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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님, 저는 잘 모르는데요

“ 판사님, 그 부분은 변호사인 저보다는 당사자가 더 잘 알고 있습니다. 당사자에게 설명할 기회를 주시는 것이 어떨까요?”
누구나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많은 분들이 법정에서 이런 말을 해본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사실 그보다는 법정에서 “다음 기일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서면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라는 말을 더 많이 하게 됩니다. 이 말이 변호사가 법정에서 자기의 이름을 말하는 것 다음으로 제일 많이 하는 말 가운데 하나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습니다. 변호사가 사건 내용을 아무리 잘 알고 있다고 한들, 변호사가 잘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들키고 싶지는 않더라도, 직접 경험한 일이 아닌 이상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리고 앞으로도 변함없이 법정에서 많이 들어볼 수 있는 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하지만 때로는 다음 기일을 기약할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금 법정에서 대응을 하지 못하면 영영 기회를 잃어버리고, 소송에서 패소하고 맙니다. 변호사로서는 즉각 대응을 해야 하는데, 마땅한 방법이 없을 때가 많습니다.

법정에서는 뜻밖의 상황이 벌어질 때가 있음을 잘 알고 있기에 항상 철저한 준비를 한다고 합니다만, 전혀 예상하지 못하여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상대방의 일격이 들어올 때가 있습니다. 이때 가끔은 변호사의 속내를 알 리가 없는 재판장님은 상대방의 말이 맞는지,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답변을 하라고 하기도 하는데, 그 목소리가 점점 아득하게 멀어짐을 느끼곤 합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여 진작에 의뢰인과 논의를 했더라면 하는 후회도 생기지만, 이내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그 상황에서 이제 변호사가 도움을 받을 곳은 그 내용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의뢰인밖에 없습니다. 의뢰인 쪽을 한번 힐끗 보면서 ‘이 내용 잘 알고 계시죠? 좀 어떻게 해보세요. 빨리 저를 구해 주세요.’라고 SOS를 요청하는 텔레파시를 보내게 됩니다.

다행히 의뢰인의 도움을 받아 상황을 모면하곤 합니다. 때로는 상대방 주장의 허점을 바로 지적하여 반격의 행군을 시작하는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이쪽이 그렇듯, 상대방도 반격이 들어올 것이라 예상하지 못하는 바람에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변호사는 법정 밖이나 법정 안에서 사실관계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의뢰인의 협조를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변호사로서는 의뢰인이 법정에 출석하는 것이 감시하는 것 같기도 하여 부담스러울 때도 있지만, 때로는 즉각적인 도움을 주기도 하니 고맙기도 합니다.

누구나 법원이 실체적 진실을 밝혀줄 것이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아이러니하지만 사실관계를 가장 잘 알고 있는 당사자 역시 법원에 그런 기대를 갖고 있습니다. 아마도 법원에 대한 그러한 기대는 사건의 당사자가 가장 절실하게 소망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사건을 맡겨놓은 다음에도 법정에 꼬박꼬박 출석하는 당사자가 있습니다. 당사자는 한결같이 그와 같은 마음으로 법정에 출석해서 재판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과연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고 있는지 지켜보는 것입니다.

하지만 당사자가 법정에 출석하여 재판을 지켜보고 싶어도 그러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다른 소송과 달리 형사소송에서는 당사자인 피고인이 법정에 출석할 의무가 있는데도 그렇습니다. 최근에 여론의 많은 관심을 끈 사건들 가운데에는 피고인이 법정 출석을 거부하여 피고인의 재정 없이 재판이 진행되어 판결까지 선고된 경우도 있고, 밤늦게까지 계속된 재판을 견디지 못하고 재판장에게 퇴정명령을 내려달라고 한 경우도 있지만, 형사소송의 원칙은 피고인이 법정에 출석하여야 비로소 재판을 할 수 있습니다. 아주 가벼운 범죄이거나 적법한 소환을 받고도 출석하지 않는 경우 등 피고인의 출석 없이 재판을 진행할 수 있는 경우도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예외적인 경우입니다. 물론 이 경우에도 피고인의 법정 출석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피고인이 법정에 출석하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경우는 증인이 피고인의 면전에서 충분한 진술을 할 수 없다고 인정하여 형사소송법 제297조 제1항의 규정에 따라 재판장이 원활한 증인신문 진행을 위해 피고인에게 퇴정을 명하는 경우입니다. 사건의 내용을 가장 잘 알고 있는 당사자인 피고인이 퇴정을 당하게 된다면 변호사로서는 홀로 증인과 마주 서야 합니다.
그리고 그 증인은 적대적인 증인일 것이 분명하므로 의뢰인에게 불리한 진술을 쏟아낼 것이 불을 보듯 뻔합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진술이 나오더라도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도 있습니다. 성폭력사건의 경우에는 퇴정을 당할 수 있다고 충분히 예상할 수 있어서 만에 하나 그런 일이 있을 것을 대비한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당사자는 모든 것을 변호사에게 털어놓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 형사소송법 제297조 제2항은 증인의 진술이 종료한 때에는 퇴정한 피고인을 입정하게 한 후 법원사무관 등으로 하여금 진술의 요지를 고지하게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피고인이 진술의 요지를 듣게 하는 것만으로 변호사의 역할을 다하였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만으로는 피고인의 반대신문권이 보장된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대법원은 이러한 경우에도 피고인의 반대신문권을 배제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하면서, 피고인에게 진술의 요지를 고지하게 한 다음 변호사를 통하여 반대신문의 기회를 부여하도록 하고 있습니다(대법원 2012. 2. 23. 선고 2011도15608 판결 참조). 이를 잘 활용하기 위해서 변호사로서는 상대방의 주신문이 종료된 다음 재판부에 피고인을 입정하게 하여 진술의 요지를 고지하고 이에 대한 피고인의 의견을 반대신문사항에 반영할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부여해 줄 것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박진감 있게 역동적으로 진행되는 증인신문의 경우에는 피고인에게 진술의 요지를 고지한다고 해서 효과적인 반대신문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증인의 진술에 나타나는 뉘앙스의 변화까지 중요한 경우에는 더욱 그러합니다.
변호사가 피고인의 도움을 받아 증인에 대한 반대신문을 충분히 하기 위해서는 피고인이 옆에 있어야 하므로, 피고인의 퇴정을 막는 것이 좋습니다. 그 방안의 하나로 형사소송법 제165조의 2가 정한 비디오 등 중계장치에 의한 중계시설을 통하여 신문하거나 차폐시설 등을 설치하고 증인을 신문하는 방법을 제안할 수 있습니다. 변호사가 피고인의 퇴정 대신 위와 같은 방법으로도 증인이 충분한 진술을 할 수 있다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사건의 내용을 가장 잘 아는 당사자의 도움 없이 변호사가 성공적으로 사건을 수행하기 어렵듯이, 당사자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방안이 있음에도 이를 잘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 역시 변호사가 성공적으로 사건을 수행할 수 없을 것입니다. 회원 여러분들도 이런 제도를 잘 활용하여 모든 사건을 성공하시기 바랍니다.

김동석 변호사
●김앤장 법률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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