용하려고 하였다.

이에 대하여 안재홍은 한국과 일본은 지리적으로 가깝기 때문에 일시적 치안 유지 차원뿐 아니라 장기적인 안목에서 영구한 병존호영의 관계로 나가도록 해야 하며 자칫 잘못하여 또다시 유혈사태가 발생하는 경우 양국은 영원히 원수가 될 수밖에 없음을 지적하였다.

또한 전후 치안유지 역할을 하는 조건으로 민족자주, 호양협력, 마찰방지의 3원칙을 제시하면서 총독부의 위협적인 협박을 물리쳤다.
안재홍의 측근에서는 호양협력은 일본에 대한 협력파였다는 시비를 불러일으킬 수 있으며 치안유지 협력이 총독부의 공작에 이용당할 수도 있다는 의견을 내었으나 3원칙을 고수하며 민족지도자로서 해방 후 정국 안정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였다.

해방 후 안재홍은 좌우합작에 주력하였으며 미군정청으로부터 민정장관의 자리를 제의받게 되는데, 당시 민정장관이란 자리는 정치적 비난과 비판의 표적이며 잘못하면 친미파라는 오명을 면하기 어려운 자리였다.

그럼에도 안재홍은 미소협조가 어려운 상황에서 한국의 독립을 원조하는 미국의 군정으로 하여금 민의에 가까운 정치가 되도록 협력하는 자리는 애국자로서 사양할 수 없는 일이라고 각오하며 그 자리를 수락하였다.

이후 대한민국이 수립되고 제2대 총선거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된 안재홍은 6·25 전쟁 때 북으로 납북되었다.
북으로 납북된 후의 활동에 대하여는 기록이 많지 아니하나 북한의 공산주의 노선에는 동조하지 않고 민족주의자의 소신을 지킨 것으로 보이며 끝내 대한민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1965년 3월 1일 삼일절에 별세하였다.

안재홍이 일제의 정책에 대하여는 협력을 거부하고 단호하게 대처하면서도 광복 후에는 영구한 병존호영의 관계로 나아갈 것을 주장한 것은 지금의 한일 관계를 풀어나가는 데에도 시사하는 점이 크다고 할 것이다. 또한 광복 후에 민족 내 갈등을 조율하고 좌우합작을 통하여 통한된 민의를 바탕으로 한 민족국가를 건설하려고 한 안재홍의 사상 역시 현재의 대한민국을 운영해 나가는 데 참고할 만한 가르침이 될 것이다.

이규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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