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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짜” + “공공의 적”

지금으로부터 11년 전의 일입니다. 이제 겨우 새내기 변호사로서 변호사업무를 시작한 지 6개월밖에 안 된 저에게 주어진 임무는 “상습공갈” 및 “도박” 전과가 있는 의뢰인을 접견하고 공판을 진행하는 것이었습니다.

사건의 내용, 즉 공소장에 기재된 내용은 이렇습니다. 의뢰인은 □□시에 소재한 산속에 하우스 도박장(아마 영화 타짜 1편을 보신 분들은 기억하시리라 믿습니다. 말 그대로 산속에 비닐하우스를 차려두고 그 안에서 도박판을 벌이는)이 차려졌다는 소식을 듣고, 성명불상의 지인 2명과 산속으로 도박장을 찾아갑니다. 종전부터 안면이 있고 의뢰인에게 채무가 있던 하우스장(도박장의 총책임자, 일명 “창고장”, 하루 수천에서 수억의 고리를 떼는 것만으로 많은 이익을 얻는 자)에게 도박하기 위한 돈을 요구합니다. 하우스장에 대하여 의뢰인이 가지고 있는 채권은 하우스장이 종전에 개장한 도박장에서 사기도박을 하는 것을 그 도박에 참여하였던 의뢰인이 이를 밝혀내었고, 이를 무마하는 대가로 총 600만 원을 받기로 하우스장이 그 당시 약속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하우스장은 자신의 수하 중 한 명인 꽁지(하우스에서 고금리로 돈을 빌려주는 사람)에 300만 원을 의뢰인에게 주라고 합니다. 의뢰인은 300만 원을 가지고 도박에 참여합니다. 기분 삼아 바카스(하우스에서 음식물, 담배를 제공하는 등 잔심부름을 하는 사람)에게 팁도 10만 원을 줍니다.

하지만 의뢰인은 불과 30분도 되지 않아 이 돈을 모두 잃고 다시 300만 원을 요구합니다. 하우스장은 또 의뢰인에게 300만 원을 꽁지를 시켜 주라고 지시합니다. 하지만 의뢰인은 이 돈마저 30분을 견디지 못하고 다 잃게 됩니다. 이에 격분한 의뢰인은 화를 내면서 하우스장에게 돈 600만 원을 재차 요구합니다. 하우스장은 나는 이미 너에게 줄 돈 600만 원을 모두 주었으니 줄 수 없다고 하자 의뢰인은 화를 내면서 하우스장에게 큰소리로 욕을 하고 ‘도박장을 신고하겠다고’ 난동을 부립니다. 물론 의뢰인의 지인 2명(덩치가 산만하고 아주 우락부락하게 생긴)은 옆에서 함께 인상을 쓰고 있습니다. 이에 하우스장은 그럼 내가 지금 현금이 없으니 산 밑에 ○○대학교 주차장에 가 있으면 돈 600만 원을 가지고 와서 주겠다고 합니다.

의뢰인과 의뢰인의 지인 2명은 ○○대학교 주차장에서 하우스장의 아내가 가져온 현금 600만 원 다발을 받고서야 신고를 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사라집니다. 하우스장은 분함을 이기지 못하고 평소 잘 알고 지내던 형사에게 이를 신고했고, 특별한 연고가 없던 의뢰인은 하우스장이 잠시 만나자는 말에 약속한 커피숍에 갔다가 현장에 있던 사복수사관들에게 체포되었습니다. 여기까지가 공소사실 및 수사기관이 파악하고 있는 고소인(하우스장)의 진술을 토대로 구성된 사건의 실체라는 것입니다.

반면 의뢰인은 자신은 정말 600만 원을 받을 것이 있어 간 것뿐이며, 당시 그 돈을 받아 도박하였지만 다 잃고 도박장을 나왔을 뿐이고, 성명불상의 2인은 존재하지 않으며, 도박장을 신고하겠다거나 한 적이 없고, ○○ 대학 주차장은 가본 적도 없다고 하였지만, “상습공갈·협박”과 “도박”의 전과가 다수 있었던 의뢰인의 말을 아무도 믿어 주지 않았습니다. 경찰들은 자백하라고 종용하였고, 의뢰인은 공공의 적 영화에 나오는 ‘산수(배우 이문식)’처럼 조사를 받으면서 책상에 머리를 찧고 수갑을 찬 채로 의자를 발로 차는 등 난동을 피웠고, 당연히 경찰은 구속영장을 청구했습니다. 의뢰인에 대한 영장은 죄질이 중하고, 증거인멸, 도주의 우려 등 모든 구속 사유를 충족하였기에 의뢰인은 결국 구속되었고, 검사 앞에서도 억울함을 호소하면서 난동을 피워 결국 공판 절차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1년 차 초짜변호사인 제가 의뢰인을 만나러 가기 전까지 기록을 통해서 파악한 내용이었습니다. 사건을 파악한 저 역시 ‘무죄 주장은 완전히 ‘달나라 이야기’인 “깡치”사건이군’ 생각하면서 접견을 위해 ▲▲구치소에 갔습니다.

