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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시간_오늘의 커피와 금주의 커피

1996년 8월 27일 당시 13세였던 장모군의 가족은 같은 동네에 사는 왕 씨네 일가와 땅문제로 마찰을 빚어 오던 중 시비가 붙어 장모 군의 엄마가 왕 씨네 가족에게 폭행을 당해 사망하고 만다. 그런데 가해자로 재판을 받은 왕 씨네 셋째 아들은 사건 발생 당시 미성년자로 범행을 자백하고 그의 부친이 배상을 했다는 등의 이유로 7년의 상대적으로 가벼운 형을 선고받고 그것도 4년 만에 가석방으로 풀려난다.

장모 군과 그의 가족은 2018년도에 들어서야 실제 가해자는 범행 당시 성년이었던 둘째 아들이었으며, 당시 왕 씨네 첫째 아들이 해당 지역의 공무원으로 압력을 행사하여 증인들이 허위 증언을 했다는 점 등을 들어 재심을 신청한다. 그러나 법원에서 재심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장모 군은 2018년 2월 15일 왕 씨네를 찾아가 일가족 세 명을 살해하고 차에 불을 지른다. 22년의 세월이 흘러 장모 군은 극단적인 방법으로 복수극을 저지르고 자신도 사형을 선고받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말았다. 중국에는 군자보구, 십년부만(君子报仇,十年不晚)이라는 말이 있다. 군자가 복수를 하는 데는 10년도 늦지 않는다는 말이다. 언젠가는 구원을 기억하여 반드시 복수를 한다는 말이다.

중국에서 한국사람들이 겪었다는 에피소드 가운데 “마상(马上)”이라는 말을 둘러싼 이야기들이 많다. 길을 물어 “마상” 도착한다고 했는데 거의 한 두 시간을 걸어갔다. 집에 에어컨 수리하는 사람을 불렀는데 “마상” 도착한다고 해 놓고 한 시간을 기다렸다는 등의 에피소드이다.
마상이라는 말은 말 그대로 말 위에 앉았다는 말이다. 말 등에 올라타기는 했는데 말이 움직이기 시작했는지, 말이 여물을 먹고 있는지를 알지는 못한다. 또한 마상이라는 말의 형식적 의미에 포함된 금방이라는 의미는 지금과 같이 도로와 교통이 발전한 시대가 아닌 말 타고 가마 타고 다니던 시절의 의미일 것이기 때문에 단어의 탄생부터 그 호흡이 지금보다 길 수밖에는 없다.

또한 중국사람들의 속성을 이야기할 때 대표적으로 하는 말이 만만디(慢慢的)란 말이다. 중국사람들은 행동이 느리고 굼뜨다는 것이다. 또 중국의 수많은 법규에는 적시(及时)라는 말이 등장하는데 어느 정도의 시간의 길이가 적시인지에 대해서는 기준이 불명확하다. 그리고 어떤 일이 발생할 때에 ‘내가 신속하게 골든타임에 너한테 알려줄게’ 할 때에 골든타임이라는 말을 제일시간(第一时间)이라고 하는데 골든타임도 알려주려는 사람의 기준과 듣고 싶은 사람의 절박함이 다른 상황에서는 서로 타이밍이 맞지 않을 가능성이 훨씬 크다. 우리나라에도 널리 환영받는 별다방이라는 곳에 가면 “오늘의 커피”라는 것이 있다. 그런데 그 오늘의 커피를 중국에서는 “금주의 커피(本周咖啡)”라고 한다. 우리의 하루가 중국에서는 일주일과 같은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여러 가지 사례들은 중국의 시간과 우리의 시간의 길이가 다름을 나타내는 사례들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중국의 시간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까?
우선, 우리와는 현저하게 다른 중국의 공간에 대한 감각의 차이가 시간에 대한 인식의 차이를 만들어 낸다. 길을 묻는 외국인에게 중국인들이 금방 도착한다고 대답하는 것은 중국사람들과 우리의 공간에 대한 잣대가 다르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중국이라는 나라가 가지는 거대한 땅덩어리가 가져오는 공간 감각의 차이가 시간의 인식의 차이를 낳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어느 예능 프로그램 자막에 “무려 4시간을 운전하여 어느 동네에 도착했다”고 써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중국에서 4시간 운전한 거리면 서울에서 인천가서 조개구이 먹고 온 정도의 거리에 불과하다. 4시간 운전해서 가는 거리는 중국에서는 가까운 거리, 우리에게는 먼 거리다.

둘째, 질문을 정확하게 해야 한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냐, 거리가 얼마나 남았냐고 막연히 물어봐서는 안 된다. 중간에 버스 정류장은 몇 개나 있는지, 택시 요금으로는 얼마나 나오는지 구체적으로 계량화된 단위로 물어야 한다. 중국의 시간과 우리의 시간의 시차를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서는 우선 질문을 정확하게 해야 하고 거기에서 나온 답에 우리의 경험을 더해 우리만의 중국 시간표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셋째, 현대 중국사람들은 절대 “만만디” 하지 않다. 자기와 이해관계가 있는 일인 경우에는 한국사람들의 빨리빨리 근성은 저리 가라고 할 정도다.
중국고객들을 두고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보면 밤낮도 모자라 주말까지 울리는 위챗(WeChat)알람 소리에도 마음의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즉, 중국사람들은 철저히 실리 위주이고 이해관계를 중시한다. 중국사람들은 흔히 체면을 중시한다고 하지만 자신들의 실리를 위해서는 체면을 잠시 내려놓을 줄도 아는 게 중국사람들이다. 한국 속담에 양반은 얼어 죽어도 곁불은 쬐지 않는다고 하니 어쩌면 한국사람들이 더 체면을 중시하는 지도 모른다. 중국과 비즈니스를 할 때에는 철저히 실리 위주여야 한다.

필자가 중국에 어학연수 목적으로 북경에 처음 갔던 것이 2006년이고 그때는 북경 시내 도처에 북경 올림픽 D-700 며칠이라는 간판들이 서 있었다. 당시의 북경에 대한 필자의 이미지는 도시 전체가 온통 뿌연 공사판 같았다. 포장이 마무리되지 않은 도로에 먼지를 흩날리며 건설 자재를 가득 싣고 가는 트럭들의 모습이 지금도 필자의 머리에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다. 그 후 북경 올림픽이 끝나고 얼마 되지 않아 미국에서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일어나고 중국은 전 세계에서 유일한 규모의 내수시장과 외환 보유고를 무기로 G2의 자리로 올라섰다. 중국은 1978년 개혁개방 정책을 실시한 이후에 이립의 나이가 된 2008년도 북경 올림픽 이후에 G2의 위치에 올라섰고 그 이후에 모바일 인터넷, 전자상거래, 4차 산업혁명이 주도하는 산업을 바탕으로 초고속 경제성장을 이루어 왔으며, 불혹의 나이를 넘어선 2019년에는 중미 간의 무역분쟁, 홍콩 시위 등의 성인병을 겪고 있다.

우리가 중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한 것이 1992년이었다. 그러나 2019년인 지금 아직도 우리에게 중국의 시간은 2000년대, 심지어 1990년대에 머물러 있는 현실을 자주 접하게 된다. 지난 40년간 급변한 중국의 현실과 중국의 대한 우리의 인식 수준이 제대로 보폭을 맞추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라도 중국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들의 시간을 먼저 이해하고 그들의 시간의 보폭에 우리가 발맞출 수 있어야 한다.

허욱 변호사
●법무법인(유) 율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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