제 앞에는 저보다 더 무섭게(?) 생긴 의뢰인이 팔에 문신을 하고 전라도 사투리를 쓰면서 앉아 있었습니다. 저는 초짜 티를 안 내려고 함께 반말을 찍찍 써가며 이야기를 합니다. “이 사건 뒤집기 힘들어요. 누가 믿어줘요, 안 그래요?” 갑자기 조폭 같은 의뢰인이 제 손을 잡고 울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아무리 나쁜 놈이고 평소에 울 아부지, 어머니 힘들게 평생을 괴롭혔어도 한 거를 안 했다고 하고 살지는 않았소. 세상 다 안 믿어 주는데 내 변호사도 안 믿어 주면 누가 나를 믿어 주오.” ‘악어의 눈물이겠지’ 라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근데 뭐 어쩌겠습니까? 저는 변호사인데. ‘그래 네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나는 변호사니까 네 말을 믿어 주는 척이라도 하자.’라고 생각하고 모든 변론의 방향을 무죄 주장으로 맞추어 의견서를 작성하고, 당시 현장에 있던 고소인인 하우스장, 꽁지, 기도(도박장을 지키는 소위 말하는 조폭과 같은 문지기)를 전부 증인 신청했습니다. 의뢰인이 당시 ○○대학 주차장에 가지 않았다는 말에 착안하여, 하우스장의 휴대전화의 사건 당일 수신, 발신 기지국 사실조회도 신청했습니다. 당시 사건을 담당한 판사님은 다행히 증거신청을 모두 받아주셨고, 사실조회가 도착했습니다. 고소인의 사건 당일 휴대전화의 수신, 발신은 도박이 이루어진 □□시 산속에서 이루어졌지만 거기서 20km 떨어진 ○○대학 주차장에서의 통화내역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분명 고소인은 일관되게 ○○대학 주차장에서 돈을 자신의 처로부터 받기 위해 수차례 통화했다고 주장했지만, 고소인의 당일 동선은 20시간 이상 □□시 산속에 머무르고 있었습니다. ‘어, 이거 이상하다.’라는 생각이 그때야 저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증인신문 당일, 조직폭력배의 두목인 김태촌같이 생긴 하우스장과 꽁지, 키가 190 cm에 120kg은 족히 넘어 보이는 기도 각 세 명이 출석하였고, 저는 증인들을 분리하여 신문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솔직히 무서웠습니다. 증인들의 눈빛은 제가 이제까지 살면서 본 일반인들의 눈빛이 아니었습니다. 증인신문을 하면서 증인 세 명의 진술 ‘시간, 장소, 의뢰인의 범행수법, 동행한 성명불상자의 인상 등등’ 일치하는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무려 4시간의 신문을 마치고, 사건을 담당한 판사님은 변호인인 저를 보고 “변호인 보석 신청하시지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증인신문 내내 분함을 참지 못하고 씩씩거리고 있던 의뢰인의 손을 저도 모르게 잡고 있었습니다.

결론을 말씀드리면 그다음 공판기일 전에 의뢰인은 보석으로 풀려났고, 결국 그 사건은 무죄로 1심이 선고된 후, 2심, 3심에서도 모두 무죄가 확정되었고 저는 의뢰인이 수감되었던 ▲▲구치소에서 나름 유명한 변호사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 사건을 진행하면서 1년 차밖에 되지 않았던 저는 비록 악행을 일삼던 악인이 의뢰인이라고 하더라도 변호사가 사건을 진행하면서 스스로 예단을 가지고 사건을 바라보아서는 절대 안 된다는 큰 교훈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상엽 변호사
●법무법인(유) 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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